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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을 앞두고 놀고 싶은 마음

기사승인 2018.05.02  00:3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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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의학신문 : 허규형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K님의 사연>

 

안녕하세요. 저는 작년에 시험에 한 번 떨어지고, 올해 같은 시험을 다시 준비 중인 취업 준비생입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현재 고민은 ‘작년보다 더 발전한 제가 되어 열심히 공부하고자 하는 자아, 자신의 행동을 통제하고자 하는 자아’와 ‘내 앞에 주어진 공부 및 모든 과업들을 내팽개치고 싶은 자아, 이 생활 패턴의 고리를 잠시 끊고 훌쩍 여행을 떠난다거나 미친 듯이 일탈을 즐기고 싶은 자아’ 사이에 겪는 갈등에서 비롯된 문제들입니다.

이를테면, 다음날 스터디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서는 특정 범위를 공부해야 하는데, 해야겠다는 압박이 심해지면 그것이 더 열심히 공부에 매진하도록 하는 자극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작용합니다. 그래서 평소 관심도 없는 분야에 대한 유튜브 영상들을 계속 눌러보느라 약 12시간 넘게 시간을 보냅니다. 그 이후에는 밀려드는 후회와 자책감 속에서 부랴부랴 책을 한 번 쓱 읽어보는 정도로 공부를 마무리 짓고 스터디 모임에 참석합니다.

 

사진_픽셀

 

문제는 이러한 행동이 점점 패턴화 되어가고 있으며, 그러한 일탈행동을 하는 횟수도 증가하여, 거의 매일 같이 반복하고 있고 이 때문에 밤낮도 바뀌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유튜브 영상들을 보고 있을 때, 제 심리 상태가 문제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분명 유튜브 영상들이 재미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당장 제가 해야 할 일을 하기에는 막막하고 부담스럽기 때문에 마치 ‘제가 처음에 마음먹었던 의지에 시위라도 하듯이’ 그렇게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동시에 ‘이후에 잔뜩 미뤄둔 할 일들을 처리해야 한다는 두려움’과 ‘도대체 나는 왜 이렇게 달라진 것일까. 혹은 왜 이렇게 작은 일에도 쉽게 마음이 지쳐서 도망칠 구석을 찾는 것일까’라는 자책감 밀려옵니다. 그렇게 이런 행동이 스스로의 자신감을 하락시킨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마치 뭔가에 홀리기라도 한 듯이 그런 행동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행동 패턴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던 것은 작년 이맘때 쯤이었던 것 같습니다. 작년에 이 증상이 점점 심화되면서 괴로워 여름 무렵에는 심리 상담센터를 잠깐 들르기도 했고 시험 보기 직전까지 정신과에서 약을 복용하기도 했습니다. 거의 작년 하반기에 공부에 손을 놓다시피 했기 때문에 당연히 시험에는 낙방하였고 오히려 마음은 편안했습니다. ‘잘못 끼워버렸던 단추를 다시 풀고, 내 작년 인생을 리셋하는 마음으로 새롭게 다시 시작해보자’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공부를 열심히 하여 합격했던 주변 사람들을 보면서 열등감에 괴롭기도 했지만요. 작년의 불안정한 마음 상태로 취직을 하여 사회생활을 했다면 오히려 그것에 더 힘든 일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올해는 공부도 열심히 하고 마음이 어느 정도 편안해진 상태에서 더 나은 제가 되라는 계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얼마 가지 못해 작년의 습관들이 서서히 반복되고자 하는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저의 행동 패턴을 바꾸기 위해 주변 환경들을 많이 바꾸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그러던 중에 우연히 인터넷 검색을 통해 ‘어쩐지, 도망치고 싶더라니’ 책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사연 속 주인공들과 제가 닮은 점이 참 많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들의 어린 시절도 그렇고, 그들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세웠던 방어기제나 가짜 자아도 그렇고. 그래서 선생님들께 상담을 받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도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요?

 

 

<뇌부자들의 답장>

 

공부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 자꾸만 딴짓을 하게 되고 그 이후엔 내가 또 도망쳤구나 하는 자책감이 들어서 괴로워하고 계시네요. ‘자신의 행동을 통제하고자 하는 자아’와 ‘모든 것들을 내팽개치고 싶고 일탈하고 싶은 자아’ 사이에서 갈등을 겪고 계시다고 했는데 저희도 자주 겪는 일이라 공감이 많이 됐어요. 시험, 중요한 프로젝트를 앞두고 도저히 일이 손에 잡히지 않고 오히려 놀게 되거나 여행을 다니는 이야기들은 진료실에서나 저희 팟캐스트 사연들을 통해서도 자주 접하는 이야기죠. 우선 K님께서 혼자만 하는 고민이 아니라는 점을 아셨으면 좋겠네요.

