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신재현 강남 푸른 정신과 원장]

 

“ 나는 그 사람에게 모든 것을 다 주었는데, 내 마음을 몰라줘요.”

“ 나는 아무것도 바라는 것이 없어요. 그저 내가 그에게 최선을 다했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 정말 내 마음을 다 주었는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나요?”

 

나는 상대방에게 ‘사랑하니까’라고 이야기한다. 사랑하니까,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주고 싶어하고, 또 나를 희생해서까지 그렇게 하고 있다. 하지만 상대방은 그 사랑으로부터 부담을 느끼고, 달아나려 한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사진_픽셀

 

과도한 자기희생, 사랑일까?

 

많은 사람이 생각하는 사랑에는 일종의 판타지(fantasy)가 있는 것 같다. 이몽룡과 나누었던 짧은 정분의 절개를 지키려 했던 춘향처럼, 신화와 고전에 나오는 지고지순한 사랑, 혹은 자신을 희생하는 사랑은 참으로 고결하고도 아름다워 보인다. 결국 이런 ‘완벽한’ 사랑이어야만 사랑을 주는 대상은 스러져 없어지더라도, 사랑은 불멸할 것으로 기대한다.

 

하지만, 사랑을 받는 상대방의 마음은 어떨까? 연인들의 시작은 언제나 동등하다. 서로의 외견을 통한 탐색과, 약간의 감정이 오가는 대화로 관계를 시작한다. 어느 순간, 서로의 감정이 얽히면서, 한쪽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집착하기 시작한다. 이러한 집착은 날카로운 공격성이 아닌, 부담스러울 정도의 자기희생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역량 이상으로 희생을 하는 모습은, 상대방을 관계에서 한 발자국씩 뒤로 물러나게 한다. 그렇게 관계의 무게가 한쪽으로 기우는 순간, 관계에는 금이 가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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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희생을 하는 사람들의 마음

 

레 미제라블(Les Miserables)의 주인공 장 발장은, 끔찍한 과거를 겪고 거듭난 이후 자기희생을 통해 사랑을 실천한다. 그의 숭고한 희생은 인류애를 연상케 한다. 그의 사랑의 순간에는 망설임이 없으며, 티끌 한 점 바라는 것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평범한 사람들의 관계에서는 그런 ‘완벽한’ 사랑은 찾을 수 없다. 또한, 관계에서 정도를 넘어선 자기희생을 하는 이들의 마음의 기저에는, 대개 왜곡되고 뒤틀린 시각이 보인다. 사실, 의식의 깊은 수면 아래에서는 자기희생이 그저 숭고한 희생으로 끝나기만을 바라지는 않는다. 겉으로 표현하지는 않지만, 사랑을 주는 쪽은 생각하기 마련이다. ‘내가 이만큼 해 주었으니, 저쪽도 나에게 그만큼 해 주겠지’, 혹은 ‘내가 일편단심 노력하면, 내 진심을 알고 나를 사랑해 줄 거야’ 라고. 결국 조건적인 사랑을 바라는 마음, 그리고 사랑을 통한 자신의 무의식적인 욕구를 충족하려는 마음이다.

 

무의식적이기는 하지만, 상대방에게 대가 없이 ‘퍼 주는’ 이들은, 사실 사랑에 굶주린 사람일 수 있다. 그들은 성장 과정에서 자신이 사랑받을 만한 사람인지에 대한 의구심을 가지게 되었고, 급기야는 무엇인가를 내가 ‘먼저’ 내주어야 겨우 그에 상응하는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관계에 대한 조건적인 관점을 발달시켜왔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부모와의 관계,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여러 좌절을 경험하면서, 특히 관계의 영역에서는 자기희생의 스키마(self-sacrifice schema)가 더욱 견고해진 것이다. 관계에서의 자기희생은, ‘나를 사랑해 주세요.’ ‘나에게 관심을 보여주세요.’ 라며 울고 있는, 아직 채 성장하지 못한 채 마음속에 살고 있는 아이의 행동일 것이다.

 

이러한 아이의 행동은, 일견 이해가 가지만 미숙하기 마련이다. 만약 내가 관계에서 일방적으로 희생을 하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면, 관계의 무게가 시작부터 한쪽으로 쏠려 있음을 느낀다면, 자신의 성장 과정과, 지금까지의 관계에 대해서 돌아보도록 하자. 그리고 그 사랑을 가장한 자기희생의 수면 밑에는 어떤 무의식이 작동하고 있었나에 대한 이해를 해 보기를 바란다. 관계의 순간에 다시금 정도를 넘어선 행동을 하고 있음을 인식하고, 이를 바로 잡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만약, 상대방의 끊임없는 희생에 부담을 느끼고 있는가? 쉽게 끝내버릴 관계가 아니라면, 상대가 하는 행동에서 ‘외롭고 쓸쓸한, 그래서 사랑을 갈구하는 어린아이’를 보려는 노력이 도움이 될 것이다. 상대의 행동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상대에 대한 정서적인 공감과, 이해를 해 주는 것이 그 아이를 달래어 줄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이러한 노력에서, 어긋난 관계가 바로잡히기 시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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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에는 균형감이 필요하다

 

두 개의 고무공이 맞닿아 있는 모습을 상상해 보자. 양쪽에서 고무공을 밀면, 두 개의 고무공은 원래의 매끈한 형체를 잃어버리고, 보기 싫게 쪼그라든다. 또한, 밀어내는 힘에 대한 반발력은 그 상태를 유지하기 힘들게 한다. 금세 서로를 다시금, 멀리 밀쳐내기 마련이다.

 

두 사람의 관계도 같은 모습이 아닐까. 집착과 과도한 자기희생,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 이상의 ‘사랑’은, 사랑을 가장한 이기심이다. 그 내면에는 상대방에게 사랑을 강요하는, 혹은 상대에게 모든 것을 내맡기고 의존하고 싶어하는 뒤틀린 의도가 도사리고 있다. 관계에는 두 고무공이 보기 좋게 붙어있는 것처럼, 긴장과 멀어짐 사이에 있는 균형감 있는 지점이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그 지점을 찾기 위해서는, 자신과 상대방에 대한 이해와 공감이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글쓴이_신재현 강남 푸른 정신과 원장
계명대학교 의과대학 및 동 대학원 졸업 
(前) 국립부곡병원 진료과장
(前) 국립공주병원 진료과장 / 아동청소년 정신건강센터 진료과장
(現) 순영병원 진료과장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정회원
한국인지행동치료학회 평생회원
대한불안의학회 불안장애 심층치료과정 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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