하루가 멀다 하고 분노와 관련된 범죄, 사건들이 뉴스에 오르고 있습니다. 분노를 참지 못하여 교통사고를 내고, 화가 난다는 이유로 사람을 죽이기도 하는 일을 보며 대한민국 국민들은 당혹스러움과 불안에 빠져들고 있습니다. 방송 프로그램에서는 ‘분노조절장애’라는 말이 회자되고 있어 저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의 한 사람으로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고민스러웠습니다.

‘분노’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수십, 수천가지의 감정 중 한 가지입니다. ‘기쁨 조절장애’, ‘슬픔 조절장애’와 같은 말은 없는데, 유독 분노라는 감정에 대해서는 그것을 잘 처리하지 못하면 ‘조절장애’라고 부릅니다. 감정은 좋은 것과 나쁜 것으로 나눌 수 없고, 바람직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으로도 나눌 수 없습니다. 감정의 주체가 자신의 감정을 적절히 인식하고 표현하고 해소시키면 무리 없이 감정을 다룰 수 있습니다. ‘분노조절장애’라는 말이 생긴 데에는 ‘분노’라는 감정은 가능하면 표현하지 않고 참아야 된다는 암묵적 약속이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분노가 있다고 해서 병적인 상태인 것이 아니며 ‘분노조절장애’는 정신과적 진단명이 아닙니다.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이 되지 않았을 때, 노력이 인정받지 못했을 때, 아무리 해도 해결되지 않을 때, 지속되는 불평등을 느꼈을 때 사람들은 ‘분노’의 감정을 느낍니다. 감정을 인식하고 적절하게 표현하지 못하게 되면, 그것이 지나치게 억압되어 있다가 뒤틀린 형태로 표출될 수 있습니다. ‘분노’는 피해야 할 감정이 아니라 잘 살피고 다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다른 이의 이해할 수 없는 형태로 표출된 분노를 보며, 자신의 감정을 더욱 억압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때일수록 오히려 자기 내면의 감정을 세심하게 들여다 봐야합니다.

저는 진료실에서는 ‘분노’라는 감정을 자주 만나게 됩니다. 상담을 하러 온 아이도 ‘화가 난다’고 하며 아이의 부모님도 ‘분노를 참기 힘들다’고 합니다. 무엇이 아이와 부모님을 분노하게 하였을까요? 아이는 인정받는 아이가 되고 싶다고 하고, 부모님은 아이가 잘 컸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아이는 나름대로 노력을 해도 또 다른 것이 요구되어진다고 하며, 부모는 불안정하고 생존하기 어려운 사회 속에서 아이의 모습을 보며 답답해합니다.

사진_픽셀

• 화가 나서 유리창을 부순 중2

"나는 지금까지 열심히 살았는데... 아무것도 할 수 없다니 화가 난다“

부모님에게 혼이 난 뒤 자기 방으로 들어가서 갑자기 주먹으로 유리창을 부순 중학교 2학년 남학생이 상담을 하러 저를 찾아왔습니다. 영어 유치원부터 사교육을 시작한 이 학생은 ‘잘한다, 재능 있다’는 말을 듣기 위해 수영, 태권도, 수학 등 여러 학원을 다녀왔다고 합니다. 초등학교를 입학한 이후에는 본격적인 공부가 시작되었으며 고학년이 되자 중학교 수학을 배우고 새로운 학원에 가서 테스트를 받는 것에 스트레스를 받았습니다. 중학교에 와 보니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서 특목고를 대비해야 한다는데, 각종 시험과 수행평가 준비로 늘 시간이 빠듯했습니다. 중학교 2학년 1학기 중간고사 시험 결과가 나온 날, 엄마는 ‘이런 성적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며 호통을 치십니다. 이 남학생은 처참한 심정으로 방에 들어간 뒤 갑자기 가슴이 터질 듯 답답해지고 머리에서 열이 나 힘껏 주먹으로 유리창을 치게 되었다고 합니다.

 

• 내 아이만 보면 화가 난다는 엄마

“내가 그 동안 해 준 게 있는데, 아이는 내 맘도 모르고..”

예전에는 사랑스러운 아이였는데 언젠가부터 뒷모습만 봐도 밉고 화가 난다는 한 어머님이 상담을 하러 오셨습니다. 결혼하고 4년 만에 생긴 귀한 아이여서 다니던 직장도 그만두고 육아에 몰입했다고 합니다. 세 살이 되서는 신기하게도 말도 잘하고 영특해서 자꾸 욕심이 생겼으며 아이가 하는 모든 것이 예뻐보였다고 합니다. 아이가 유치원에 들어간 후, 유치원의 다른 아이들이 야무지게 영어 발표도 하고 책도 많이 읽는 것을 보니 마음이 답답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 한 후 어머님은 아이에게 학교, 학원 숙제를 시키느라 좋은 얼굴로 대하고 이야기한 적이 거의 없었다고 합니다. 아이는 초등학교 4학년이 되어서도 자기 물건을 못 챙기고, 해야 하는 일도 까먹는 모습을 보여 엄마 마음에는 화가 들끓기 시작합니다. 옆 집 아이는 영재반에 합격이 되고 상도 타오는 데, 내 아이는 쉬는 날이면 누워서 핸드폰 게임만 하니 이 어머님은 문득 자신이 해온 것들이 무의미하고 억울해지셨다고 합니다. 어느 날 아이가 다니는 학원의 선생님에게 그 동안 아이가 숙제를 잘 안 해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 동안의 분노가 터져 나와 아이에게 고함을 쳤습니다.

 

• 외로운 아빠의 분노

“내가 그동안 얼마나 참고 살았는데, 너까지..”

잘난 것은 없지만 예쁜 딸과 아내를 위해, 간도 쓸개도 다 빼내어 준다는 영업직을 해오시던 아버님이 있었습니다. 언젠가부터 딸 아이는 아버님이 퇴근을 하여 집에 가도 인사를 안 하고 핸드폰만 들여다보고, 아버님이 말을 걸면 ‘쌩~’하고 그냥 지나가버렸습니다. 딸의 중간고사가 끝난 날, 10시까지 아이가 집에 들어오지 않아 전화를 하니, 딸이 그냥 끊어버립니다. 아버님은 12시가 되어서야 집에 들어온 아이를 보고 화가 폭발하여, 아이의 핸드폰을 던져 부숴버렸습니다. ‘나는 지금까지 열심히 살아왔는데 아무 소용이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며 화도 나고 허탈한 느낌이 들었다고 합니다.

 

사진_픽셀

우리는 각박한 세상 속에서 열심히 지내다가 지치게 되면, 분노의 감정을 참지 못하고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상처를 주기도 합니다. 지금은 목표를 향해서 묵묵히 앞으로 가기보다는, 내 감정을 들여다보고 휴식을 취하고, 주변 사람들의 마음을 살펴보는 것이 중요한 때입니다. 화와 분노의 감정을 느낄 때에는 가까운 사람에게 감정을 꺼내 보이고, 그 감정의 근원을 살펴서 나를 힘들게 하는 요소를 해결해야 합니다. 가까운 사람이 분노를 표현할 때, 내가 공격받았다고 실망하기보다 경청하고 공감하려는 시도를 해야 합니다. 이러한 노력이 감정을 원만하게 다루며 삶의 만족감, 관계의 즐거움을 높일 수 있는 방법입니다.

 

 

저자_송미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소아청소년정신과 전문의
해솔마음클리닉 인천클리닉 원장 
삼성서울병원 정신과 외래교수
삼성인지감성연구소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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