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신재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나는 과연 <일 중독자(workaholic)>일까? - 일 중독 체크리스트

담배, 술, 마약, 도박... 세상에는 많은 유형의 중독이 존재한다. 흔히 중독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음침하고 불법적인 그 무엇인가를 과도하게 사용해 눈이 퀭한 중독자의 이미지를 떠올리기 십상이다. 하지만, 모든 중독 행위의 기저에 동일한 중독 회로(addiction circuit)가 작동한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난 이후에는, 특정 행위나 물질에 과도하게 집착하고 필요 이상으로 이를 갈망하는 행동에 대해 '중독'이라는 이름을 쉽게 붙이고 있다. 이를테면, 쇼핑 중독, 운동 중독, 탄수화물 중독 등이다.

일 중독 또한 이 중 하나다. 일을 한다는 것은 고대에서부터 생존과 관련된 그 무엇을 얻기 위한 등가교환의 의미를 지닐 뿐 아니라, 삶의 보람이나 정체성, 그리고 자아실현을 위한 수단으로 인정받기도 한다. 반면에, 결과와 성과에만 치중하는 성과 지상주의, 경쟁주의로 인해 정작 일을 하는 주체인 사람의 중요성은 외면받아온 것도 사실이다. 

개인이 처리할 수 있는 능력에는 한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둘러싼 주변의 시선, 업무와 관련된 자신의 왜곡된 생각 등은 도저히 일을 손에서 놓을 수 없게 만든다. 결국 일과 휴식의 경계가 불분명해지고, 삶 자체가 피로해진다. 하루 24시간이 업무의 연장선이다. '이번 한 번만, 이것만 끝내고 쉬자'는 생각만 할 뿐, 정작 쉬려고 하면 이유모를 불안이 마음에 엄습한다. 영원히 끝나지 않는 쳇바퀴를 돌고 있는 것과 같다. 이것이 바로 전형적인 <일 중독자(workaholic)>의 모습일 것이다.

다음 체크리스트를 확인해보자. 이 중 자신의 모습은 몇 가지나 해당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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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 중독 척도(DUWAS, Dutch Work Addiction Scale,단축형)

1. 시간에 쫓기고 바쁘다.
2. 동료들이 그만 한 후에도 계속 일을 진행하곤 한다
3. 계속 일을 벌이고 바쁘게 지낸다.
4. 친구들을 만나거나 취미 혹은 여가를 보내는 것보다 일을 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쏟는다.
5. 점심을 먹으며 전화통화 하는 동시에 메모를 작성하는 식으로 한 번에 2-3가지 일을 처리한다.
6. 내가 하는 일이 즐겁지 않을 때조차도 그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은 나에게 중요하다.
7. 가끔 내 안의 무언가가 나로 하여금 열심히 일하도록 충동질하는 것을 느낀다.
8. 그 일이 즐겁지 않을 때도 일을 열심히 해야 할 의무감을 느낀다. 
9. 일하지 않고 쉬는 것이 편하지 않다.
10. 일을 하지 않을 때 죄책감을 느낀다. 

 

♦ 일 중독 벗어나기 : (1) 잠시 일을 멈추고 생각해보자

잠깐, 잠시 휴식시간을 가지자. 변화를 위해선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 하던 일을 잠시 내려놓고, 일에 파묻혀 헤아리지 못했던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보자. 노트를 펼쳐 적어보는 것도 좋다. 

일 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자신의 일 중독이 시작되었던 상황에서의 자신을 떠올려 보는 것이다. 무슨 생각을 가졌었는지, 무슨 상황이 자신을 일로 내몰았는지, 일과 그에 따른 보상에 대한 자신의 생각은 과연 어떠했는지를 살펴보는 일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또, 일 중독에 빠지게 되었던 과정을 살펴보는 것 또한 중요하다. 일과 휴식의 경계가 사라졌던 즈음, 어떤 불안이 자신을 일에 몰두하게 만들었는지, 그 생각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를 찾아보아야 한다. 

모든 중독이 그렇듯이, 일 중독의 기저에는 어떤 고통이나 어려움을 회피하려는 의도가 숨어있는 경우가 많다. 이들에게 일은 경제적인 문제로 인한 불안('일을 그만두면 돈을 벌지 못하게 되고, 나는 파산할 거야!')이나, 직장-사회 내에서 도태될 것 같은 불안감('직업이 없는 나는, 완전 쓰레기야') 등을 피하기 위한 유일한 수단으로 여겨진다. 또, 이런 내적인 불안을 스스로 알아채지도 못한 채 살아가는 경우도 너무나 많다. 

