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신재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자신들에게 익숙한 행동을, 자녀에게서 보았던 적이 있는가? 자녀를 키워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제 갓 돌이 지난 아이가 부모가 자주 흥얼거리는 노래의 리듬을 따라 하거나, 부모의 사소한 습관을 그대로 흉내내는 모습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처럼, 아이는 부모의 모습을 끊임없이 체화시켜 나가며 성장한다. 이를 사회학습이론 (social learning theory)에서는 모델링 (modeling)이라고 부른다.

 

아이가 태어나면, 성장의 초기에는 나와 타인이 구분되지 않는 상태이다. 아이는 자신에게 따뜻한 우유, 편안한 잠자리를 비롯한 모든 것을 전적으로 제공하는 부모, 특히 어머니의 존재와 자신을 동일시한다. 그런 의미에서 어머니의 존재는 절대적이다. 점차 여러 경험이 아이의 독립적 정체성을 만들어가긴 하지만, 여전히 자라나는 아이에게 부모는 거대하고도 위대한 우주인 것이다.

 

사진_픽사베이

 

거울 뉴런 시스템과 스키마(schema)

 

거울 뉴런 (mirroring neuron)이라는 이론이 있다. 90년대 이탈리아의 한 과학자의 연구에서, 원숭이가 특정 활동을 할 때와, 다른 원숭이가 동일한 활동을 하는 것을 바라볼 때 모두 동일한 부위의 뇌 부위가 활성화 된다는 것을 발견했다. 즉, 상대방을 볼 때, 마치 내가 상대방인 것처럼, 상대방의 마음에 이입하여 반응할 수 있다는 가설을 입증한 것이다. 물론, 인간을 대상으로 지속적인 연구를 통한 추가적인 이론 입증이 어려워 처음과 비교하여 열기는 많이 사그라 들었지만, 타인에 대한 공감(empathy)과 마음이론(theory of mind), 그리고 모방과 학습에 관여하는 뇌 부위가 있다는 것은 인간의 여러 행동들을 설명하는 근거가 될 수 있다. 모델링 또한 이 시스템과 연관되어 있을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성장하는 아이의 뇌의 어딘가에서는, 부모의 말과 행동, 상황에 반응하는 특정 패턴들을 인식하고 암호화하여 저장하며, 다시 저장된 내용을 바탕으로 부모의 행동을 인식하고 확인하는 일을 되풀이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거치며, 아이는 특정 상황에서는 특정한 반응으로 대처하는 부모의 모습을 그대로 닮아가게 된다. 결국 이러한 뇌의 끊임없는 활동은 나와, 세상과, 미래를 바라보는 관점을 점차 만들어가는데, 이를 인지치료 이론(cognitive therapy theory)에서는 스키마(schema)라 부른다.

 

한 번 형성된 스키마는 쉽게 바뀌지 않는다. 아이의 뇌는 성장하면서 무수하게 자라나는 신경세포의 연결 가지들을 가지치기(prunning)하며, 정교화되고 의미 있는 신경체계만을 남기게 되고, 남은 신경세포들은 각 부위에서 단단하게 자리 잡아 인간의 삶에 필요한 부분들을 담당하기 시작한다. 외부의 자극을 해석하고 반응하고, 대처하는 패턴들은 초기의 성장 과정에서 이미 어느정도는 공고화 된 것이다.

 

결국, 뇌 신경체계에서 가지치기가 이루어지는 초기의 성장과정은 아이의 관점이 형성되는데 있어 ‘결정적으로 중요한 시기’ (critical period)라 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아이에게는 우주와 같이 위대하고 넓은, 그리고 한 때는 아이에게 전부였던 부모의 역할은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할 것이다. 부모의 행동이 뇌 신경 수준에서부터 아이를 변화시킨다는 것을 안다면, 지금 이 순간 아이가 나를 어떠한 시각으로 바라보고, 받아들이고 있는지를 인식할 필요가 있다.

