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허지원 고려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나를 인정해달라는 이야기를 입 밖에 내어본 적이 있을까요?

대부분은 말하지 못하는 말, 그러나 많은 경우 그 어떤 방법으로든 표현하고 있을 이야기.

 

학생들이 자존감이 과연 무엇인지 물을 때가 있습니다.

로젠버그 자존감 척도로 유명한 Morris Rosenberg는, 자신에 대한 호의적인/비판적인 태도로 자존감을 정의했습니다.

제가 자존감에 대해 설명할 때면, '계급장 다 떼고, 소위 스펙을 드러내지 않고 다른 사람과 마주했을 때, 내가 얼마나 매력적인 사람으로 보일지'에 대한 스스로의 평가라 말합니다.

예를 들어, 나의 학벌, 사는 지역, 외모와 같은 배경을 밝히지 않은 상태에서 SNS에 익명으로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고 가정할 때, 그 글들이 누적되는 과정에서 자신의 글에 호감을 표할 사람들이 얼마나 될 것이라 생각하나요?

사진_픽셀

 

자존감이 낮다면, 이런 요구에도 이미 마음이 불안정해집니다.

높은 자존감을 가진 사람들은 타인에게 자신의 매력을 호소하는 과정을 흥미로운 도전적인 상황, 충분히 돌파 가능하며 이로운 결과로 이어질 하나의 기회로 봅니다.

낮은 자존감을 가진 경우 이를 실패가 예견되는, 원치 않는 기회로 보지요.

 

다른 표현도 사용해 설명합니다.

"나 같은 사람이 또 있다면, 나는 그 사람과 연애/결혼하고 싶은지. 당신은 평생 당신과 같은 사람과 즐거이 지낼 수 있나요?" 괜찮겠다, 생각한 사람들은 꽤 높은 자존감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답하는 경우는 드물죠. 우리는 우리를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우리들은 자신의 결함이나 자신의 참모습이 드러나면 타인에게 인정받거나 사랑받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에 압도되기 쉽습니다.

지금 잠시, 책에서 눈을 들어 가장 친한 가족 구성원 혹은 친구의 얼굴을 떠올려보세요.

그 지인의 얼굴에는 점이 있나요? 점이 있다면 얼굴의 어느 곳에 있나요? 그럼, 당신의 얼굴에는 점이 있나요? 있다면 어느 곳에 있나요?

분명 지인에 대한 질문보다 당신에 대한 질문에 대한 답이 더 빠르고, 더 정확하고, 더 구체적일 거예요.

수많은 심리학 연구들이 말해왔죠. 다른 사람들은 당신에게 별 관심이 없다, 혹은 그때뿐이다.

물론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 일을 가십성으로 궁금해는 합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의 '일'을 궁금해하는 것이지, 당신 '혼자만'의 '단점'을 알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진_픽사베이

우리의 자의식은 하필이면 (3인칭도 아닌) 전지적 시점의 괴물을 상정해 본인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봅니다.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일에 더 많은 기억을 가집니다.

물론 사람들은 가만히 있을 때조차 타인의 존재, 타인과의 관계를 상정하지만, 그보다 더 많은 시간을, 우리는 우리 자신과 접촉하며 지냅니다.

내가 실패했던 일, 내가 우스워졌던 일, 내가 형편없었던 일들에 대한 기록물들은 내게는 차고 넘칩니다.

이런 자서전적 기억(autobiography memory)은 너무나 풍부해져서, '대학', '몸무게', '지방 출신', '장녀'와 같이 그럭저럭 중립적인 단서들마저 나를 툭툭 건드리기 일쑤입니다.

이러다 보니 반복적으로 자신을 살피고 상대에게 자기 단점을 방어하고 장점을 어필하려는 노력으로 장황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합니다. 주변 사람들은 당황하기 마련이고요.

'아니, 이 이야기가 이렇게까지 진행될 일인가?'

 

때론 자신의 진짜 모습과 진심을 알아 달라며 보채기도 하고 나의 노력과 호의에 상응하는 반응을 보이지 않은 상대에게 우리는 언짢은 감정을 은근히 티 내며 수동 공격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진짜 자존감이 건강한 수준으로 높은 사람들은 나의 진심이 타인에게 받아들여지는 것에 큰 의미를 두지 않습니다.

반면 자신감'만' 높은 사람들은 진심은 꼭 통할 거야, 라는 달콤하고 어리석은 자기애적 다독임, 허상에 천착해 있겠고요.

