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김지용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O씨의 사연

 

제 친구 중에 정말 왜 그러는건지 이해가 안 되는 A양이 있습니다.

A는 모든 것이 아주 평범한 친구인데, 외모나 조건이 눈에 띄게 화려한 B양에게 맛있는 것도 사주는 등 오랜시간 공을 들여 의도적으로 접근을 했습니다. 그럴 때는 하루에 카톡을 100개씩 보내는 등 B입장에서는 아주 부담스러운 행동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A는 신기하게도 B의 관심사를 묘하게 잘 짚어 냅니다.

 

"너 김군 어떻게 생각해? 걔도 너한테 관심 있는 거 같던데. 어머, 키 크고 잘생긴 걔랑 너랑 너무 잘 어울린다."라며 주변의 멋있는 남자와 연결을 시켜주려 했습니다. B는 자신의 마음을 잘 알아주고 옆에서 도와주는 천사 같은 친구라며 A를 너무나 고맙게 생각하게 되었고요. 그런데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니었습니다. A는 어느 순간부터 특별한 이유 없이 B를 슬슬 피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일방적으로 절교를 선언하였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패턴이 한두 번이 아니라는 겁니다. A는 처음부터 김군에게 관심이 있었고, 김군이 관심을 가질 만한 조건의 B에게 접근을 하는 거였습니다. 이런 식으로 거의 매년 1-2명의 대상에게 접근하고 버리기를 반복했습니다.

 

절교의 이유는 2가지 중에 하나였습니다. B가 김군과 진짜 가까워지면, 왜 나는 안 끼워주냐며 맹렬히 비난하다가 절교하거나, 만약 B와 김군이 가까워지지 못하면 그냥 외면하면서 절교하였습니다. 결국 B가 성공하든 못하든 다시 새로운 대상인 C양과 박군을 찾아 떠났습니다.

 

그리고 A는 B를 뒤에서 혼자 엄청 따라하고 있었습니다. 똑같은 귀걸이, 가방, 모자, 구두는 물론 SNS의 배경이나 프로필 사진까지도 비슷하게 하였습니다.

 

이 친구는 대체 왜 이러는 걸까요? 저도 얼마전까지 B의 입장에 있었는데, 그 관계를 거절하기도 힘들고 하루에 카톡을 100개도 넘게 보내는 A양의 집착의 늪에서 탈출하느라 너무 힘들었습니다.

 

A 에게 있어서 B는 단지 김군으로 가기 위한 자신의 아바타 같은 존재인 건가요?

 

사진_픽사베이

 

뇌부자들의 답장

 

안녕하세요, 뇌부자들입니다.

 

사연자 분께서도 얼마전까지 B의 입장이었다니, 마음 고생이 심하셨겠네요. 처음엔 상대가 친해지고 싶은 마음으로 다가와 잘해주고 칭찬도 많이 해주니까 싫지 않으셨겠지만, 이후 보이는 집착 수준의 행동들은 분명 심한 스트레스가 되었을 것 같습니다. A씨가 동성의 친구한테 보이는 패턴에 대해 ‘아바타’라는 표현을 쓰신 부분이 참 공감이 되더라고요. 주인공이 외계인 몸을 통해 감각을 느끼고 움직이고, 외계 부족 마을에서 생활하다가 다른 외계인과 사랑에 빠지기까지 하는 영화의 내용이 이 A씨의 패턴과 겹쳐 보이기도 했고요.

 

