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김정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지난 4일 가수 구하라 씨를 '리벤지 포르노'로 협박한 혐의로 전 남자 친구 최모 씨를 압수수색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리벤지 포르노'란 헤어진 연인에게 보복하기 위해 유포하는 성적인 사진이나 영상을 의미한다. 연애를 할 당시 서로의 동의하에 촬영을 했는지, 아니면 동의 없이 몰래 촬영을 했는지는 핵심이 아니다. 핵심은, 상대방의 동의 없이 유포하는 것이다. 

모르는 사람이 나를 칼로 찌르는 것과, 연인이 나를 칼로 찌르는 것 중에 마음에 더 큰 상처를 남기는 것은 후자이다. 연인과 함께 만들었던 추억이 모두 악몽으로 바뀐다는 점이 이런 상처에 영향을 준다. 하지만 사건 이후에, 나를 사랑하는 사람과 나를 해치려 하는 사람이 같은 사람이라는 혼란이 생기게 되고, 이 혼란은 피해자가 미래에 다른 연인을 만드는 데 심리적 장애물이 되어, 마음의 상처를 크게 만들고 지속시킨다.   

따라서 연인의 가장 사적이고 행복한 순간을 평생의 상처로 만들어 버리고, 미래 연인과의 관계조차 망가뜨린다는 점에서 리벤지 포르노는 정말 끔찍한 범죄이다. 그리고 모두가 이런 리벤지 포르노의 잔혹함에 동의한다. 

하지만 슬프게도, '구하라'에 대한 구글 검색어 자동 완성은 '구하라 동영상'이다. 

모두가 리벤지 포르노가 범죄라는 것을 알고 있고 그 잔혹함에 동의도 하지만, 동시에 그 동영상을 보고 싶어 한다고 구글은 말하고 있는 것이다. 
 

사진_픽셀


'리벤지 포르노'의 완성은 연인의 성적인 영상의 유포가 아니다. 만약 모두가 이런 리벤지 포르노에 대해 관심이 없다면, 리벤지 포르노 범죄의 충격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반대로 말하면, 리벤지 포르노의 충격은 그것에 관심을 가지고 얻으려 하는 사람이 늘어날수록 커지게 된다.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범죄의 충격이 커지며, 은폐될 가능성도 동시에 커진다는 점과, 당사자들과 관련이 없는 사람들이 범죄를 더 완벽하게 만든다는 점이 리벤지 포르노가 가지는 독특한 특성이다. 

따라서 우리는 자신의 선택에 따라 리벤지 포르노라는 범죄의 충격을 줄일 수도 있으며, 반대로 범죄에 가담해 그 충격을 크게 만들 수도 있다.  

사실 우리나라에 인터넷이 존재한 시간만큼, 리벤지 포르노도 존재해 왔다. 흔히 말하는 '국산 야동'이 바로 리벤지 포르노의 한 형태이다. 이런 사실을 대다수의 한국 남성들은 외면하려 한다. 자신이 범죄에 연루됐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은 사람은 없으니깐 말이다. 하지만 대다수의 한국 남성들이 리벤지 포르노에 대해 무감각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따로 있다. 

바로 우리나라에서는 '성'은 엄격한 금기이기 때문이다. '성'이란 친한 친구들끼리 술자리에서 낄낄거릴 수 있는 주제이지, 성에 대해 진지하게 부모 자식 사이나, 공개된 장소에서 상의를 하는 것은 아직 상상하기 힘들다. 자신이 보는 포르노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상의할 수 있는 곳이 전혀 없다. 그래서 '내가 얻을 수 있다면, 볼 수 있는 것'이라는 고정관념이 자리 잡게 됐다. 이런 이유로 오랜 기간 동안 '국산 야동'은 일본 AV나 미국 포르노와 동일한 것으로 인식되고, 소비되어졌다. 일본 AV나 미국 포르노는 상업적인 목적으로 만든 영상물이고, 국산 야동은 범죄의 증거 자료인데도 말이다.  

이제는 우리가 금기시했던 ‘성’에 대해서 진지하게 논의해야 할 때가 왔다. 지금까지도 수많은 기회가 있었지만 그 기회를 번번이 놓쳤고, 그때마다 한 명의 피해자와, 소수의 가해자, 셀 수 없이 많은, 자기 자신도 모르는 방조자들이 만들어졌다. 최모 씨가 리벤지 포르노의 마지막 가해자가 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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