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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글에서 이어집니다.)

지난 글

http://www.psychiatricnews.net/news/articleView.html?idxno=7369

 

“1번 방 CPR 그만합시다. 1, 2년차들은 모두 나가서 방금 도착한 환자 밖에 있으니까 거기 도와줘!”

 

결국 외상성 질식에 양쪽 흉부가 완전히 부서져 소생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되는 첫 번째 환자를 포기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소생실 부족으로 일반 중증환자가 누워 있는 응급실 중환자 공간에서 심폐소생술을 시작한 세 번째 환자도 아직 앞날이 창창해 보이는 젋은이. 귀에서 출혈이 있는 것으로 보아 두개골절, 뇌출혈이 의심되었고 심박동은 없는 상태였습니다.

 

두 번째 환자를 보던 4년차 선배가 먼저 나와서 환자를 데려온 119 대원들의 도움을 받아 심폐소생술을 시행하고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세 번째 환자에 의료진을 배치한 저는 다시 두 번째 환자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소생실로 들어갔습니다. 심전도에 신호가 있어 잠시 손을 떼어 보도록 하니 심실세동(심장이 부르르 떠는 상태)의 심전도가 나타났습니다.

 

“CPR 하고 있어. 쇽 하자.”

 

제세동을 한차례 시행하고 다시 소생술을 지속하던 중 밖에서 4년차 선배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석재야! 2번 방 그 환자 오른쪽에 먼저 튜브 넣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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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환자를 위해 준비되었던 흉관 세트는 결국 첫 번째 환자가 아닌 다른 환자에게 사용되게 되었습니다. 미안한 생각이 잠시 들었지만, 감상에 젖을 새도 없이 세트를 옮겨와 응급 흉관 삽입술을 시행해야 했습니다. 부서진 갈비뼈 사이로 작은 절개선을 넣고 굵은 튜브를 넣자마자 뿜어져 나오는 적갈색의 피. 한눈에도 피의 양이 적지 않겠다 싶었는데 튜브를 고정하는 그 짧은 사이, 배액통은 벌써 반 이상 차오르고 있었습니다.

 

“여기 보틀 좀 바꿔 주세요!”

 

배액통을 바꾸고 나서도 심폐소생술을 하는 압박 그대로 심장에서 짜내듯 혈류가 뿜어져 나와 두 번째 통까지 가득 차 버렸습니다. 아직 접수도 되지 않아 응급수혈 요청도 못한 상태. 피가 준비되려면 적어도 20분은 버텨주어야 하는데, 이건 버틸 수 있는 출혈 속도가 아니었습니다.

 

수혈 대신 수액을 다량 주입하도록 하고 어쩔 수 없이 튜브는 잠가야만 했습니다. 빠져나오는 속도를 그나마 늦춰 볼 수 있는 방법은 튜브를 잠가 버리는 것 뿐... 심실빈맥이 한 차례 지나간 환자의 심전도는 이후 전혀 반응이 없었습니다.

 

절망적인 흉강 내 출혈을 확인했지만 심실빈맥이 한 차례 있었고 워낙 젊은 환자라 좀 더 소생술을 시행해 보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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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다른 환자들을 확인해야 할 때...

 

세 건의 심정지 환자에 의료진이 붙어 있는 사이, 외상 처치실에 환자 두 명이 더 들어와 있었습니다. 둘 다 젊은 환자였는데, 첫 번째 환자는 다리 골절만 있어 보여 그나마 다행이었습니다. 두 번째 환자는 얼굴에 여러 상처가 있고 횡설수설하는 모습이었습니다. 머리 안쪽에 출혈이 있을 가능성이 높은 상태라 서둘러 CT 검사를 의뢰해 놓고 사고 경위를 알기 위해 경찰을 찾았습니다.

 

하지만 응급실을 방문한 경찰도 상황을 모르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워낙 심한 빗길에서 일어난 사고라 현장의 목격자가 확보되지 않은 모양이었습니다. 그나마 정신이 가장 멀쩡한 외상처치실의 첫 번째 환자로부터 경찰이 얻어 낸 정보는, 네 명의 10대 청소년들이 탄 승용차와 마주 오던 택시가 부딪혀 사고가 났다는 것.

 

먼저 심정지 상태로 왔던 두 명의 젊은이가 운전석과 조수석 탑승자, 마지막으로 도착한 외상 처치실의 두 명이 뒷좌석 탑승자였던 모양입니다. 또 한 명의 심정지 상태로 온 50대 남자는 택시 승객이며, 택시 운전사는 그나마 상태가 가장 경미하여 거리가 먼 다른 병원으로 옮겨졌다고 했습니다.

 

친구들과 비 오는 한밤 중 함께한 모험의 결과는 엄청난 후폭풍으로 돌아왔습니다. 초기에 심정지 상태로 들어왔던 세 명은 결국 사망 선언을 해야만 했습니다.

 

잠시 후, 한 어머니가 응급실에 도착해서는 아들의 얼굴을 확인하고 오열하기 시작했습니다. 잠깐 나갔다 온다는 말과 함께 집에서 나가는 걸 봤는데 이게 어떻게 된 거냐고 울부짖었습니다. 다른 보호자들도 연락을 받고 속속 도착, 응급실은 온통 울음바다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렇게 그날 밤은 폭포처럼 쏟아지는 빗줄기와 아들들을 잃고 응급실에서 오열하는 부모님들의 눈물이 겹쳐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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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나 지금이나 외상환자의 치료에는 어려움이 많습니다.

 

그래서 최근 보건복지부에서는 몇몇 대형병원에 중증외상센터를 지정했습니다. 치료에 촌각을 다투는 외상환자를 따로 관리하고 예방 가능한 사망을 줄이기 위한 노력입니다. 응급의학과와 각 외과계열 교수님들이 한데 모여 팀을 구성해 대기하고 있다가 중증외상 환자가 발생하면 환자를 살리기 위해 적극적으로 개입합니다.

 

아쉽게도 제가 전공의였던 시절에는 이런 외상환자를 위한 시스템이 없었습니다. 지금처럼 응급실에 도착하자마자 의료진들이 함께 상의해서 빨리 수술 결정을 내려주었다면 몇몇 환자들의 생과 사의 갈림길은 달라졌을 겁니다. 어쨌든 지금은 많이 좋아졌고, 그 말은 곧 앞으로도 점점 좋아질 수 있다는 것이겠지요. 그래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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