 

사실은 나의 모든 진심들이 굳이 통해야 하는 이유는 뭘까 싶습니다. 생각해보면 나 스스로도 모든 사람들의 진심을 일일이 알아주며 살아오지도 않았으면서.

아 맞다, 그래도 너는 이런 진심이 있었지? 그러면서 살지 않았잖아요.

진심이면 언젠가 통할 거란 믿음은 그냥 자기합리화, 자기 위안. 결국은 타인의 인정을 받기 위한 목적의, 그럴듯한 자기기만.

 

진심을 믿는 사람들은 종종 소울메이트(soulmate)에 대한 주제에도 몰두합니다.

2011년 연구에 따르면, 단 한 명의 진정한 소울메이트를 꼭 찾을 수 있을 거라 답한 미국인 응답자는 전체의 73%에 달했습니다.

그러나 소울메이트를 믿는 이들은 실제로 관계에서 더 쉽게 불안해지고 애인의 실수에 덜 관대하다는 연구결과를 기억해야 합니다.

즉, 자신이 정한 세상을 벗어나는 경우 불안이 쉽게 높아지는 이들이 자신과 영혼이 통하는 소울메이트의 존재를 믿는다는 것은, 겉으로 보기엔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에 기반한 말로도 보이겠지만, 실은 (그나마) 예측 가능하고 (그나마) 통제 가능한 상대를 원한다는 말에 지나지 않습니다.

사진_픽셀

자신감이 높은 것은 좋은 자원임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높은 자신감에 가리어진 불안정한 자존감을 살필 기회, 낮아져 있는 자존감을 단단히 높일 기회를 놓칠 위험이 있다는 점도, 분명히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당신이 누구인지, 어떤 일을 하는지, 얼마나 타의 모범이 되고 교훈적인 이야기를 하는지,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진심이 통하는지, 자신과 영혼이 통하는 사람과 사귀는지 따위는 사실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저 당신은 당신을 편안하게 좋아해 주면 됩니다. 당신이 당신을 안정적으로 수용하고 있고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했다면, 그래서 내 안의 적이 없다면, 외부의 적은 절대 당신을 해치지 못합니다.

(물론 다시 한번 말씀드리자면 내 안의 적이 없어야 합니다. 책임을 게을리했다거나 타인을 과도하게 헐뜯는 등의 일들로, 갑자기 어느 순간, 이런 모습들이 다른 사람에게 안 좋게 보이면 어쩌지? 하는 불안이 치받힌다면 당신 안의 적은 바깥의 누군가가 해결을 못 해줍니다. 할 수 있는 일은 그럭저럭 다 해 봅시다.)

 

또한 높은 자존감을 만들기 위해, 혹은 자신감 높은 사람처럼 보이기 위해 무리하거나 과잉행동하는 일이 없는지도 살펴야 합니다.

특히 자존감이 흔들리고 마음이 불안해질 때 말이나 행동의 진폭이나 빈도가 커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러다 실수를 하고는 또 마음의 나락으로 떨어지지요.

본인이 이러한 습관이 있는지 꼭 돌아보시고, 이제 차차 이런 과잉한 태도를 통제하고 조절하는 연습을 시작하셔야 합니다.

이런 태도들이 본인에게 반복적으로 너무나 큰 물리적, 심리적 부담이 되는 경험을 해왔다면요.

 

천천히, 편안히 가도 됩니다. 괜찮아요.

애쓰지 말아요.

 

나를 돌아보기 위해 스스로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봅니다. 다음의 세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천천히 생각해보세요.

- 당신은 계급장 다 떼고, 그럭저럭 매력적인 사람입니까?

- 당신은 당신과 똑같은 사람과 평생 함께 지낼 수 있습니까?

-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 애쓰느라 자신을 다치게 하고 무리하게 하는, 오히려 비효율적인 습관들은 없나요? 

 

 

저자 약력_ 허지원 임상심리전문가, 정신건강임상심리사1급
중앙대학교 심리학과 조교수
대한뇌기능매핑학회 젊은연구자상 수상
한국임상심리학회 특임이사
한국인지행동치료학회 홍보이사
보건복지부 정신건강기술개발사업 "CBT기반 어플- 마성의 토닥토닥" 연구 책임자
한국연구재단 뇌과학원천기술개발사업 "정서조절 인공지능 모델 개발 II" 연구 책임자

 

* 글이 마음에 드셨다면 해당 글들을 책으로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나도 아직 나를 모른다> (저자 : 허지원)
  - 뇌과학과 임상심리학이 무너진 마음에게 건네는 따뜻한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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