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허지원 고려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우울도 있고 불안도 있는데 완벽주의도 있다면, 웬만하면 완벽주의는 먼저 미리미리 살펴 두어야 합니다. 

완벽주의는 긍정적인 대인관계를 맺는 것을 지속적으로 방해하고 치료의 예후(경과)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니까요. 

 

물론 본인 특유의 완벽주의가 정말 완벽주의인 것인지, 게으른 것인지는 구분을 좀 하기는 해야 합니다.

완벽주의적인 것이 아니라 그냥 우유부단하고 그냥 잘 미루는 것일 뿐이면서 '완벽주의자'로 라벨링을 하면 타인에게 그럭저럭 포장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있죠.

 

아무튼, 완벽주의는 적당할 때야 좋지만 우리는 보통 그 적당한 정도를 모르기에, 대부분의 완벽주의는 어느 순간 불현듯 여러 신체적, 정신적 병리에 기여합니다.

예를 들어 모든 한국인이 앓고 있다 해도 과언 아닌 '만성피로증후군'으로 실제 진단받은 환자들의 종일을 쫓아가 보니, 자기비판적인 완벽주의가 결국 매일매일의 짜증을 만들고 이게 높은 스트레스 민감성과 우울, 자살로 이어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이때 경험하는 실패감, 죄책감, 수치심, 낮은 자존감들은 결국 타인에게 내가 어떻게 보이느냐 하는 염려와 뒤엉켜 우리를 자꾸만 아래로 아래로 끌어내립니다.

 

사진_픽셀

 

내가 타인에게 어떻게 보이는지에 대한 자기 평가 혹은 그와 관련한 정서를 심리학에서는 공적 자의식(public self-consciousness)이라고 합니다.

물론 자부심과 같은 긍정적 자의식 정서도 있지만, 수치심이나 죄책감과 같은 부정적 자의식 정서에 몰두하는 분들은 대인관계에서 '토할 것 같은' 어려움을 겪는다고 보고하고, 한번 이런 생각에 압도되기 시작하면 마음을 쥐어뜯는 듯한 우울과 불안을 겪는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정확히 말해서, 문제는 이런 자의식 정서 자체라기보다는 완벽주의와 관련한 잘못된 생각들에서 비롯됩니다.

연구에서 완벽주의 특성을 통계적으로 제거하면 이런 자의식 정서가 불안에 미치는 영향이 함께 사라집니다.

('완벽주의, 자의식, 불안 Perfectionism, self-consciousness and anxiety'이라는 제목으로 이미 1997년에 연구 게재된 이후 반복 검증된 부분입니다.)

문제의 기원은 '나는 이래야 하고, 저래야 하고' 하는 식의 완벽주의인 것이죠. 

 

양육 과정에서의 높은 기준, 그로 인해 과도하게 견고해진 초자아, 원가족의 역동에 따른 과잉한 죄책감 혹은 열등감은 우리를 지나치게 '애쓰게' 합니다. 

 

친구와, 애인과, 원가족과, 직장동료들과 함께하는 사회적 장면에서, 좋아하는 대상을 위해 여러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옳습니다. 

그러나 그뿐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노력을 하면 되는 거지, 마음의 고통을 감내하며 애를 쓸 것까지는 없습니다.

 

냉정히 말해 우리는 언제 생을 다 해도 이상하지 않은 각자의 궤적을 삽니다.

매일을 쾌락적으로 살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나만큼은 내게 관대해져도 됩니다.

타인의 시선 때문에 일어나지도 않은 일들에 전전긍긍하며 짓눌리는 감정으로 새벽에 눈을 떠 몇 시간을 뜬 눈으로 지새우고, 치받히는 불안에서 주의를 분산시키려 무의미하고 피상적인 인터넷 서핑으로 매일 밤 몇 시간씩을 소모하는 일상들이 사실은 나를 더욱, 더욱, 불안하게 만들고 있잖아요.

 

사진_픽셀

 

이렇게까지 애쓰지 맙시다. 

그냥 할 수 있는 노력을 합시다. 

되면 좋고, 아니면 마는 겁니다. 

저 스스로도 언젠가부터 주문처럼 외우는 이야기이기도 하고 치료장면에서 가장 효과적인 표현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되면 좋고, 아니면 말고.