일견 보기에 정말 이해하기 힘든 A씨의 모습을 ‘동일시’와 ‘엘렉트라 콤플렉스’라는 두 가지 키워드를 통해 설명해보고자 합니다. 이미 눈치채셨듯, A씨는 김군과 맺어지고 싶은 욕구를 자신의 심리적 대리인인 B를 통해서 충족하려 했던 것 같아요. 우선 자신이 B가 되는 과정이 필요했겠죠. 마치 ‘아바타’ 처럼요. 그러려면 많은 것을 공유하고 공감해야 했을 거에요. 그래서 하루에 카톡을 100개 이상 하기도 했을 것이고, B의 관심사를 묘하게 잘 짚어내던 모습은 자신을 B로 생각했기 때문에 가능한 결과물이었겠죠. 이렇듯 심리적으로 동일시한 B가 김 군과 잘 맺어진다면 마치 자신이 그 남자와 잘 된 것 같은 느낌이 들고 기뻤을 겁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결국 잘 된 사람은 내가 아니라 B니까, A씨의 기분은 금세 안 좋아질 수밖에 없었을 거에요. 자신은 배제된 채 둘의 관계가 더 가까워지는 것을 옆에서 보며 느끼는 좌절, 분노 등의 부정적인 감정들을 B에게 투사하고 절교하게 되었던 것이죠. 반대로 B와 김 군이 가까워 지는데 실패했을 경우에도 A씨는 자신이 거절당한 것과 같은 느낌을 받았을 겁니다. 이럴 때는 자존감의 손상을 막기 위해 친구 관계를 깨뜨리고 ‘헤어진 것은 내가 아니라 B야’라며 스스로를 위안했던 것 같네요. 어차피 B와 가까이 지낸 것은 상대적으로 부정적인 자기 이미지를 대체하기 위한 동일시의 과정이었으니까 그런 심리적 이득을 얻을 수 없다면 관계 유지의 이유도 없었겠죠.

 

동일시는 자신이 다른 사람과 닮아가는 무의식적이고 자동적인 정신 과정으로, 그 대상은 사랑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고 싫어하거나 무서워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죠. 정신역동적으로는 남성에서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여성의 경우엔 엘렉트라 콤플렉스와 연관이 있습니다. 엘렉트라 콤플렉스는 인간의 발달과정 중 3-6세 시기의 여자아이가 아버지에게 애정을 품고 어머니를 경쟁자로 인식하는 현상을 뜻합니다. 이 시기 이전에는 어머니에게 애정이 집중되다가 아버지에게로 애정이 전환되며 어머니를 미워하게 되는데, 결국엔 자신의 무의식적 욕구가 불가능한 것임을 깨닫고 어머니와 자신을 동일시하며 이 콤플렉스를 해소해 나가게 되죠. A씨가 직접 남자에게 고백을 했다가 거절을 당할 것이 너무 두려워 B라는 대상과 동일시하는 과정은 어린 시절 해소되지 않은 엘렉트라 콤플렉스가 대인관계에서 반복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추측 가능케 합니다.

 

면담을 하다 보면 당연히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문제가 되는 연애 패턴을 가지고 계신 분들의 경우에 이성 부모와의 관계가 그 원인에 있는 경우가 꽤 있습니다. 여성의 경우 인생에서 처음으로 만나는 남성이 아버지, 남성의 경우 어머니이니 그 대인관계 패턴이 추후에도 지속되거나, 그 관계에서 해결하지 못했던 점들에 집착해서 매달리게 되기도 합니다. A씨의 경우 단 둘이 있기엔 어렵고, 어머니를 통해서만 접근이 가능했던 권위적인 아버지를 두었을 가능성이 있겠네요.

 

A씨가 매력적인 동성 친구에게 가까워지고, 이를 통해 이성에게 다가가려고 하는 이유에 대한 저희의 생각을 이야기해보았습니다. 자기 스스로의 강점과 매력을 믿지 못하고 타인에게 의존하게 되며 대인관계들을 단절시키게 되는 A씨의 모습에 참 안타까운 마음이 드네요. A씨의 이런 대인관계 패턴들은, 여러 미성숙한 방어기제들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계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방어기제라는 것은 무의식적으로 사용되기 때문에, 말 그대로 자신이 의식하지 못하고 있어서 잘못된 결과가 반복되는 것이죠. 어떠한 계기로든 A씨가 자신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고쳐나갈 수 있게 되기를, 사연자 분은 이번 일로 인한 상처에서 빠르게 회복되고 더 건강한 대인관계를 새로 맺어나가시기를 기원하겠습니다. 

 

뇌부자들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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