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_픽사베이

 

이번 이야기는, 예기치 못한 교통사고와 관련한 가슴 아픈 이야기입니다. 응급실에서 근무하다 보면 특히 교통사고와 관련해 안타까운 경우를 많이 보는데요. 비 소식이 들려오는 날이면 도로 어딘가에서 사고로 고통에 신음하는 분이 계시는 게 아닐지 걱정이 됩니다.

 

저는 중학생 시절, 수학여행을 다녀오던 중 큰 사고를 당할 뻔 했습니다. 관광버스를 타고 가는데 갑자기 차가 크게 흔들리며 도로 바깥쪽 산기슭에 부딪혔습니다. 창문을 깨고 나와서 확인하니 바로 1m 앞이 낭떠러지였습니다. 아,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네요.

 

그때 맨 뒷자리에 탔던 친구는 앞으로 고꾸라진 데다 하필 머리 위로 오디오 시설까지 떨어지는 바람에 많이 다쳤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정비 불량으로 조향 장치가 고장나 핸들 조작에 문제가 생긴 상황이었습니다. 운전사 아저씨께서 더 큰 사고를 막기 위해 일부러 낭떠러지가 나타나기 전에 산기슭 쪽으로 방향을 튼 거라고 하더군요. 그때 처음으로 교통사고의 위험성을 크게 느꼈습니다.

 

무더운 여름의 한 가운데가 지나고 장마가 시작되었을 때였습니다. 장대비가 오는 장마에는 응급실 환자가 줄어듭니다. 아무래도 극심한 통증이 아니고서야 밤에 빗길을 뚫고 응급실에 오기는 부담이 돼서 그럴 겁니다.

 

그래서인지 그날 밤은 평소에 비해 비교적 조용한 분위기였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비가 오면 교통사고 환자는 더 증가하기 마련입니다. 약한 빗방울이 내리면 접촉사고가 늘어 목을 잡고 오는 환자들이 생깁니다. 그러다 폭포 같은 비가 쏟아지면 중한 교통사고를 당한 환자가 발생하게 됩니다. 그때부터 응급실 의료진은 벌집 쑤신 듯한 혼란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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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습 나온 의대생들과 응급구조과 학생들도 모두 귀가하고 저를 포함한 당직의 세 명만 남아 자리를 지키고 있을 때 응급실로 전화 한 통이 걸려 왔습니다.

 

“응급실이죠? 앰뷸런스 좀 보내 줄 수 있어요?”

 

종종 병원 앰뷸런스가 119처럼 환자를 병원에 데려다 주는 줄 알고 문의하는 경우가 있어 환자의 보호자 되시냐고 묻자 뜻밖에도 119 상황실이라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지금 사고가 났는데 119 차량이 모자라서요.”

 

일단 원무과로 전화를 돌리고 나서 생각해 보니 웬만한 대형사고가 아니고서야 119 앰뷸런스가 모자랄 일은 없을 텐데 이상하다 싶었습니다. 저는 미리 소생실을 준비할 것을 지시하고, 만약을 대비해 팀을 조직하고 있었습니다. 마침 다른 환자를 이송하기 위해 119 대원이 들어오기에 혹시 근처에서 큰 사고 난 것이 있냐고 물었지만 정확하게는 모르겠고 급한 무전이 들어오긴 했다는 답변만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CPR요!”

 

아니나 다를까 불안한 예감은 적중했습니다. 응급실 입구에서 119 대원이 환자를 싣고 뛰어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먼저 들어온 환자는 50대 남자로, 안면부가 피투성이가 된 채 얼굴 부위가 적갈색으로 변해 있었고 심하게 부어 있는 상태였습니다. 이런 상태는 외상성 질식(강한 가슴 압박이나 순간적인 타격으로 순환이 되지 않는 상태)을 추정할 수 있는 소견이었습니다. 심박동이 전혀 없어 바로 심폐소생술을 이어갔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얼굴에 붓기까지 심해 기도가 보이지 않아 기관 삽관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다음 환자가 도착해 옆방으로 들어가는 것이 보였습니다.

 

연락을 받고 추가 환자를 대비해 내려와 있던 4년차 선배와 병동 주치의, 중환자실 주치의가 두 번째 환자를 맡았습니다. 두 번째 환자는 젊은 남자로, 밖으로 보이는 출혈은 없었지만 혈색이 창백하고 심박동이 없는 상태였습니다.

 

일단 첫 번째 환자의 기도를 확보하는데 성공했습니다. 다시 진찰해 보니 양쪽 갈비뼈 골절이 여럿 만져졌습니다. 흉관 삽입을 준비하도록 해 놓고 심폐소생술을 지속하도록 했습니다. 잠시 두 번째 환자의 상태를 보러 옆방으로 가려는데... 그때 119 대원과 함께 환자 한 명이 더 실려 들어오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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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습니다. 의료진 인력이 외상에 의한 심폐소생술 세 건을 한꺼번에 시행할 정도의 여력이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원래 이런 상황이 예견되었다면, 현장에서부터 미리 심정지 환자 중 살릴 가능성이 있는 환자와 없는 환자를 가려내는 환자분류(triage)를 했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에겐 환자 수와 현장에 대한 정보가 없었습니다. 양쪽 방에서 심폐소생술을 시행하는 사이 한 명이 더 추가되었고 게다가 뒤에 추가 환자가 더 있다는 119 대원의 말에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결정을 내리기로 했습니다.

 

2편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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