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최명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Q. 부부는 가정을 이루는 필수적인 기본관계죠. 부부간의 사이가 가정의 안정과 평화를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인자라고 할 수 있겠는데요. 부부가 어떻게 해야 잘 지낼 수 있을까요?

A. 저에게 진료보러 오시는 많은 부부들이 묻는 질문입니다. 가장 대답하기 어려운 답변이기도 합니다. 각각의 부부가 갖고 있는 어려움의 본질이 다르기 때문에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주의해야 할 부분을 이야기할 수 있겠지요.

 

Q. 보편적이고 일반적으로 주의해야 하는 게 있다면 무엇일까요?

A. 부부가 계약으로 맺어진 관계임을 잊지 않고 계약을 지키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겁니다.

사진_픽사베이

Q. 계약이요? 부부 사이에 계약이라고 하면 조금 이질감이 드는 것 같아요.

A. 말씀하신 것처럼 가족끼리 계약을 맺는다는 건 부적절해 보입니다. 가족끼리는 서로 약속을 하지, 계약을 맺고 그것을 이행하라고 하지 않죠.

하지만 어떻게 부부가 되었는지 생각해보세요. 서로 부부가 되자고 계약을 맺은 겁니다. 부부관계는 계약 관계입니다. 서로 가족이 되고자 계약을 한 것이죠.

이렇게 가족이 되었기 때문에 계약을 맺고 있는 관계라는 것이 불편하게 여겨지는 겁니다.

 

Q. 그러니까 가족은 계약을 하지 않는 관계이지만 부부는 서로 계약을 맺고 가족이 되기로 했다는 거네요.

A. 맞아요. 그래서 계약을 이행하지 않으면 가족이 깨지는 상황이 되는 겁니다.

 

Q. 그런데 저도 이렇게 생각해 보지 않아서 생소하긴 해요. 어떤 계약을 맺었을까요?

A. 이렇게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바로 떠올리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결혼 서약을 할 때 다 했고 서명도 했습니다. 독점적으로 사랑한다는 것이죠.

여기서 중요한 두 가지 이슈가 있습니다. 독점과 사랑이죠. 배우자만큼 사랑하는 사람을 두지 않겠다는 겁니다. 이 두 가지를 지키지 못해서 문제가 생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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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독점적 사랑, 이게 중요한 전제조건이네요.

A. 맞아요. 가족은 자연스럽게 가능합니다. 그리고 설사 이 조건을 지키지 않아도 가족이라는 관계가 바뀌진 않아요. 가령 부모와 자식이 사이가 안 좋고 나쁘더라도 부모 자식 관계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죠. 하지만 부부는 달라요. 조건이 맞지 않으면 언제라도 관계가 깨지게 됩니다.

 

Q. 그렇네요. 말씀을 듣고 보니 계약을 지키는 것이 참 중요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런데 어떻게 해서 그렇게 계약 관계라는 것을 잊게 되는 걸까요?

A. 가족으로 살아가기 때문이에요. 같은 집에서 살고 경제적인 부분을 공유하고 서로 돌봐주면서 지내면 가족이라는 생각이 들죠. 반려동물에게도 우리가 가족이라고 생각하고 반려동물이 병이 들거나 고통스러워도 잘 돌봐주잖아요?

어떤 환경에서 지내는가에 따라서 어떤 관계인가 규정되는 것이죠. 이렇게 살다 보면 나도 모르게 부부가 계약에 의해 맺어진 관계라는 것을 잊게 됩니다. 그래서 내가 어떻게 해도, 정확히는 계약 조건을 깨더라도 관계가 유지될 것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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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생각해보면 어떤 일이 자주 생기는 것 같아요. 꼭 부부가 아닌 경우에서도요.

A. Freud는 이런 현상을 전이 현상이라고 했습니다. 인간관계에서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대하고 어떻게 만났는지 생각하기보다는, 유사한 환경에서 만났던 사람으로 대하는 현상이 발생한다는 거예요.

쉽게 말하면 가족과 비슷하게 항상 만나고 같이 생활하고 공동체인 것 같다고 생각하면, 상대방을 현재 상황에 적절하게 대하기보다는 자신이 이전에 비슷한 환경에서 만났던 사람과 동일하게 여긴다는 것이죠.

직장에서, 학교에서 우리가 자주 만나는 사람을 가족으로 여기고 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실은 직장 상사, 선생님, 후배인데 마치 동생, 형님, 부모처럼 대하는 것이죠.

다행히 자신이 원래 만났던 부모나 형제와 비슷하거나 가족 환경이 서로 존중하고 편안한 관계라면 문제가 없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부적절한 일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부부도 마찬가지입니다. 서로 모르는 타인이 사랑으로 가족이 되겠다고 계약한 것입니다.

이 계약을 잊고 엄마나 아빠를 대하듯 하면 반드시 문제가 생깁니다. 최악의 경우는 가정이 깨어지는 경우도 생길 수 있어요.

마지막으로 부부간에 서로 존중하고 계약 당사자로 지켜주려고 하는 마음이 중요합니다.

 

 

최명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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