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손정현 연세휴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원장]

 

 

<A씨의 사연>

안녕하세요.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할 이야기라 고민하다가 전문적인 조언이 필요한 것 같아 문의드립니다. 제 시아버지의 술 문제 때문인데요. 시아버지는 평소에는 가정적인 가장이지만(저 역시 상황을 알기 전까지는 비록 옛날 분이라 가부장적이시지만 좋은 시아버지라고만 느껴왔습니다), 예전부터 폭음을 하신 뒤에는 자해와 폭력을 행사해서 가족들을 괴롭게 해왔다고 합니다. 취하시면 매번 '본인을 무시하지 말라'라며 화를 내시곤 했고요.

시아버지의 형제분들과 회사 동료들 모두 술로 인한 문제를 심각하게 가지고 있어 더 술을 끊기가 불가능해 보입니다. 전문적인 도움을 받자고 하면, 본인을 정신병자 취급을 하냐며 엄청나게 화를 내실뿐 치료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전혀 못하십니다.

남편과 시댁 식구 모두 술을 끊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포기한 상태입니다. 수십 년간 온갖 회유책과 강한 설득을 해봤지만 '가족보다 술이 중요하다'라고 생각하시는 분이라는 결론에 이른 상태입니다.

 

그래도 그동안은 가족들의 눈치를 보면서 술을 드시거나, 드신 후에도 거짓말을 하시는 걸 보며 어느 정도 죄책감을 갖는 것 같아 보였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문제가 터졌습니다. 시아버지께서 취한 상태에서, 지나가는 여성분에게 성추행을 하려다가 고소를 당하신 겁니다.

술 문제는 있으셨지만 이런 일은 처음이기에 가족 모두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데, 문제는 본인이 죄책감이 전혀 없으시다는 것입니다. 온 가족이 설득해도 어떤 일이 있었는지 자꾸 숨기시고 거짓말을 하시다, 상황이 점차 심각해진다는 것을 느끼셨는지 변호사에게 하나씩 털어놓으셨습니다.

여전히 너무 당당하신 태도에 시어머니는 이혼하겠다고 결심하셨다가, 자식들에게 짐이 될까 본인이 감당하시기로 하신 것 같습니다. 시어머니 역시 건강도 좋지 않으시고 심리적으로 많이 지치신 것 같아 걱정이 됩니다.

사진_픽사베이

너무 걱정되는 것은, 시아버지가 이제 술을 드시지 않아도, 온전한 사고가 불가능한 것 같아 보인다는 것입니다. 이번 일 때문에 명절에 오지 않은 당신의 딸에게 전화해서 '왜 본인을 무시하냐', '자살할 거다'라며 협박하시는 걸 보면, 본인의 잘못이라는 걸 인지하지 못하시는 듯해요.

평생을 그렇게 살아온 가족들이 너무 불쌍하고, 원 가족이 아닌 제가 이 문제에 섣불리 끼어들었다가, 더 문제가 커질까 봐 걱정됩니다. 같이 지내시는 어머님의 안전도 걱정이 되고요.

과연 이런 상황에서 입원을 한다고 해서 치료될 확률이 얼마나 될까, 더 큰 위협이 있지 않을까, 두렵고 걱정이 됩니다. 현재 남편은 더 이상 시아버지와는 연락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무엇이 최선일까요? 만약 치료를 받게 된다면, 온전한 상태로 돌아오실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짧게나마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뇌부자들의 답장>

안녕하세요, 뇌부자들입니다.

시아버님의 젊은 시절부터 계속된 알코올 문제로 인해 가족들이 겪으시는 고통이 점점 커지는 상황이 사연을 읽는 내내 그려져서, 안타깝고 가슴이 아픕니다.

 

가장 먼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시아버님께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입원 치료가 필요한 정도의 알콜 사용 장애(알콜 중독)셨던 것으로 생각된다는 점입니다.

정확한 진단을 위해서는 병식(본인 술 문제의 심각성에 대한 인식), 음주 패턴, 그간의 사회직업적 기능, 건강 상태 등을 실제 진료를 통해서 평가받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다만 말씀하신 주취 행동 문제들만 고려하더라도 전문 병원에서의 장기적인(최소 수개월~ 수년) 치료가 이미 오래전부터 필요한 상태셨던 것은 자명합니다.

