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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자신을 사랑하라, 자기 몸 긍정주의

기사승인 2018.10.12  02: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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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의학신문 : 김수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 회사원 A 씨는 오늘도 출근 전 거울을 보며 고민한다. 이 옷을 입으면 더 부어 보이고, 저 옷을 입으니 어깨가 넓어 보이는 것 같고...

'어떻게 마음에 드는 데가 하나도 없냐...'

거울에 비친 자신을 보곤 한숨을 내쉬며, 타이트한 옷에 억지로 몸을 밀어 넣는다. 오늘따라 더 갑갑하고 꽉 끼는 듯한 느낌에 낙담과 짜증이 동시에 밀려온다.

'난 도대체 왜 이 모양인 걸까.'

요즘 살찐 걸 눈치챌 것만 같은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워 왠지 모르게 움츠러든다. 오늘따라 벽에 붙은 온갖 다이어트 격언들이 한층 마음을 무겁게 한다.
 

사진_픽셀


♦ 외모와 자존감, 비뚤어진 상관관계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느끼는 실망과 좌절은 A 씨만의 것은 아닐 테다. 대부분 현대인이 외모와 관련하여 비슷한 고민을 공유하고 있을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시간이 갈수록 겉으로 드러나는 외모의 중요성은 더욱 부각되고 있는 듯하다. '외모도 일종의 능력'이라는 캐치프레이즈가 대중매체의 현란한 광고를 통해 우리 뇌리에 새겨지고 있다. 각종 드라마에서도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이들은 멀끔하고 아름다운 외모를 가지고 있으며, 그 대척점에 있는 이들은 조연, 단역을 맡기 마련이다. 우리의 무의식에선 외모 또한 생존 경쟁의 무기 중 하나로 여기게 되어, 화려하고 멋진 외모를 위해 노력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최근 취업을 위해 준비해야 할 9가지 사항을 뜻하는 '취업 9종 세트'라는 신조어가 등장했는데, 이 중 하나가 '취업 성형'이라니 외형과 능력을 뗄 수 없는 것으로 보는 요즘의 세태가 여실히 드러난다.

외모가 자신의 능력을 드러내는 척도이자 경쟁을 위한 수단이라는 인식은 자존감의 문제와 맞닿아있다. 자존감(self-esteem)은 말 그대로 스스로 내리는 자신에 대한 평가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A 씨처럼 남들에게 어떻게 비칠지에 대한 두려움을 가진다. 자존감의 칼자루를 자신이 쥐지 못하고, 타인에게 넘겨준 것과 마찬가지다. 자신 안에서 중심이 잡히지 않으니 타인들의 시선에 휘둘리며, 자존감은 점차 깎여나간다. 또, 외모에 대한 좌절은 경쟁의 패배를 의미하기에 내적 불안을 초래한다.

또 다른 문제는, 스스로 내리는 외모에 대한 부정적 평가다. 2017년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자신의 외모에 만족한다고 응답한 비율은 남성 76.5%, 여성 67.1%라 한다. 안타깝게도, 외모의 객관적인 정도를 떠나 자신의 외모에 만족하는 이들이 2/3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존감이 낮은 이들에겐 세상의 자극을 걸러내는 일종의 필터가 존재하는 것 같다. 일반적인 이야기라도, 긍정적인 부분을 쏙 뺀 부정적인 정보만 받아들여 스스로 괴로워한다. 그러니 평범한 외형조차 자신에겐 부족하고 결함투성이로 여겨지고, 다시 자존감이 다치는 식의 반복적인 도돌이표를 그리게 된다. 또, 외모에 대한 다소 편향된 사회적 시선은 가뜩이나 낮은 자존감에 더욱 생채기를 낼 뿐이다.
 

사진_픽사베이


♦ 나 자신을 사랑하라, <자기 몸 긍정주의(body positivity)>의 물결

요즘 <자기 몸 긍정주의(body positivity)>라는 용어가 새로이 등장했다. 문자 그대로 남에게 보여지는 외모보다는 편안함을 더 우선시하며, 자신이 가진 외형과 몸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자는 이야기다. 최근 H&M, 나이키, 타미힐피거 등의 유수의 의류업계에서 과거 '키가 크고 비율 좋은' 백인들을 모델로 내세웠던 전통을 뒤엎고, 흑인, 장애인, 통통한 몸매, 주근깨가 뒤덮인 얼굴을 가진 모델들을 전면에 내세우는 것이 자기 몸 긍정주의의 한 흐름이라 할 수 있겠다. 과거 획일적인 미(美)의 기준이 있고 그에 따르는 것이 진정한 아름다움이라고 생각했다면, 인위적인 노력을 기울이지 않은 본연의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고 사랑하는 것이 중요시되고 있는 것이다.

자기 몸 긍정주의의 물결 속에서 자존감 회복을 위한 중요한 힌트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낮은 자존감 회복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뼈를 깎는 노력'이 아니다. 자존감 회복을 위해 전전긍긍하며 변화하려는 시도는, 역설적으로 더 큰 좌절을 안겨주게 된다. 또, 어떤 이들은 낮은 자존감과 위축된 삶에 대한 보상심리로 이루지 못할 정도로 과도한 목표를 세우기도 한다. 이 또한 위태로워 보인다.

 

♦ 받아들이고, 사랑할 수 있는 이는 오직 나뿐이다

결국, 궁극적으로는 있는 그대로 자신의 모습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의 외형이 어떻든, 현재의 삶이 어떠하든 본연의 모습을 그대로 사랑할 수 있다면, 그때가 바로 자존감의 토대가 탄탄하게 다져지는 순간이다. 우리는 그 토대를 딛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거울 앞에 선 나의 모습이 밉고 못마땅해도, 현재의 모습이 기저선(baseline)이라 여기자.

이솝우화에 나오는 해와 바람의 경쟁을 떠올려보자. 매서운 바람은 나그네의 옷을 벗기지 못한다. 해가 보내는 따뜻한 햇살처럼, 자신에 대한 따뜻한 긍정만이 몸과 마음의 변화를 가능케 할 것이다. 결국 나를 받아들이고 사랑할 수 있는 이는 나뿐이지 않은가. 그런 의미에서, 자기 몸 긍정주의가 그저 한 때의 유행으로만 끝나게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 참고자료

꾸밈 대신 편안함… '민낯 패션'의 반란, 한국경제신문, 2018년 8월 9일(http://news.hankyung.com/article/2018080834871)

 

김수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info.psynews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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