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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ctor's Mail] 선글라스를 쓰고 바둑 두는 사람들

기사승인 2018.09.27  06:3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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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의학신문 : 김정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Q) 저는 올해 36살 되는 남성입니다. 요즘은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굉장히 힘들고 부정적인 생각들로만 가득 차네요. 살아가는 것에 대해 더 이상의 희망도, 의욕도, 아무것도 보고 있지를 못해요. 일도 한 달하다 그만두고 2주 하다 그만두고... 일을 그만두는 과정도 좋지 못하고...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자꾸만 막히고 일에 대한 의욕도 나지를 않습니다. 무엇인가 열심히 하려고 하는 모습이 저에게 이제는 사라져 가고 있네요...

저는 지금 제 자신의 모습, 제가 30대 중반의 나이가 되기까지 자리 잡지 못한 나의 모습을 자꾸만 남들과 비교하고 ‘왜 나는 이렇게 살고 있을까’만 고민하게 됩니다. 또 왜 난 늘 나 자신을 힘들게 코너로 사람을 몰아가는지, 도대체 나는 언제쯤이면 직업이라는 것에 자리를 잡을지, 도대체 나는 언제쯤이면 안정되게 돈을 벌 수 있을지 이런 생각들이 머릿속에 가득하네요.

이 일을 10년 가까이하고는 있으나 좋아서 하는 것이 아닌 먹고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하고 있고, 난 이 일을 하기 싫어 다른 직업을 하고 싶지만 익숙함 때문에 이 일을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이 반복이 되고... 과거의 실패로부터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발목을 잡혀 살아가는 내 모습이 참으로 답답하고 괴롭네요... 

며칠 전인가 거울을 보며 내 얼굴에 웃는 얼굴을 지어 보았는데, 웃는 내 모습이 너무 어색하더군요... 10년 가까이 웃을 일이 없어 늘 인상만 쓰고 다니다 보니 얼굴 근육이 다 굳어 버린 내 모습에서, 난 도대체 무엇을 잘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또 일자리에서 저랑 좋지 못한 관계에 있던 사람들을 욕하고, 때리고 싶은 생각이 계속 들기도 해요. 그래서인지 불면증에, 혼잣말도 많아지고, 잠꼬대조차 욕을 한다고 동생이 걱정하네요.  

왜 내가 이 고통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지... 정신적으로도 상당히 피폐한 모습도 자꾸 보이고 혼잣말로 계속 욕을 하고 내가 이렇게 살았으면 해서 자꾸만 망상도 하게 되고... 시간을 돌려 다시 태어나고 싶습니다. 적어도 20살로는 다시 돌아가고 싶은 심정입니다. 그러면 절대 지금처럼은 살지 않을 거예요... 제가 조금만 세상을 빨리 깨달았다면 지금처럼은 살지 않았을 텐데...

어렸을 때도 상황이 안 좋았죠. 매일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싸웠고, 심지어는 아버지는 매일 취해서 엄마를 때렸으니까요... 어릴 때 가장 많이 듣는 소리가 ‘너희 부모들은 너희한테 관심이 없니?’였으니 말 다했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참 막막합니다. 이제는 일자리 찾으려는 의지도 꺾여 버린 상황입니다. 추석에도 귀향하기 싫은데, 장남이니 안 갈 수는 없고. 돈도 없고... 괴롭고 힘이 드네요.
 

사진_픽셀

 

A) 본인이 서두에 표현하셨듯이, 정말 부정적인 생각들이 가득하네요. 질문자 분의 삶에서 부정적인 부분들은 너무 잘 파악하고 계셔서 제가 따로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대신 저는 질문자 분의 삶 속에 있는 긍정적인 부분들을 찾아보려 합니다. 

먼저, 무려 10년 동안 한 업계에서 일하셨습니다. 일을 2주, 한 달 하다가 그만두고, 다시 일을 구하고 하신 부분이 아주 약간 흠이긴 하지만, 10년이라는 시간을 한 업계에서 일할 수 있다는 것은 나름의 끈기와 성실함이 있기 때문이겠죠. 거기다가 본인이 원하지 않는 일임에도 10년을 버티신 거죠. 그러니 하기 싫은 일을 끈기 있게 할 수 있는 능력만큼은 확실히 있으신 것 같네요. 

두 번째로 생존 능력입니다. 글에서 보면 부모님 모두 질문자 분에게 애정이 없으셨던 것 같네요. 어렸을 때부터요. 아버지가 술만 마시면 싸움을 하고 어머니를 때리는 상황이었다면, 경제적인 능력도 거의 없으셨겠죠. 즉 질문자 분은 부모님의 애정과 경제적 지원 없이 생존하셨던 거죠. 어린 시절 생존에 반드시 필요한 두 가지 요소 없이 지금까지 견뎌오신 것 역시 본인이 가지고 있는 능력입니다. 

세 번째로 책임감입니다. 이 상황에서 명절에 고향에 가는 걱정을 하고 있으시다니요. 아마 어린 시절부터 부모의 보호가 없었고, 질문자 분보다 어린 형제자매들을 돌보는 역할도 함께 하셨겠죠. 이런 책임감은 질문자 분을 지탱해 준 이유 중 하나일 겁니다. 물론 이 책임감이 너무 무거운 순간도 있으셨겠죠. 하지만 그 책임감과 함께 삶을 잘 이끌어 오신 듯합니다. 

