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키우면서 보내는 하루하루, 다이내믹하죠? 하루에도 몇 차례씩 위기상황을 겪고 그 위기의 순간을 겨우 막아내고 나면, 온몸에 진이 빠진다는 표현을 실감하곤 합니다. 그러다 보면 잠깐 한 눈 파는 사이 큰 사고가 벌어져 버리기도 하지요.

 

저희 셋째가 딱 이런 시기입니다. 생후 10개월, 기어 다니는데 도가 터 온 집안을 쓸고 다니고, 잡고 설 수도 있게 되면서 제 키 반만 한 가구에 겁도 없이 기어 올라갑니다. 또 누가 호기심 대장 아니랄까 봐 갑자기 웩웩대서 놀라 입을 훑어보면 희한한 장난감이 나오기도 합니다. 작은 건 다 치웠다고 생각했는데... 식겁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죠. 새벽부터 쫓아다니느라 피곤해 잠깐 꾸벅하고 졸면 또 어느새 아슬아슬한 곳에서 곡예를 하고 있습니다.

 

사진_작가

 

콩 심은데 콩 나는 법이니, 사실 저는 뭐라 할 말이 없습니다. 이 에너자이틱 한 어린이들, 다 제 유전자 타고난 것 아니겠어요? 어렸을 적, 수많은 곡예의 흔적들이 제 몸 이곳저곳에 남아있으니까요.

 

제 양쪽 대퇴부엔 큰 화상 흉터가 있습니다. 세 살 때 일인데 그때 아픔이 얼마나 컸던지 당시 장면 하나하나가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삼촌을 따라 들어간 주방, 식탁 의자에 앉아 컵라면에 물이 부어지는 모습을 신기하게 보고 있었습니다. 컵라면 용기 안에 맛있게 생긴 마른 고명이 녹고 있더군요. 옆에 놓인 젓가락을 들어 그 고명을 집어 들었다 싶었는데... 양반다리를 하고 있던 세 살 어린이의 다리, 그 연한 피부에 방금 끓인 물이 엎질러지고 만 거죠.

 

그때 아파서 울면서 눈물방울 사이로 보이던 할머니의 걱정스러운 얼굴까지 기억이 나고 이후 기억은 없습니다. 어머니께 들으니 그 날 병원에서 치료받고 붕대를 감은 채 퇴원했다고 합니다. 그대로 유지하면 좋으련만, 자전거를 타고 노느라 붕대가 다 풀려도 모르기를 수차례였다고 하네요. 흉이 남지 않을 수가 없었겠죠?

 

그때 기억이 있어 소아 화상을 당한 아이가 오면 붕대를 감고 나서 풀리지 않도록 추가 조치를 해주곤 합니다. 정수기를 만지다 뜨거운 물이 나오는 곳에 손이 끼어 데인 아이, 엄마가 방금 탄 뜨거운 커피를 호기심에 잡아끌다 데인 아이, 전 부치는 데 어느 틈에 기어 와서 기름판에 올라가겠다고 하다 다친 아이 등, 여러 가지 상황으로 응급실에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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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화상의 초기 처치에 대해 한 번 짚고 넘어가야 하겠죠? 일단 성인이던 소아던 화상이 발생하면 차가운 수돗물로 환부를 씻어주어 화기를 빼 줘야 합니다. 비벼 닦으면 안 되고 흐르는 물에, 아니면 찬 물을 보충해가면서 적어도 10분 이상, 가능하면 30분가량 식혀줄 것을 권장합니다.

 

찬 물에 오랜 시간 노출되면 아무래도 피부가 아리죠. 너무 시려서 아이가 힘들어하면 온도를 미지근하게 조절하더라도 식히는 작업을 멈추면 안 됩니다. 바깥 피부는 차갑더라도 안쪽에는 화기가 남아 환부를 물 밖으로 빼면 곧 수포가 올라오는 걸 볼 수 있습니다.

 

간혹 물이 아닌 다른 물질로 화기를 빼겠다고 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소주와 치약, 간혹 된장도 발라오시는 경우가 있는데요. 좋은 처치가 아닙니다. 알코올이 기화가 잘 되고 치약은 시원한 느낌이 있어서 착각하시는 경우인 것 같네요. 피부 안쪽의 화기를 식히기 위해서는 차갑고 값싼 다량의 수돗물을 대신하긴 어렵다는 것을 기억하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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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소아 화상은 대부분 손을 데이는 경우가 많아 처치에 어려움을 겪습니다. 좀 큰 아이들은 협조가 된다지만 돌 전후의 아이들에게 협조를 기대하기란 어렵겠죠. 어렵게 처치를 마치고 나면 손에 양말을 씌우는 등의 방법으로 붕대를 풀지 않도록 하실 필요가 있습니다. 응급실에서는 보통 다음날까지 화기를 빼줄 젤리가 묻어있는 화상 전문 재료를 덮어 도움을 드립니다. 흰색 화상 크림을 바르는 경우도 있는데 화기가 충분히 빠진 경우에만 유효합니다. 요즘은 좋은 화상 전문 치료 재료들이 많거든요.

 

수포가 잡히지 않은 1도 화상은 외래에서 1~2일 정도 더 진행되지 않는지만 지켜보면 되겠습니다. 하지만 방금 끓인 물 등에 데인 경우는 좀 다르죠. 맑은 수포가 잡히는 얕은 2도 화상인 경우가 가장 흔합니다. 치료 기간도 2주 정도로 길게 잡고 외래를 통해 지켜봐야 합니다. 여기까지는 치료만 잘 되면 큰 흉터 없이 나을 수 있는 상태입니다.

 

그 외에 고온의 기름에 데거나 불에 직접 데거나 하면 깊은 2도 또는 3도의 중한 화상이 생기는 경우가 있습니다. 손과 발, 관절 부위, 얼굴이나 성기 등 기능적으로 중요한 부분인 경우에는 화상 전문 병원에서 입원해서 치료받을 필요가 있겠습니다. 하루에도 여러 차례 상처를 관리해 줄 필요가 있어 그렇습니다.

 

기타 특수한 화상에 대해서도 알려드릴 필요가 있을 텐데요. 소아에서 특수한 화상의 대표 격은 전기 손상일 겁니다. 콘센트에 젓가락 넣을 때나 피복 벗겨진 전선을 만지거나 입에 넣다가 발생하는 경우죠. 다행히 집에서 사용하는 220V 전기는 신체 내부까지 흘러 들어갈 정도의 전압은 아니라고 합니다. 하지만 소아의 경우에는 좀 더 조심할 필요가 있겠죠. 혈액 검사에서 이상이 있거나 경련이나 구토, 의식장애 등 신경학적 증상이 동반되었다면 응급실에서 진료받고 입원 치료를 고려하는 게 맞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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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직접 경험한 질환을 앓거나 외상을 당한 어린 환자를 보게 되면 아무래도 남의 일 같지 않게 느껴집니다. 부모님의 마음도 더 잘 이해가 되죠. 처음엔 당황해서, 나중엔 자책의 감정에 괴로워하실 수 있겠죠. 그 때 엄마 아빠께 드리지 못한 말씀, 지면을 통해 전합니다.

 

아닙니다. 아이들 언제나 다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잘 해 오셨잖아요? 잘 하고 계신겁니다.

 

위기의 하루하루에 힘들다 싶으면서도 평화롭게 잠든 내 아이 보고 있으면 뿌듯하고 사랑스럽잖아요? 혼자만의 고생 아닌 우리 엄마 아빠들의 숙명인 것 같습니다. 같이 힘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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