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김병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저는 비혼(非婚)을 고려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결혼한 여성이 감수해야 하는 게 너무 커서 결혼하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다. 일상생활을 할 때 엄마가 고생한 것만 생각하면 ‘나까지 결혼해서 그렇게 살아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명절만 봐도 엄마나 할머니가 고생하시는 걸 보면 굳이 저렇게 살아야 하는지 회의감이 들어요. 주변을 보면 알게 모르게 가정 폭력에 시달린 경험을 갖고 있던 친구들도 꽤 있고요. ‘결혼해서 오히려 더 불행해질 위험이 있다면 굳이 결혼을 할 필요가 없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나는 비혼 주의자다"라고 하면 주변에서 "너 그렇게 혼자 살다 보면 고독사 할지도 몰라"하고 겁을 주기도 하고, 아무래도 부모님께 죄송한 마음도 있기는 해요. 비혼을 선택한 나, 앞으로도 괜찮겠죠?"

 

사진_픽셀

 

 

비혼도 하나의 삶의 형태라고 생각합니다. 비혼을 추천한다거나, 비추천한다면서 어느 쪽이 더 낫다고 말씀드리고 싶지는 않습니다. 삶의 형태는 다양하고, 적절하게 선택된 삶의 양식은 모두 존중받아야 하니까요.

 

비혼을 선택하게 된 사람들의 동기를 들어보면 비슷한 이야기를 합니다. 부모님, 혹은 결혼한 가족을 옆에서 보면 행복해 보이지 않는데, 결혼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을 보고 그럴 바에는 비혼이 좋다거나. 남자, 혹은 여자와 함께 사는 것에 따르는 희생이 너무 커서 그럴 바에는 혼자의 삶을 선택했다고.

 

우선 비혼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보다는 ‘선택을 어떻게 하는가’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선택의 유형은 다양하지만 모든 선택은 두 가지로 나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가가는 선택과 회피하는 선택.

 

다가가는 선택은 무언가가 좋아서 선택하는 것입니다. 직장이나 배우자를 선택할 때 ‘내가 그 일이 좋아서요’, ‘그 사람을 사랑해서 선택했어요’라고 한다거나, 신발이나 치약을 살 때 ‘디자인이 좋아요’, ‘향이 좋아서요’라고 하면서 접근 선택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반대로 회피를 통해 선택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것도 싫고, 저런 일도 싫어서 그러다 보니 이 일을 하게 되었네요’ 라든가, ‘세상에 별 사람이 있나요? 이런저런 사람을 피하다 보니 저 남자랑 살게 되었어요’ 라든지, ‘내가 싫어하는 게 많아요. 그런 것들 피하다 보니 이걸 선택하게 되었어요’라고 말하는 경우가 해당합니다. 물론 회피도 중요합니다. 싫은 거, 위험한 건 피하는 게 좋고, 그래야 안전할 수 있죠.

그러나 안전은 회피를 통해 보장받을 수 있지만, 행복이나 만족, 성취, 뿌듯함, 이런 감정들은 접근 선택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습니다.

 

비혼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서 다시 한번 돌아보죠. ‘어머니 고생하는 게 싫어서’, ‘누군가와 살게 될 때 치러야 할 희생이 싫어서’, 이런 이유 때문이라면 회피를 선택한 것입니다. 이럴 때 안전하고 성가신 일은 줄어들 수 있지만, 행복이나 만족을 위한 선택이라고는 보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선택의 방향> 사진_픽사베이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있는데, 그러려면 나만의 시간이 꼭 필요해서요’, ‘아직 젊은데 이루고 싶은 목표를 위해서 나 자신에게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싶어서요’ 이렇게 선택된 비혼이라면 더 좋겠습니다. 비혼을 선택한 긍정적인 이유들을 찾아보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결혼의 이게 싫고, 누군가 같이 사는 게 저게 싫어서 선택한 것 밖에 떠오르지 않는다면 과연 내가 진정으로 비혼을 좋아하는 게 맞는지 되짚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비혼으로 살면 외롭고 고독해질까봐 걱정하는데, 결혼하고도 이혼하는 경우도 많고 기러기로 살다가 고독사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결혼이 행복을 보장하거나 외로움을 완전히 막아주는 건 아니니까 비혼을 선택하고 고독사할까 봐, 더 외로워질까 봐 걱정을 한다는 건 불필요한 걱정입니다.

오히려 이런 걸 걱정한다면 좀 전에 말했던 것처럼 비혼을 긍정적인 이유 때문에 선택한 것이 아니라는 의미일 수도 있습니다. 내가 진정으로 비혼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지에 대해서 다시 한번 고심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김병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전체기사 보기
저작권자 © 정신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