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대한불안의학회 김세주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오래 전 영화 중에 잭 니콜슨과 헬렌 헌트 주연의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As good as it gets)’란 영화가 있다. 두 주연 배우에게 1998년 제70회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과 여우주연상을 안겨준 유명한 영화이다.

이 영화는 강박증을 가진 멜빈(잭 니콜슨 분)과 이웃에 사는 게이 화가 사이먼(그렉 키니어 분), 천식을 앓고 있는 아들과 함께 가난하게 살고 있는 웨이트리스 캐롤(헬렌 헌트 분)이 살아가면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줄거리를 가지고 있다.

영화 속에서는 멜빈이 가진 강박증상을 비교적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는 문을 닫거나 불을 켤 때 항상 5번씩 확인한다. 한 번 사용한 비누는 다시 사용하지 않고, 길을 다닐 때에는 항상 선을 밟지 않는다. 식당에 가서는 항상 같은 자리에만 앉고, 오염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레스토랑에 갈 때도 항상 자신의 나이프와 포크를 가지고 가야 한다.

 

이처럼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어떤 생각, 충동, 이미지 등이 머리 속에 반복적으로 떠오르고(강박사고), 그 생각들로 인한 괴로움을 덜기 위해 특정한 행동을 반복하고 집착하는 현상(강박행동)이 강박증이다.

영화 주인공 멜빈처럼 자신이 더러워지거나 병균에 오염될 것 같은 두려움으로 인해 조금이라도 더럽다고 느껴지는 것은 만지지 못하고, 자주 손을 씻거나 샤워를 매우 오래하는 결벽 증상은 오염 강박증이라고 불리는 강박증의 대표적인 증상이다.

사진_픽셀

그 외에도 항상 일정한 순서로 물건이 정리되어 있어야 하고, 좌우 대칭이 딱 맞아야 하고, 항상 있던 자리에 놓여있어야 하는 것에 집착을 보이는 경우도 있고(정리/정돈 강박증), 자신이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 순간에 혹시 다른 사람들을 다치게 하거나 해치지 않았나 하는 불안으로 인해 운전을 하다가 왔던 길을 되돌아 가서 계속 확인하거나, 주차 후에 사고 흔적이 없는지 자동차를 반복해서 확인하는 경우도 있다(공격/위해/책임 강박증).

현관문이나 가스밸브를 잠그고 제대로 잠갔는지 확신이 들지 않아 다시 잠그는 행동을 반복하기도(확인 강박증), 외설적이거나 공격적이거나, 종교적인 생각이 반복적으로 떠오르기도 한다. 예를 들면, 신에 대한 욕설이 반복적으로 떠오르기도 하고, 이로 인한 죄책감을 덜기 위해 반복적으로 기도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강박증 환자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의 내용은 일반인과 크게 다르지는 않다. 강박증 환자들에게 자신을 괴롭히는 원치 않는 생각이 무엇인지 물어보고 일반인들에게 가끔 떠오르는 뜬금없는 생각들이 어떤 것이 있는지 물어서, 그 내용을 비교해 보면 거의 비슷한 것을 알 수 있다.

즉, 강박증은 가지고 있는 생각이나 행동의 내용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원치 않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반복적이고, 지속적으로 떠오르고 거기에 몰두하고 집착하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우리의 뇌는 매우 활동적이기 때문에 순간순간 수없이 많은 생각들이 만들어지고, 그러다보니 때로는 별 의미 없는 마치 ‘소음(noise)’과 같은 생각이 만들어지게 되는데, 강박증 환자는 이런 ‘정신적 소음’에 지나친 의미를 부여하고 몰두하여 불안과 고통을 느끼게 되며, 이런 불안을 감소시키기 위해 반복적인 행동에 집착하게 된다.

 

강박증은 생각보다 흔한 질병이며, 100명 중에 2~3명에서 나타난다. 원인에 대해서는 아직 잘 밝혀져 있지 않지만, 생각과 행동을 조절하는 뇌 회로의 기능 이상이 유력한 가설이다.

즉, 뇌에는 생각과 행동을 계속 지속하게 하는 회로와 그 생각과 행동을 그만 멈추게 하는 회로가 있는데 이 두 회로가 적절한 균형을 이루면서 자연스럽게 잠깐 어떤 생각을 하거나 행동하다가 이내 다른 생각과 행동으로 이어지게 되어있다.

그런데 어떤 이유에 의해 어떤 생각, 행동을 지속시키는 회로가 과활성화되면(안와 전두엽 회로), 한번 떠오른 생각이 멈추어지지 않고 의지와 상관없이 계속 떠오르게 되는데, 이 상태가 바로 강박증이라는 설명이다.

팔이 삐져나온 인형을 인식하면 계속 신경을 쓰게 된다. (사진_픽셀)

강박증 환자의 기능적 뇌영상을 보면, 해당 회로의 과잉 활성화가 관찰되고, 치료 후에는 해당 부위가 정상화되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다. 또한 최근에는 난치성 강박증의 경우 이런 가설에 따라, 해당 부위를 신경외과적인 수술로 중재하여 과잉 활성화를 차단시켜서 증상을 개선시키는 시도를 하기도 한다.

 

신경화학적인 관점에서는 뇌 내 특정 부위에 세로토닌이 저하되어 있는 것이 원인으로 여겨진다. 따라서 강박증에서는 세로토닌을 높이는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selective serotonin reuptake inhibitor)를 치료약으로 사용한다.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는 흔히 우울증에서도 사용되는데, 강박증에서는 일반적으로 우울증 때 사용하는 것보다 2~3배 고용량이 필요하고, 효과가 나타날 때까지의 걸리는 기간도 우울증에 비해 3~4배 오래 소요되어, 대개 치료 시작 후 3~4개월 정도 지나야 효과를 볼 수 있다.

 

강박증 치료에 있어 약물치료와 함께 매우 중요한 부분이 인지행동치료이다. 인지행동치료는 ‘노출 및 반응방지’라는 강박증 치료를 위해 특별히 고안된 방법을 사용하며, 대개 12~15주에 걸쳐 이루어지는데, 강박증상에 대한 왜곡된 생각을 교정하고, 강박사고로 인한 불안을 강박행동으로 대응하는 악순환을 차단하는 것을 주된 목표로 한다.

즉, 노출 및 반응방지 훈련을 통해 ‘강박행동을 하지 않더라도 시간이 경과하면 강박사고로 인한 불안은 저절로 감소한다’는 것을 반복 경험하게 하는 것이다(습관화).

일반적으로 강박증은 약물치료와 인지행동치료를 병행할 때 가장 큰 효과를 볼 수 있다. 대개 70% 이상에서 호전을 보이지만, 전체적으로 1~2년 정도의 치료기간이 필요하므로 조급해하지 말고 인내력을 가지고 꾸준히 치료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대한불안의학회

대한불안의학회는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소속 전문학회로, 공황장애, 강박장애, 사회불안장애, 범불안장애, 외상후스트레스장애 등 다양한 불안 및 스트레스 관련 질환에 대한 연구, 교육 및 의학적 진료 모델 구축의 최전선에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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