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_작가

 

저녁 무렵,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던 아이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아이는 아빠 팔에 안겨 징징대며 울고 있고 엄마는 걱정 가득한 얼굴입니다. 어찌된 일인지 물으니 침대에서 놀다가 아이가 갑자기 팔을 쓰지 못한다며 팔이 부러진 건 아니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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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갑자기 팔이 아프다며 울어서 응급실에 내원하는 경우가 흔합니다. 아직 말을 못 하고 어디가 아픈지 자세히 표현할 수 없는 1~2세 소아가 엄마 아빠가 보기에 '뭔가 이상해서' 오면 저희 의료진도 참 당황스럽습니다. 진찰은 안되지, 아기는 낯설어 울지. 게다가 보호자께 상황을 물어도 정확한 수상 기전을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럴 땐 꼭 잠깐 한 눈 파는 사이에 다치게 마련이니까요. 그러니 의료진의 당황스러움도 이해가 되시죠? 단순 염좌인 경우부터 팔꿈치 관절이 살짝 빠진 경우, 빗장뼈가 부러진 경우 등 다양한 상황을 염두에 둬야 합니다.

 

어렸을 때 쇄골, 우리말로 빗장뼈가 부러져 고생한 적이 있습니다. 초등학교 3~4학년 때니까 10살 무렵이었겠네요. 친구와 점심시간 말미에 운동장 옆 모래사장에서 씨름을 하고 있었습니다. 친구 몸에 눌리며 넘어진 순간 어깨에 엄청난 통증이 왔던 기억이 납니다. 눈물이 핑돌아 일어나지 못하겠는데 친구는 점심시간 끝났다며 냉큼 들어가 버려 분했던 기억이 선하네요. 집에 갔다가 엄마 손에 이끌려 간 병원에서 골절을 진단받고 8자 붕대란 것을 착용해야 했습니다. 덕분에 가방을 멜 수가 없어 제 어깨를 고장 낸 그 친구가 매일 가방을 들어줘야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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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기억이 흐릿해질 때쯤, 의사가 되어 응급실에서 환자를 보다 보니 아이들이 팔을 다쳐서 오는 경우가 꽤 흔합니다. 아빠와 손잡고 놀다 뚝 소리가 나서 오는 경우는 다행인 경우입니다. 주관절 아탈구라고 해서 팔꿈치 관절이 살짝 빠지는 경우가 많거든요. 간혹 혼자 몸을 뒤집다가 팔이 끼인 경우나 엄마 아빠가 팔을 잡은 상태에서 뒤로 가겠다고 버티는 경우에도 발생할 수 있을 정도로 쉽게 발생합니다. 잡아당긴 상황이 명확하면 X-ray 없이 정복술을 시행하지만 직접 목격되지 않은 경우는 골절 여부 확인이 중요하겠죠. 팔꿈치 관절이 안정화되는 만 6세까지 재발할 수 있어 한번 빠진 경우에는 상당기간 주의해야 합니다.

 

X-ray 에 골절도 보이지 않고 정복술에도 반응이 없는 경우는 단순 염좌일 가능성이 많겠죠. 부목 대고 2~3일 지켜보다 호전이 없으면 추가 검사나 재 정복술을 시행하게 됩니다. 처음에 응급실에서는 정복이 안되다 나중에 근육이 이완되고 나면 쉽게 들어가기도 하거든요. 어떨 땐 X-ray만 찍고 왔는데 아이 팔이 멀쩡 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X-ray 촬영하느라 팔을 돌릴 때 저절로 빠진 관절이 맞아 들어가는 경우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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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나머지는 골절이 있는 경우가 남았네요. 놀이터에서 놀다 어깨로 떨어졌거나 제 어렸을 때 이야기처럼 친구 체중에 어깨를 눌린 경우에는 빗장뼈 골절이 흔합니다. 골절 모양에 따라 수술적 치료가 필요한 경우도 있지만 소아의 빗장뼈 골절은 대체로 4주가량 어깨를 뒤로 당겨놓는 것만으로도 잘 치료가 됩니다. 간혹 처음에는 골절선이 보이지 않다가 나중에 확인되거나 아주 약간 각도만 변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소아 골절의 특징 중 하나입니다. 젖은 나뭇가지가 부러지듯 골절선이 명확하지 않은 경우가 흔하거든요.

 

또 자주 보이는 골절로 위팔뼈 하단에 생기는 상과 골절(위관절융기 골절)이란 게 있습니다. 팔꿈치로 바닥에 부딪히거나 떨어졌을 때 발생하는데 이 골절도 방사선 검사 결과나 신경학적 이상 유무에 따라 수술 여부를 결정해야 합니다. 많이 어긋나지 않고 신경증상도 없으면 부목을 대고 관찰하게 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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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이 아파서 온 말 못 하는 아기가 정복술을 마치자마자 방긋방긋 웃으며 손을 자유롭게 쓰는 모습을 보면 힘든 가운데에도 미소가 절로 나고 기분이 좋아집니다. 안도의 웃음으로 감사인사를 건네는 보호자분께도 기운 넘치는 인사를 드리게 되죠.

 

하지만 반대의 경우, X-ray 결과를 설명하면서 골절 상태와 앞으로 계획을 설명할 때엔, 울상이 된 보호자 표정만큼이나 의료진 속도 상합니다. 아이가 얼마나 아팠을지, 앞으로 얼마나 더 고생해야 할지가 눈앞에 그려져서일 겁니다. 같은 또래 아이들 키우는 입장이라 더 그렇겠죠. 고생 많으시겠지만 아이들 자라면서 한 두 번씩은 이런 일 겪는다고, 위로 아닌 위로를 드려봅니다.

 

“얘들아, 부디 아프지 말고 다치지 말고 자라자. 너희도 아프겠지만 지켜보는 엄마 아빠 마음은 더 찢어진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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