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대한불안의학회 강석훈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부인 손에 이끌려 진료실에 들어온 A씨.

 

"왜 정신과 진료를 받아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냥 수면제만 좀 주세요.

내과 선생님에게 잠 좀 못 잔다고 수면제 좀 달라고 하니까 선생님께 가서 진료받고 처방받으라고 하더군요.

근데 왜 정신과에서 진료를 받습니까? 별로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제가 미친 것도 아닌데.

그냥 잠을 못 잔 건데 그게 정신병입니까?"

 

필자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로서 수면장애센터를 운영하면서 흔하게 듣는 불평이다.

최근 수면제에 대한 위험성이 알려지면서 기존 수면제 복용 환자 분들의 방문이 늘어나게 되었다.

물론 수면제가 꼭 위험한 약물은 아니다. 문제는 사용 이유와 방법이 적절한지가 관건이다. 

 

사진_픽사베이

 

사람들은 잠을 잘 못 자는 것을 크게 별일 아닌 것처럼 생각한다.

물론 건강한 사람에게 한두 번 잠자는데 어려움을 경험하는 것은 말 그대로 별일 아니다.

하지만, 필자에게 오는 사람들은 이미 불면 증상이 한 달 이상 지난 만성불면증을 경험하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는 잠을 못 자는 것을 불면증이라고 표현한다. 하지만, 정확하게 잠을 못 자는 것만이 불면 증상은 아니다.

잠을 못 자는 것, 잠을 자다가 자주 깨는 것, 잠을 깬 뒤 다시 잠드는데 어려움을 경험하는 것, 마지막으로 자고 일어나도 개운하지 않은 것.

위 4가지 증상 중에 하나 이상의 증상으로 인해 다음날 업무나 일상생활을 할 때 불편함을 겪는다면 불면증이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런 증상들이 일주일에 3회 이상, 한 달 이상 지속될 경우 의학적으로 의미 있게 평가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필자는 A씨에게 궁금한 점을 물었다.

"언제부터 수면장애를 경험하셨어요?"

 

"한 3개월 전인가. 일이 좀 어려워지면서 그렇게 되었습니다.

밤에 누우면, 뭔 생각이 그렇게 많은지. 눈물 나고, 좀 불안증이 있는 것 같아요. 걱정만 많아져서 아주 골치입니다. 요즘 사업이 좀 어려워졌거든요.

뭐 그렇다고 당장 망하거나 하는 것은 아닌데. 사실 나는 잠 못 자는 문제 말고 힘든 게 없어요.

돈은 있다 없다 하는 거고 벌어 놓은 것도 있고, 근데 우리 집사람은 제가 짜증을 부린다고 하네요. 아이들도 좀 피하는 것 같고. 예민해졌다고 하나? 별 차이 없는데.

뭐 신경 쓰니 그런가 보다 하는데 며칠 전에는 회사 직원들이 그러더라고요. 사장님 좀 예민해지셨다고.

참, 나이 먹어서 그런가? 이제 40대 중반인데 요사이에는 건망증도 좀 있기는 한 것 같아요. 깜박깜박. 짜증날 정도로. 뭔 치매도 아니고 이런지.

생각해보면 정신병이 있기도 한 것 같네요. 입맛도 없고. 가끔 가슴이 벌렁벌렁하고 답답하고.

그래서 내과도 다녀오기는 했는데, 별 이상 없다고, 신경안정제인가? 약 주더라고요.

먹으면 좀 괜찮은 것 같기도 해서 몇 번 먹었는데, 엊그제는 울화가 치미는데 약을 먹어도 소용이 없더라고요."

 

사진_픽셀

 

A씨는 단순히 잠을 못 자는 경우가 아니었다. 그는 소위 우울 및 불안장애를 경험하고 있는 중이었다.

만성적 불면증의 경우, 대부분 수면장애를 유발시킨 원인이 분명히 있으며 많은 경우 우울증이나 불안증이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처음에 다양한 이유에서 사소하게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하고, 어느 순간 기분 변화를 동반한다.

시간이 갈수록 기분의 변화뿐만 아니라, 식욕저하 등을 포함하여, 두통, 몸살, 소화장애 등의 신체적 증상들도 수반한다.

 

수면장애는 스트레스 장애를 포함하여, 적응장애, 우울장애, 불안장애 등에서 나타나는 대표적인 증상이다.

따라서, 나이가 들수록 불면을 단순한 증상으로 간주하지 말고 내 몸에 나타난 경고음이라고 할 수 있다.

 

필자가 만나는 많은 사람들은 각기 다양한 스트레스에 노출되어 있었으며, 스트레스로 인해 자신들만의 다양한 증상으로 고통을 겪고 있었다.

A씨도 그 대표적인 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 여름이 다가올수록 열대야로 잠 못 이루는 밤이 잦아지면 불면뿐만 아니라 다양한 정신 증상과 신체적 통증까지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불편감을 당신도 경험하고 있다면, 어서 하루빨리 병원을 찾는 것이 좋을 것이다.

자연적으로 나을 것이라는 기대는 이미 오래되지 않았을까?

 

우울장애 및 불안장애는 마음의 병이 아니다. 이는 뇌의 신경전달물질의 이상으로 생기는 뇌의 병이다.

장기간 방치하게 되면 일부 좋아지는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결국 우리의 뇌는 서서히 망가지고 있으면 장기적으로는 치매에 원인이 될 수 도 있다.

반대로 뇌의 생물학적 문제이기 때문에 치료를 잘 받으면 완전히 좋아질 수 있는 질환이다.

그러므로, 정신건강의학과를 방문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전문가를 찾아 상담을 통해 지금 나의 상태를 정확히 평가받는 것이 가장 중요할 것이다.

 

사진_픽셀

 

마지막으로 내담자들이 가장 많이 이야기하는 것은 몇 시간을 자야지만 건강한 수면상태냐는 질문이다.

다양한 언론매체에서 이미 7시간 수면이 좋다고 많이 홍보되었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평소 6시간 수면 습관을 지닌 사람이 7시간을 자는 것은 과수면으로 역시 뇌에 좋지 않다.

본인이 오랜 기간 평균적으로 유지해온 수면 시간을 지키는 것이 건강한 수면이다.

또한 7시간을 자야 건강하다는 믿음으로 7시간을 채우기 위해서 늦잠을 자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본다.

이는 입면 장애가 있는 사람에게는 큰 독이 된다.

 

“일찍 자기 위해서는 반드시 일찍 일어나야 한다.”

아직 이 원리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잘 이해를 못한다.

사람의 수면 호르몬은 아침 기상 후 햇빛 노출 시간을 기준으로 잠자리 드는 시간을 결정한다.

필자는 수면제 복용 시간도 기상시간을 기준으로 7~8시간 전에 복용하라고 권고한다.

건강한 수면 위생을 위해서 수면량을 유지하는 것보다 기상 시간을 정해서 항상 그 시간에 일어나 야외 활동을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 대한불안의학회

대한불안의학회는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소속 전문학회로, 공황장애, 강박장애, 사회불안장애, 범불안장애, 외상후스트레스장애 등 다양한 불안 및 스트레스 관련 질환에 대한 연구, 교육 및 의학적 진료 모델 구축의 최전선에서 활동하고 있다.

 

저작권자 © 정신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