시아버님의 음주 문제는 본인과 주위의 건강과 안전에 위해를 끼치고 있고, 그 정도는 점점 더 심해질 것이기에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라면 누구라도 반드시 입원 치료가 필요하신 상태라고 판단할 겁니다.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단주와 치료가 필요한 상태라는 점은 사실 시어머님을 비롯한 가족분들도 오랜 기간 절실히 느껴오셨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본인은 음주 문제를 병이 아니라고 여겨 진료를 거부하시는 상황에서 병원에 모셔 갈 방도도 마땅치 않고, 본인 의사에 반해서 입원시켰다가 가족 관계에 상처로 남거나 퇴원 이후 혹여 가족에게 닥칠지 모를 위험한 상황이 걱정돼 어쩔 수 없으셨을 것 같고요.

이 문제는 보호 입원 치료가 필요하지만 아직 그러지 못한 대부분의 정신과 환자(알콜 환자를 포함한)의 가족들이 겪게 되는 딜레마와 어려움이기도 합니다.

이런 심정으로 수십 년을 불안 속에서 지내다 결국 당사자의 부상이나 폭행 등 사건이 터지거나, 간 경화처럼 돌이킬 수 없이 건강이 악화된 후에야 보호 입원(비자발적 입원, 강제 입원)을 결심하는 가족 분들도 많고요.

사진_픽셀

 

정신건강의학과의 치료 과정 중 특히 퇴원 후 관리에 있어서 적절한 병식(본인 질환에 대한 이해와 치료 필요성의 인식)을 갖는 것이 중요한데, 증상이 어느 정도 호전된 후에도 병식은 여전히 낮은 상태로 평생 지내게 되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이런 경우 대부분 퇴원 후 유지 치료와 생활 관리가 이뤄지지 않아 퇴원-재발-재입원을 반복하게 되죠. 알콜 환자들 중 이런 분들이 흔해서 퇴원 직후부터 술 문제가 다시 도지는 경우가 많습니다(불행하게도 알콜 환자의 입원 치료는 대부분 한 번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시아버님의 음주 문제에는 이런 가족들의 현실적인 걱정과 두려움, 정신과 질환의 특성 외에도, 술에 과하게 관대한 사회적 인식과 시아버님의 대인관계 환경(폭음하는 형제들과 직장 동료들)이 함께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됩니다.

 

그런데 시아버님이 이전과 다르게 최근에 술을 드시지 않은 상태에서도 감정적이고 충동적이며 판단력이 떨어진 모습이 있다면, 알코올 장애의 가장 무서운 합병증인 알코올성 치매 혹은 그 직전 단계가 아닐까 우려됩니다.

알코올성 치매는 장기간의 음주로 인해 필수 영양의 결핍이 함께 관여되는 경우가 많으며 자세한 문진과 검사가 필요합니다. 이런 이차적 치매는 비교적 이른 연령에서도 나타나기에 여기에 대한 평가를 위해서라도 아버님은 시급히 전문 진료를 보셔야 합니다.

 

위의 이유로 시아버님께서는 빠른 입원을 통한 치료와 보호가 반드시 필요하고, 지금으로선 보호 입원(강제 입원)밖에는 방법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구체적인 절차를 말씀드리면, 시아버님이 폭력적 언행을 보여 자타해의 위험성이 큰 경우 등 응급 상황에서 경찰에 알려 도움을 받으시는 것이 좋습니다.

 

사진_픽사베이

이전에는 치료가 필요한 문제적 음주가 있는 자체만으로 입원을 시키는 것이 제도적으로 가능했습니다. 그러나 2017년 ‘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이 개정되어, 정신질환으로 인해 '현재 자신이나 타인의 건강과 안전에 명확하고 즉각적으로 위해를 끼치거나 그럴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라고 판단될 때에만 비자발적인 보호 입원이 허용되기 때문입니다.

경찰 혹은 119(이 이외의 사설 이송 업체가 관여하는 입원은 모두 불법입니다)에 연락을 취해 상황을 확인시키고 ‘정신과적 응급 입원’을 요청하시면, 담당자(경찰 혹은 구급요원)들이 현장으로 오게 됩니다.