 

제가 질문자 분의 삶 속에서 발견한 긍정적인 부분을 읽으시고 어떻게 생각하실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긍정을 하실지, 부정을 하실지 조차 모르겠어요. 하지만 질문자 분의 반응과 상관없이, 사실을 하나 고백할게요. 이 글은 두 번째 답변 글입니다. 첫 번째 글은 이게 아니었어요.

제가 질문자 분의 사연을 읽고 처음 작성한 글은, 질문자 분의 부정적인 부분들에 대한 제 의견이었습니다. 부정적인 부분 중에서 뭐가 문제인지, 어떤 부분이 답답한지, 어떻게 하면 해결이 될 것 같은지 이런 내용이었죠. 그런데 그렇게 적다 보니 질문자 분에게 약간 짜증이 나더라고요. 이상한 일이죠. 그래서 일단 글 쓰는 것을 멈추고, 이런 상황에 대해 고민을 한 뒤에 깨닫게 된 것이 있습니다. 

하나는, 제가 질문자 분을 부정적이고 답답한 사람으로 파악하고 있는 이유는, 질문자 분이 그렇게 자신을 표현했기 때문이라는 점입니다. 이 말은 결국, 질문자 분이 자기 자신을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뜻이겠죠. 물론 어려운 상황 속에 있으시겠죠. 하지만 그 상황이 주는 객관적인 어려움에 더해서, 본인 스스로를 더 부정적으로 판단하시는 것 같습니다. 선글라스를 끼고 세상을 보면, 세상이 모두 검게 보이는 것처럼요. 

다른 하나는, 질문자 분의 사연을 읽으면 질문자 분에게 짜증 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상하죠.
본인이 원치 않는 힘든 삶을 사셨고, 지금은 더 힘들다고 호소하는 분에게 짜증 나는 게요. 사연을 읽은 순간 제가 전문가로서 도와줄 수 없다는 무기력감을 느꼈기 때문에, 그 무기력감을 느끼게 한 질문자 분에게 짜증 난 것이라고 저는 추측했습니다. 즉, 질문자 분이 가지고 있는 무기력감이, 저에게도 전염된 거죠.

그래서 결론은, 질문자 분의 곁에 있는 사람들도 저와 비슷하지 않을까 합니다. 곁에 있는 사람들도 질문자 분을 부정적이고 답답한 사람으로 파악하게 되고, 질문자 분을 보면 괜히 무기력해져 짜증 나게 되는 상황이 생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사연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질문자 분을 괜히 공격하는 사람이 꽤 많을 것 같기도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눈이 있습니다. 또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눈으로 다른 사람을 판단하죠. 내가 나를 바라보는 눈과, 주변 사람이 나를 바라보는 눈이 완전히 일치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각자 다른 인생을 살아왔으니까요.

질문자 분의 경우는 조금 특이한 경우입니다. 질문자 분이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눈이 전염되어, 다른 사람이 질문자 분의 눈으로 판단하게 만듭니다. 골치 아픈 상황이죠. 지금 내가 선글라스를 쓰고 바둑을 두고 있는데, 옆에서 나를 도와주려는 사람에게도 선글라스를 씌워버리는 셈이니까요. 질문자 분의 글을 읽은 저도 잠시 같은 선글라스를 쓰고 바둑을 두려 했던 거고요. 

아마 어린 시절 가정환경이 원인이겠죠. 질문자 분 스스로를 부정적으로 바라보게 만드는 선글라스가 충분히 만들어질 수 있는 상황이었으니까요. 그래서 과거로, 더 과거로 돌아가서 애초에 그 선글라스를 아예 없애고 싶으신 것 같아요. 사실 자기 자신이 뭐가 문제인지는 가장 잘 알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것 말고 다른 방법도 있어요. 지금 내가 선글라스를 쓰고 있다는 것을 먼저 깨닫고, 그 선글라스를 벗어 버리는 방법이죠. 과거로 돌아가 선글라스를 없애는 방법보다 완벽하지는 않겠지만, 더 현실적인 방법이에요. 

두 번째 글을 쓰면서 저는 질문자 분이 제게 씌운 선글라스 없이 질문자 분을 바라보려고 노력했어요. 그렇게 노력하니 생각보다 질문자 분이 처음보다 괜찮은 사람처럼 느껴졌죠. 그래서 저는 질문자 분이 정신과 진료를 받으셨으면 좋겠어요. 본인과 잘 맞는 전문의를 만나신다면, 비교적 짧은 시간에 선글라스를 벗고 스스로를 바라보실 수 있을 거예요. 

참고로 경제적으로 어려우시다면 대학병원, 국립정신병원 등 전공의 수련병원을 방문하셔서, 전공의에게 상담치료를 받는 것을 추천해 드려요. 전문의 상담치료보다 저렴하고, 담당 교수님에게 지도 감독을 받아 질적인 부분은 보완을 하는 시스템이라 지금 질문자 분에게 괜찮은 조건인 듯하네요. 그러니 너무 걱정 마시고, 한 번 꼭 방문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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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kpdcoop@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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