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신재현 강남 푸른 정신과 원장]

 

조 대리는 임원들 앞에서 중요한 발표를 앞두고 있다. 그는 발표 때만 되면 얼굴이 붉어지고, 가슴 언저리에 뭔가를 눌러놓은 듯 답답해지고, 이마에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한다. 목이 타는 것 같아 애꿎은 물만 들이킨다. 하려 했던 말은 긴장 속에 머리 안에서 실타래처럼 뒤엉키고, 이내 머리 안이 하얗게 되어 말을 더듬기 일쑤다. 오늘도 이런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얼마나 바보같아 보일까, 얼굴은 더욱 붉어지고 가슴은 두방망이질 친다. ‘오늘도 완전 망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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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시선 앞에서 느끼는 불안을 사회불안(social anxiety)이라 한다. 삶 속에서 사회불안은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대중들 앞에서 발표하는 일이 불안한 발표 불안, 무대 위의 연극이나 공연이 두려운 수행 불안(혹은 무대 공포증), 사람들 앞에 서는 것 자체가 두려운 대인기피증 등이 바로 그것이다.

사실, 사회불안은 누구에게나 있다. 여러 사람의 시선을 마주하고 발표하는 일이 익숙한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이는 당연하다. 인간은 타인의 도움과 협력을 통해 살아가는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이다.

무인도에서 혼자 살아가는 영화 캐스트 어웨이의 주인공도, 윌슨이라 이름 붙인 배구공을 친구 삼아 외로움을 겨우 견디지 않았던가. 인류가 생존하고 진화해온 근간을 생각하면, 나를 둘러싼 타자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또, 타인의 인정을 획득하지 못하는 것은, 생존의 측면에서 재앙에 가깝다. 무리의 인정을 받지 못해, 소위 ‘따’를 당해 무리를 벗어난 원시인은 혼자 채집을 하러 다니다 결국 포악한 육식동물의 먹잇감이 되기 십상이니까. 자신을 둘러싼 공동체에서 밀려나는 느낌은 원초적인 공포를 자아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사회불안의 정도가 지나치면 문제가 된다. 발표를 앞둔 사람들은 대개 긴장하고 있지만, 발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발표 내용에 몰입하며 긴장이 조금씩 사라진다. 정도의 차이지만, 대부분은 사회적 상황에서 나타나는 불안을 잘 견뎌낸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사람들의 시선과 부정적인 피드백이 두려운 나머지 이리저리 핑계를 대며 발표를 회피한다.

발표를 하게 되더라도 머리가 백지처럼 하얗게 되어 중요한 내용을 전달하지 못하기도 한다.더 극단적인 경우는, 사람들을 대하는 직업 자체를 기피하는 이들도 있다. 사회불안이 대인관계, 사회생활, 직업적 기능 등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 사회불안장애(사회불안증, social anxiety disorder)로 진단 내릴 수 있다. 사회불안은 누구나 겪을 수 있는 경험이지만, 사회불안장애는 정확한 평가와 진단 후 적절한 치료가 필요한 질환이다.

사회불안의 좀 더 깊은 곳을 들여다보자. 사회불안을 겪는 이들은 타인의 시선에 휘둘리는, 삶의 무게중심이 타인을 향해 있는 위태로운 모습이다. 삶의 기준을 타인의 시선에 두는 것은 지극히 타인 중심적 삶이다. 좀 거칠게 말하면, 상대가 내 우위에 서도록 허용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스스로 상대적으로 낮은 곳에 자신을 위치시킨다. 그리고, 그곳에 자신에 대한 사랑은 없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사회불안의 근간은 낮은 자존감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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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불안, 자존감 회복이 답

낮은 자존감을 회복하기 위해선 어떤 노력을 할 수 있을까? 

자존감 향상을 위한 노력은, 삶에 깊이 뿌리내린 자존감의 근원을 가늠해보는 것에서 시작한다. 낮은 자존감은 짧은 기간에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아이의 마음에 뿌려진 자존감의 씨앗은, 성장 과정에서 무수히 많은 사건을 경험하며 자라나고 다듬어진다.

부모를 비롯한 가까운 양육자, 친구들, 선생님과의 관계에서 겪었던 감정, 사건을 떠올려보자.사회불안을 조장했던 기억들이 불편할 수 있다. 과거의 사건들에 대한 자책이나 원망을 하자는 이야기가 결코 아니다. 위축되고 외로웠던, 그래서 타인의 시선에 휘둘려야만 했던 과거의 자신에 대한 깊은 공감과 이해를 위함이다.