또,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보자. 내가 일을 하는 진정한 목적은 무엇인가? 돈, 명예, 성취, 보람 등 처음에 일을 시작하며 가졌던 목표를 떠올려보자. 그리고, 그 최상단에는 '삶의 행복'이 위치하지 않을까? 일 중독은 행복을 위해 시작했던 일이 오히려 행복을 갉아먹게 만드는 본말전도(本末顚倒)의 상황이다. 초심을 지키지 못한 자책 보다 이제껏 고생했던 자신을 돌아보며 '잘 했다' 다독이는 따뜻한 위로도 꼭 필요하다. 자신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눈앞에 쌓인 일을 끝내는 것' 이상으로 더 크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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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 중독 벗어나기 : (2) 작은 변화들을 쌓아가자

* 일 중독이 너무 과도하다면? 

내가 일 중독에 빠져 삶이 무너지는 듯한 느낌이 든다면, 불안, 초조, 불면 등이 나를 괴롭게 한다면 정신건강의학과를 방문하여 전문적인 평가와 치료를 받아야 한다. 항우울제, 항불안제 등을 단기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업무 과몰입으로 인한 긴장과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다. 왜곡된 생각을 교정하고, 이완 훈련과 삶 속에서의 실천을 도와주는 인지행동치료 또한 도움이 된다. 


* 일을 멈추고 휴식으로 전환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일 중독자들에게 휴식은 불편한 단어일 수 있다. 쉼이 없는 생활이지만, 작은 여유를 조금씩 확보해야 한다. 쉬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쉬는 것도 연습이 필요하다. 또, 일과 휴식을 명확하게 경계선을 긋는 것 또한 연습해야 한다. 눈앞의 일을 두고 휴식을 취할 것인가 고민이 된다면, 삶의 중요한 가치, 자신이 일하는 궁극적인 이유를 다시 한번 상기해보자. 나와 가족의 행복, 건강하고 여유로운 삶을 위해 잘 나아가고 있을까? 


* 그럼에도 일이 너무나 걱정된다면 ?

휴식 중에도 업무 염려를 놓을 수 없다면, 함께하는 가족이나 연인에게 30-1시간 가량의 일 처리 시간을 가질 것임을 이야기할 수 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일시적으로(!), 반드시 필요할 경우에만(!!) 그렇게 해야 하며, 이에 대해서도 휴식을 함께하는 이들과의 논의가 꼭 필요하다. 우리에겐 인내, 인내, 인내가 필요하다. 건강한 습관이 정착되길 기다리는 것이 지루하고, 일을 미루는 것이 불편하겠지만 새로운 뇌 세포 간의 결합이 이뤄지는 데는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 건강한 중독에 빠져 들어보기

일 중독은 심한 경우 건강과 삶, 행복을 해칠 수 있다. 중독 행위 에 잘 빠지는 이들은 다른 중독에도 쉽게 빠지는 경향이 있는데, 이를 역이용할 수도 있다. 이를테면, 휴식과 운동을 함께 할 수 있는 요가, 명상, 등산 등과 같은 활동, 혹은 악기 배우기나 가구 제작 등과 같은 소일거리를 접해보는 것이다. 일에만 소모되었던 에너지를 좀 더 건강한 대상이나 활동에 돌릴 수 있다면, 삶이 더욱 풍성하고 여유로워질 수 있다. 또, 이는 삶에 다른 즐거움이 있음을 배워나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 삶을 긴 호흡으로 바라보자

당장 처리해야 할 일, 눈앞의 성과에 매달리는 자신의 삶에 있어 장기적인 장-단점을 생각해보자. 눈앞의 일을 순차적으로 처리하여 불안을 없앨 수 있으나, 다들 경험했듯이 결국 일에 대한 과도한 몰입은 또 일을 부른다. 또, 불어나는 일을 처리하면서 자신의 삶의 반경은 점차 좁아지고 있다. 일에서 멀리 떨어져 삶을 관조하는 시간이 꼭 필요하다. 어떻게 보면 직업과 일은 우리 삶에서 지나치는 무수히 많은 정거장 중 하나일 수 있다. 우리 삶의 목적이 '일에 파묻힌 삶'은 결코 아니지 않은가. 우리의 삶을 긴 호흡으로 바라보는 연습도 꼭 필요하다. 

 

* 참고 자료

1. Are You a Workaholic? Time to Take Charge of Your Work-life, Psychology today(https://www.psychologytoday.com/intl/blog/fixing-families/201808/are-you-workaholic-time-take-charge-your-work-life)
2. 행위중독, 최삼욱, 눈 출판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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