 

K님은 본인의 문제에 대해 나름대로 답을 찾기 위해 노력하셨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앞서 말씀드렸던 ‘‘미친 듯이 일탈을 즐기고 싶어 하는 자아’와 ‘자신의 행동을 통제하려는 자아’ 사이에서 오는 갈등이다’라는 표현에 대해서 먼저 말씀드리고 싶어요. 프로이트는 정신이 원초아(id), 자아(ego), 초자아(superego)라는 세 가지로 구성되어 있다고 이야기했어요. 아주 간단히 설명하면 쾌락을 추구하는 이드와 좀 더 고차원적인 가치관과 도덕심을 관장하는 초자아가 갈등을 빚고, 자아는 가운데서 그 갈등을 중재하는 역할을 한다고 했죠.

K님의 이야기에 비추어 보면 ‘미친 듯이 일탈을 즐기고 싶어 하는 자아’는 이드에, ‘자신의 행동을 통제하려는 자아’는 초자아에 해당이 된다고 할 수 있어요. 그런데 이 초자아는 보통 어린 시절 부모님의 양육에 의해 형성이 됩니다. 엄격하고, 지나치게 통제된 환경에서 자라다 보면 초자아가 비대해지는 경우가 생겨요. 이렇게 되면 경직된 잣대나 관념으로 자신을 꽁꽁 묶어 버리는 결과가 발생하죠. 쉬어야 할 때조차도 ‘나는 최선을 다해 공부해야 하는데’라는 생각이 머리를 사로잡아서 온전히 쉬질 못해요. 이렇게 초자아의 힘이 강력하다 보니 자아는 ‘유튜브를 본다’라는 일종의 소심한 일탈을 탈출구로 택한 것으로 보여요. 본인이 좋아하는 건 음악 연주와 여행이라고 했는데, 막상 이걸 하기엔 초자아가 허락하지 않는 거죠. 완전히 나가서 노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미친 듯이 공부를 하는 것도 아니니 그 중간쯤에 있는 선택지 정도겠죠. 좋은 선택은 아니지만 중간에 갈등하며 힘들어하는 마음이 이해가 됩니다.

 

사진_픽사베이

 

힘든 상황에서 나를 지키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하는 행동을 ‘방어기제’라고 합니다. 지난번 시험 직전에 공부에서 손을 놓으면서 당연히 시험에는 낙방하고 오히려 마음은 편안해지셨다는 점, 불안정한 마음 상태로 취직을 하여 사회생활을 했다면 오히려 더 힘든 일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점에서 ‘합리화’라는 방어기제가 떠올랐어요. 시험에서 떨어진 자신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자존감에 큰 상처를 입는 일이라 시험에 떨어지더라도 나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을 찾으셨던 것이 아닐까 하고요. ‘취직해서 일을 했으면 더 문제였을 수도 있어.’라며 떨어져도 괜찮을 이유를 찾으셨던 것이 아닐까요. 하지만 합리화는 이유를 위한 이유, 핑계와 같은 임시방편에 불과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에는 자존감을 지킬 수 있었고 마음도 편안하셨지만 다시 작년의 패턴이 올해도 반복이 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심리 상담센터도 가보시고 정신과에서 치료도 받으셨다고 하셨는데요, K님께서는 심리 상태가 어떤지 궁금해서 질문을 하셨는데 정확한 답을 얻지 못하셔서 답답한 마음에 저희에게까지 사연을 보내주신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드네요. 지난 시험 직전까지 약을 복용했다고 하셨는데 그 역시 정신과 진료에 만족하지 못하셨던 것 같고요.

제 생각에는 전반적으로 의욕도 떨어져 있고 무기력감도 계속되고 있는 것처럼 보여서 우울증은 아닐까 라는 걱정이 돼요. 공부에 집중하지 못하고 유튜브를 보는 것 역시 우울증의 한 증상인 집중력 저하 때문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이전에 얼마나 오래 약을 복용하셨는지 모르나, 항우울제의 경우에는 단계적으로 약을 증량해 치료용량에 도달한 후 2주에서 4주 이상을 복용해야만 그 효과를 판단할 수 있습니다. 충분한 약물 치료를 해 보시기를 권유드려요.

 

도망치는 버릇을 단기간에 고칠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장기간 면담치료를 받는 다면 분명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요. 중요한 것은 자꾸 현실에서 도망친다며 자책하지 않으시는 겁니다. 정말 쉽지 않겠지만 최대한 판단하지 않고 지금 상황을 받아들이려고 노력해보세요. 초자아의 목소리를 따라 스스로를 비난하다가는 또다시 마음의 고통을 겪게 될 수 있습니다. 공부를 하다가 딴짓, 사실 얼마든지 할 수 있어요. K님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죠. 그냥 ‘내가 이런 행동을 했구나, 괜찮아, 이제 돌아가자.’ 하고 심호흡을 하고 다시 공부에 집중해 보세요. 점차 달라진 나를 느끼실 수 있을 거예요.

 

답변이 너무 어렵지 않았을까 걱정이 되네요. K님 마음을 돌아보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그 계기로 마음이 정리가 되고 시험도 집중해서 좋은 결과 있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더 자세한 내용들을 팟캐스트로 들으실 수 있습니다!]

아이폰 Podcast: https://itun.es/kr/XJaKib.c

팟빵: http://www.podbbang.com/ch/13552

팟티 : http://m.podty.me/pod/SC1758

네이버 TV : http://www.vlive.tv/video/66459

 

허규형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brainrich6@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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