그리고 상황의 위험성을 확인 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있는 인근의 병원으로 호송하여, 담당자와 의사의 판단 하에 단기간 비자발적 입원을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응급 입원은 보호자의 동의가 필요한 과정이 아니기에(이후에 보호입원으로 전환을 하는 때에는 보호자 동의가 필요합니다), 환자가 연고가 없는 경우나 입원 후 원망이나 보복을 우려하는 보호자분들에게 권유드리는 절차입니다.

이렇게 입원하시는 경우에, 환자의 상태를 경찰과 의료진에 명확히 알리기 위해 사진이나 녹음을 해두시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남편분과 가족들이 모여 상의하셔서 상황에 대한 인식을 함께함을 확인한 후에(보호 입원에 관해 친족 간의 의견 충돌이 있으면 역시 법적으로 입원이 어려울 수 있습니다), 아버님과 대화하고 설득하는 자리를 마지막으로 1차례 혹은 단기간 가지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 과정 전후에 문제 상황이 생기면 즉시 앞서 말한 응급 입원 절차를 진행하시는 것이 맞고요.

 

만약 치료를 받게 되면 본인의 문제에 대해 적절한 인식을 얻을 수 있을지 궁금하다고 하셨는데,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병동 내 환자 공동체와 인지 행동치료 등 알코올 치료 여건이 마련된 병원이라면, 본인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문제를 가진 환자들과 이야기 나누고 알콜 질환 교육을 받는 과정에서 ‘내 상태가 어떠하며 어떻게 보이는구나’라는 점에 대해 인식하게 되어, 낮은 수준이나마 병식이 생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1차례의 입원으로 완전히 단주에 성공하는 경우는 드물지만, 입원 중의 이 정도 변화만으로도 퇴원 후 행동 문제가 상당히 호전될 수 있고요.

병식이 좋은 알콜 환자분들의 경우 일상생활 중에 다시 폭음을 시작하는 등 술 문제가 악화될 것 같다고 느끼면, 자의로 입원해 갈망과 술에 취약해진 불안정한 심리에 안정을 찾고 단기간 안에 다시 사회에 복귀하시는 경우도 있어요.

 

사진_픽사베이

 

사실 걱정하시는 대로 비자발적 입원치료 이후에 환자분과의 관계 악화, 폭력 행동에 실제로 피해까지 입으시는 경우가 드물지만 존재합니다.

그러나 아무 조치 없이 현 상태가 지속된다면 아버님에게도 도움이 되질 않고, 연로하신 어머님이 혼자 아버님의 문제를 그저 견디셔야 할 겁니다.

저희 경험상, 알코올 환자분들이 입원 당시에는 대부분 소리 지르고 화내며 가족과 치료진을 원망하지만, 입원 후 알코올 해독 과정 이후 앞서 말씀드린 교육을 받고, 본인과 비슷한 문제를 가진 환자들과 지내면서 적어도 '일반적인 관점'에서 병으로 본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어, 퇴원 무렵에는 가족들에게 미안함을 느끼거나 적어도 집에 돌아간 후 큰 갈등은 없이 지내시는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또 음주를 계속할 경우 앞으로 판단력과 행동 문제가 악화될 가능성이 크고 회복의 여지 또한 줄어드는 것을 고려하면, 제 가족 중 누군가 이런 상황이라도 저 역시 이런 두려움을 무릅쓰고 어떻게든 입원을 시킬 것 같네요.

특히 알코올성 치매가 진행되면 판단력과 기억력이 점차 퇴행되기 때문에, 앞서 말한 입원을 통한 인식의 변화나 행동의 교정은 더 기대하기 어렵고요.

 

저희의 조언은 여기까지 입니다. 글이 다소 길어졌는데, 요약 말씀드리면 경찰이나 응급구조대 도움을 통해서라도 반드시 입원을 하셔서 평가와 치료를 받으시도록 하고, 입원 과정에서 단기적인 위험이나 가족 관계의 손상이 있을 수 있으나, 앞으로 예상되는 점점 악화될 상황을 막는 측면의 이득이 훨씬 클 것이라는 점입니다.

힘드시겠지만 가족분들의 상의와 결단을 통해 부디 빠른 시일 안에 시아버님이 알맞은 치료를 받으실 수 있게 되길 바라겠습니다.

 

뇌부자들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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