또, 자신에 대한 진실된 공감과 깊은 이해는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 바탕을 만들어준다. 사회불안을 가진 이들의 공통된 행동 중 하나는, 불안한 상황이 예상되면 자리를 피하는 것이다. 이는 불안에 대한 회피 대처가 습관이 된 탓이다. 회피가 습관이 되면 감정 또한 쉽게 열리지 않는다.

과거에 대한 회상이 불편하면, 기억 자체를 자신도 모르게 억압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편한 기억과 감정을 하나씩 잘 정리할 필요는 있다. 누구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아 마음 구석에 아무렇게나 덮어놓은 기억은, 퀴퀴한 악취를 내뿜으며 언젠가는 자신을 괴롭히게 되니까.

물론 과거의 자신을 돌아보고, 그때의 자신에게 마음으로 위로를 건네는 과정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의 자신은 이렇게 고통스러운데, 과거를 돌아보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 하나는 꼭 기억하자. 우리가 겪고 있는 삶의 습관들을 배워왔듯, 낮은 자존감도 성장 과정에서 학습된 것일 뿐이다. ‘나’ 중심이 아닌 타인 중심의 태도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몸과 마음에 스며들었을 뿐인 것이다.

오랜 기간 동안 습관이 된 것들이 한순간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살아가며 새로운 습관들이 하나 둘 생겨나듯이, 건강한 자존감을 회복하기 위한 노력을 꾸준히 할 수만 있다면 건강한 삶도 배울 수 있다.

낮은 자존감으로 괴로워하는 이들이라면 칭찬일기를 쓰는 것부터 시작해보자. 단순하지만 강력한 방법이다. 하루 일과를 마무리하며 자신의 하루에 대해 생각하고, 내 안에 ‘불안한 아이’에게 칭찬을 건네는 마음으로 적어보는 것이다. 칭찬일기를 권유할 때 가장 많이 듣는 이야기는 ‘도무지 칭찬 거리를 찾을 수 없어요’다.

생각을 조금은 바꾸어 보자. 일단 칭찬일기를 적으려 노트를 펼친 것부터 절반의 성공이다.

자신이 ‘잘 해낸 것’을 찾기보다는 ‘해야 할 일을 한 것’이면 족하다. 정해진 시간에 출근한 것, 주어진 일을 무사히 마무리한 것, 미루고 있었던 친구에서 전화한 것, 하루를 마치고 무사히 잠자리에 드는 것, 찾아보면 모두 칭찬할 거리가 되지 않을까.

타인의 칭찬이 아닌 자신의 칭찬만이 내 자존감을 튼튼하게 만들어준다. 조금은 간지럽더라도, 마음속의 아이를 좀 더 쓰다듬어 주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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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존감 회복, 일상의 작은 성취가 중요하다

일상에서의 작은 성취감을 얻어 나가는 것도 중요하다. 사회불안을 조장하는 상황들을 10가지 정도 나열해 적어보고 순위를 매겨보자. 그중 가장 강도가 낮은 상황을 골라, 익숙해질 때까지 몇 번이고 연습하는 것이다.

이 상황에서 무엇을 목표로 할지가 중요하다. ‘불안해하지 말자’, 혹은 ‘떨지 말자’가 목표가 되어선 곤란하다. 감정과 신체 감각은 본질적으로 통제하거나 조절할 수 없는 것들이다.

통제할 수 없는 것을 통제하는 것은 좌절을 안겨줄 뿐이다. ‘불안하더라도 끝까지 자리를 떠나지 말자’, ‘대화가 끝날 때까지 견디자’가 건강하고 합리적인 목표가 된다. 불안은 견디는 것이지, 스위치를 끄듯 제거할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너무도 불편할 수 있지만, 상황을 무리 없이 견뎌낼 수 있는 ‘뇌의 근육’을 키운다 여기자. 그리고 잘 견뎌낸 자신에게 충분한 칭찬과 보상을 건네자.

불안한 상황을 회피 없이 반복적으로 마주하면서, 뇌세포는 새롭게 조직되어 건강한 대처를 위한 신경전달 경로를 만들어낸다. 반복을 통한 작은 성취감은 자존감 향상을 위한 좋은 재료라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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