 

사진_픽셀

 

아이의 건강한 성장을 위해서는, ‘밀당’이 필요하다

 

Jeffrey E. Young 이 주창한 스키마 치료 이론(schema therapy theory)에서는, 아이의 성장 과정에서 다음과 같은 5가지 영역에서의 정서적 욕구(emotional needs)가 존재한다고 이야기한다. 1) 타인과의 안정 애착, 2) 자율성과 정체감, 3) 현실적인 한계에 대한 적절한 자기 통제감, 4) 감정과 욕구의 표현, 5) 자발성과 유희에 대한 욕구들이 그것이다. 

 

아이에게는 본능적으로 사랑받고, 보살핌을 받고 싶은 욕구 말고도, 두렵고 무섭지만 혼자서 무엇인가를 해낼 수 있는 자율성에 대한 욕구도 가지고 있다. 자율성을 토대로 자신의 정체감을 만들어 간다. 자신의 감정과 욕구를 표현하면서도 유희, 즐거움을 추구하려는 욕구도 가진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건강한 성장을 위해서는 현실적 한계에 대해서 적절한 자기 통제감의 욕구도 엄연히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아이의 이러한 욕구들을 모두 맞추어 줄 수는 없다. 아이에게 애착을 가지고 사랑을 듬뿍 주어야 하지만, 아이가 여러 번 넘어지더라도 혼자 걸을 수 있도록 멀리서 지켜보는 적당한 거리감이 부모에게는 필요하다. 아이가 자신의 감정과 욕구를 충분히 표현하도록 도와주면서도, 지나칠 때는 적절한 절제에 대한 훈육이 필요하지는 않을까. 즉, 아이의 욕구를 인지하면서, 한편으로는 균형감 있는 충족이 필요할 것이다.

 

지나친 욕구의 충족은, 과잉 만족을 넘어 과대한 자아상을 가지게 만들며, 결국 이는 아이에게 충동성과 자기 조절의 어려움을 낳는다. 지나친 욕구의 좌절은, 뇌신경 체계의 어딘가에 생채기를 남기고, 이는 부정적이고 왜곡된  관점으로 세상을 받아들이도록 만든다. 요는, 과잉 충족과 좌절 사이에서 적당한 ‘밀당’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그리고, 아이가 가진 정서적 욕구를 얼마나 적절하게 균형을 잘 맞추어 주는가에 따라 세상을 보는 관점, 즉 스키마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사진_픽셀

 

좋은 엄마=완벽한 엄마?

 

우리나라의 출산율이 심각하게 감소하고 있다. 다자녀 가정이 눈에 띄게 줄고 있다. 요즘은, 아이가 둘만 되어도 ‘용감한 결정’ 이라 말하는 사회가 되었다. 팍팍한 현대 사회에서 여러 명의 아이에게 관심을 분산시키기보다는 한 아이에게만 아낌없이 정서적, 물질적 지원을 해주고 싶다는, 요즘 젊은 부부들의 공통된 생각 때문일 것이다. 맞벌이 부부가 늘어난 것도 한몫했음은 물론이다.

 

순기능도 있다. 애초에 열 손가락을 다 꼽을 정도로 많은 형제자매들에게 치여 제대로 된 관심을 받지 못하고 정서적 박탈감을 느끼며 살아온 우리네 어른들의 삶보다는, 요즘의 아이는 분명히  물질적으로, 그리고 정서적으로 풍요로울 것이다. 하지만, 소홀했던 (이 또한 부모의 지나친 염려일 수 있지만) 아이에 대한 미안함과 자책감에, 보상적으로 한 아이에게만 집중된 관심과 무분별한 사랑은 오히려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

 

Good mother는 Perfect mother가 아니다. 아이의 모든 욕구를 충족시켜주려는 욕심은, 역설적으로 아이에게 진정 필요한 것이 결여되게 만들기도 한다. Good mother는, 그저 Enough mother이면 되는 것이다. 아이에게 필요한 욕구가 무엇인지를 잘 인지하고 도움을 줄 수 있으면서도, 필요할 때는 충분한 거리를 두고 지켜보는, 아이의 욕구 사이에서 ‘밀당’을 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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