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_픽사베이

 

이전 이야기처럼, 환자가 운이 좋아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난 경우도 있지만, 주위에서 시행한 적절한 응급처치가 생명을 구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주말이던 어느 날, 앰뷸런스 소리가 요란하게 들리더니 젊은 남자 한 명이 급히 실려 들어왔습니다.

 

“CPR (Cardio-Pulmonary Resuscitation, 심폐소생술) 이에요!”

 

소리에 놀라 소생술 방으로 들어가 119 대원으로부터 환자를 인계받았습니다. 환자는 집에서 식사를 하던 중 갑자기 쓰러져 신고가 되었고, 119 대원이 현장에 도착했을 땐 의식이 없는 상태였다고 합니다.

 

현장에서 바로 적용한 자동제세동기에서 심실세동이 확인되어 제세동(전기충격) 후 심폐소생술을 하였고, 의식이 깨어나는 양상을 보여 바로 이송했다 했습니다. 병원에 도착했을 때 환자는 의식은 혼미했지만 서서히 깨어나고 있었고 동공 반응도 있었습니다. 저는 기관삽관 없이 산소마스크와 수액치료만 시작하기로 하고 바로 저체온 치료를 고려하기 위해 대학병원으로 이송을 결정했습니다.

 

제가 직접 이송에 참여하기로 하고 보호자와 함께 앰뷸런스에 타 자세한 상황을 물었습니다. 환자는 심장질환으로 치료받던 중이었는데 부인과 함께 식사하다 갑자기 쓰러진 후 의식이 없어져 부인이 119에 신고했다고 했습니다. 이후 부인이 평소 배워 뒀던 심폐소생술을 시행하면서 5분을 버티며 119 대원이 도착하기를 기다렸고, 119 대원이 도착하자마자 제세동을 시행하면서 환자의 심장이 정상적으로 뛰기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정말 하늘이 도운 것 같은 행운이다 싶었습니다. 이송 도중 환자의 의식은 점차 좋아져 도착 직전엔 자신의 이름을 말할 수 있을 정도의 상태가 되었습니다.

 

보호자로 함께 온 만삭의 부인이 침착하게 심폐소생술을 한 덕분에 자칫 아버지를 잃을 뻔 한 아이 또한 구해 내었습니다. 119 대원들도 훌륭한 처치로 두 사람, 아니 세 사람을 구해내었습니다. 현장에서의 심폐소생술로 의식이 완전히 깨어날 정도의 결과를 보이는 경우는 흔한 경우가 아니어서 저 또한 더욱 기쁨이 컸습니다. 병원으로 돌아오던 중 저와 구조대원들은 늦은 점심 삼아 왕돈가스를 먹으면서 이날을 기념하는 기쁨을 나눴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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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행운이 함께했던 이야기만 들려드리게 되네요.

 

레지던트 시절 제가 중환자실 주치의를 맡고 있을 때의 일이었습니다. 당시 수련을 받던 병원에서는 흉부외과 교수님이 응급의학과 소속으로 계셔서 흉부 외상 환자를 응급의학과에서 치료하곤 했습니다.

 

밤늦은 시각 응급실에서 급한 연락이 왔습니다. 공사장에서 굴삭기 운전석에 앉아있던 분이 수십 톤 되는 물체와 부딪치는 바람에 가슴 부위를 다쳐 응급실로 이송되었다고 했습니다. 검사 결과 갈비뼈 골절과 함께 심장과 심낭 사이에 약간의 혈액이 차 있었는데 양이 많지 않아 수술 준비만 해 놓고 중환자실에서 관찰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환자를 중환자실로 옮겨 추가 처치를 시행하고 있던 중, 갑자기 환자가 가슴의 답답함을 호소하였고, 혈압이 60 아래로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맥박 또한 급격히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때 가장 가능성이 높은 상황은 심낭에 찬 혈액의 양이 증가하며 심장을 누르는 심장압전 상태... 응급의학과 수련을 받으면서 가장 긴급한 상황으로 배우긴 하지만 직접 경험하기는 어려운, 드물지만 사망 가능성이 대단히 높은 상황입니다.

 

당장 급히 심장 주위의 압력을 줄여 주기 위한 심낭천자술(흉골 아래쪽에서 굵고 긴 바늘을 심장 아래 방향으로 찔러 넣어 심장이 뛰지 못하게 막고 있는 심낭의 혈액이나 체액을 빼내는 시술)을 시행해야 했기 때문에 긴급히 선배 연차 레지던트와 교수님을 모두 호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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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심낭천자술 준비를 마치고 시행하려는 찰나, 환자의 의식이 없어지며 심전도는 평행선을 보였습니다. 즉시 저는 환자의 가슴 위로 올라가 심폐소생술을 시작했고 때마침 도착한 선배가 급히 심낭천자를 시행했습니다. 잠시 후 어느 정도 고인 혈액을 빼내고 나니 다행히 환자의 심장은 다시 뛰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배액통에 연결해 놓은 관을 통해 나오는 혈액의 양이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만약 심낭에 고인 혈액만 빼내는 상황이라면 많아도 200cc 정도면 멈춰야 할 텐데 이미 그 두 배를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는 심장벽이 천공되어 출혈이 지속되는 상태, 즉 응급 수술을 해야만 환자를 살릴 수 있는 상태였습니다.

 

부랴부랴 응급 수술 스케줄을 잡고 흉부외과 교수님과 마취과에 연락해 수술팀을 구성, 환자와 함께 수술방으로 출발했습니다. 직접 수술에 참여하진 않았지만 나중에 들으니 수술방에서도 상황이 참 드라마틱했다고 합니다. 흉골을 반으로 가르고 심낭을 열자마자 혈액이 분출되었지만, 다행히 교수님의 두 손가락 사이로 찢어진 우심방이 단번에 잡히면서 혈압이 올랐다고 합니다.

 

드라마틱한 수술을 마친 후 환자는 의식을 되찾아 중환자실에서 병실로 옮겨졌습니다. 한 달여 뒤에는 걸어서 퇴원까지 했다는 기쁜 소식을 들었습니다. 한동안 의국에서는 이 사건을 당시 방영하던 드라마 제목을 빌려 '뉴하트 케이스'라고 불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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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상황, 응급실에서만 벌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주위에서도 언제든 응급상황이 벌어질 수 있습니다. 모든 응급상황에 대한 조치를 알고 있을 순 없겠지만, 적어도 119 대원이 도착하기 전에 여러분이 도움을 줄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면 한 생명을 살리는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이번 에피소드에서와 같이 그 한 생명이 다름 아닌 ‘내 가족’이 될 수도 있겠죠. 우리 모두가 심폐소생술 등 응급처치에 대해 알고 시행할 수 있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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