 

일이나 사랑, 자녀 양육이나 결혼에서의 실패가 우리의 가치를 낮추나요?

아닙니다.

아프리카 속담처럼, 내 안에 적이 없으면, 그 어떤 것도 우리를 해치지 못합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최선을 다했기에 내 마음을 찌르는 그 어떤 내부의 적이 없다면, 외부의 어떤 적도 우리를 함부로 깎아내리거나 다치게 할 수 없습니다.

 

저는 범불안장애와 중등도의 우울감을 수년간 겪었던 일을 종종 학생들과 내담자들에게 자기노출하며 일부러 이야기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요즘 돌아서서 생각해보면 그때 내가 그렇게까지 나를 찔러대며 애면글면 애를 썼어야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 모든 소망은 되면 좋고, 아니면 마는 것들이었는데.

 

내가 그 일을 하면 좋겠지만, 아니면 마는 겁니다. 

내가 그 사람의 마음에 들면 좋겠지만, 아니면 마는 겁니다. 

이 시도의 결과가 좋으면 좋겠지만, 아니면 또 마는 겁니다. 

어쩌다 내 노력으로 일이 잘 되면, 나는 작은 자기효능감 하나를 챙기고, 그다음 일을 도모하면 됩니다.

안되면, 그냥, 마는 겁니다.

 

사진_픽셀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을 (내가 불행해지지 않을 정도로만) 그럭저럭 다한 후에 우리는 <어쩌라고> 정신으로 다른 순수한 즐거움을 찾아 즐기고 있으면 됩니다. 

우리를 가장 순진하고 순수하게 행복하게 해주는 일들을 찾아야 합니다. 

혼자 영화를 보는 것, 글을 적는 것, 맛있는 드립 커피를 내리는 것, 프라모델을 하거나 스타워즈 덕질을 하는 것, SNS 친구들과 어처구니없는 농담을 나누는 것. 

어떤 완벽주의도 개입할 필요가 없는 기쁨의 목록을 잘 기억해두어야 합니다. 

 

우리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실패할 것이며, 불현듯 불행과 거절이 닥쳐올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매일 조금씩의 허무를 이기고 그럭저럭 잘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완벽해질 필요도 없고, 성취로 타인에게 인정받을 필요도 없습니다. 

그런 피상적인 인정이 나의 존엄성과 가치에 큰 의미가 있기는 한가요?

살아온 그 수십만 시간들, 우리는 언제나 완벽하게 살아있었습니다.

0도 0.5도 아닌 시간. 1로 계속해서 살아왔습니다.

괜찮아요.

이렇게까지 애쓰지 맙시다.

 

그래서 오늘 해볼 것은 이렇습니다.

당신이 굳이 왜 완벽해지기를 바랐던 건지, 그 기원을 찾아봐야 합니다.

그 역기능적인 완벽주의가 어떻게 당신의 마음을 멋대로 찔러왔는지도 살필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앞서 말했듯, 당신이 당신으로서 순진하게 행복해했던 일들은 무엇인지 목록을 적어보세요.

이번 주에 두 시간 정도는 시간을 내어 그 일들을 하며 당신을 그럭저럭 안심시켜주고 작은 선물이라도 좀 사서 자신에게 들려 보내세요.

우리는 매일의 불안과 허무를 이겨내며 이렇게 그럭저럭 잘 살아왔습니다. 

괜찮아요.

 

 

저자 약력_ 허지원 임상심리전문가, 정신건강임상심리사1급
중앙대학교 심리학과 조교수
대한뇌기능매핑학회 젊은연구자상 수상
한국임상심리학회 특임이사
한국인지행동치료학회 홍보이사
보건복지부 정신건강기술개발사업 "CBT기반 어플- 마성의 토닥토닥" 연구 책임자
한국연구재단 뇌과학원천기술개발사업 "정서조절 인공지능 모델 개발 II" 연구 책임자

 

* 글이 마음에 드셨다면 해당 글들을 책으로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나도 아직 나를 모른다> (저자 : 허지원)
  - 뇌과학과 임상심리학이 무너진 마음에게 건네는 따뜻한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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