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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ctor's Mail] 4년째 방 안에만 있는 시아버님

기사승인 2018.10.12  02: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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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4년 전 직장 내 근무처 이동으로 인하여 적응을 힘들어하셨는데 정년까지 얼마 남지 않으셔서 계속해서 일을 하셨습니다. 그러다 1년도 채 되지 않아 점점 말도 없어지고 집보단 친구들 만나는 걸 좋아하시던 분이 외출도 안 하시고 방안에서 나오질 않으시기 시작했습니다. 

사태가 심해져 가족들이 퇴사를 권해서 아버님은 퇴직을 하셨고, 아버님께서 장남에 고집도 세시고 어머님께 호통만 치시고 사시던 분이시라 가족들 말을 전혀 듣질 않으십니다. 진짜 억지로 끌고 가다시피 하여 정신과를 한 번 다녀왔는데 약 처방받은 걸로 현재 3년째 복용 중이이시지만 차도가 보이시지 않습니다. 한 번씩은 좀 웃으시고 괜찮아지신 것 같다가도 여전히 방안에선 나오지 않으시고 아예 씻지도 않으셔서 치아가 너무 안 좋아지셔서 부드러운 음식 외에는 드시지도 못하십니다. 

시어머님은 답답하고 울화통 터진다며 본인도 우울증 걸리겠다고 하시는데... 2년 전부터 갑자기 고혈압까지 오셨습니다. 산책 좀 가자고 해도 절대 안 나가시고 어머님껜 오히려 성질만 부리십니다. 병원 처방받으면 다 나을 줄 알았는데, 그래서 사정사정해서 모시고 갔는데 차도가 없으니 약도 자꾸 안 드시려고 하시고... 병원에서도 별다른 방법을 얘기해주지 않더라고요. 병원도 시아버님이 아니고 시어머님께서 가셔서 약 받아오시고 저희 시부모님 두 분 다 잘못되실까 봐 너무 무섭습니다.
 

사진_픽셀


A) 지금 알려주신 내용만으로는, 일반적인 우울증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일반적인 주요우울증은 5~6개월 정도의 기간 동안 우울기분이나 식욕부진, 의욕 없음 등의 증상이 있다가, 그 증상들이 사라지게 됩니다. 그렇게 증상이 없는 상태가 수개월, 수년씩 유지가 되다가 다시 우울증상이 나타나게 되죠. 이런 식으로 일생동안 수 회 정도의 우울증을 겪게 됩니다. 삶의 중간중간에 우울증이 발생하기 때문에, 이 한 번의 우울증을 '우울 삽화'라고 표현합니다. 아까 말을 더 정확히 한다면, 일생동안 수회 정도의 우울삽화가 일어나는 것이고, 이런 전체 양상을 정신과 전문의는 우울증으로 진단합니다. 따라서 우울증이 3~4년 동안, 방안에만 있고, 씻지도 않는 정도의 수준으로 유지되는 경우는 드뭅니다. 또한 우울증은 보통 30대 전후로 처음 발병을 하니, 은퇴하실 연배에 우울증이 발병하신 거라면, 발병 시점도 일반적이지 않습니다.

 

현재 시아버님의 연배로 미루어 봤을 때, 우울증 이외에 다른 질병이 함께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가장 의심이 되는 것은, 치매나 뇌졸중 등 뇌에 손상을 주는 질병입니다. 치매나 뇌졸중도 우울 증상이 동반 가능하며, 현재 시아버님의 연배에 흔히 진단되는 병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령에 처음 우울증상이 처음 발생해서 병원에 간 경우에는 뇌 MRI 촬영을 권고합니다. 치매나 뇌졸중 때문에 우울증이 발생했을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해서죠. 하지만 환자가 MRI 촬영을 거부하거나, 치매나 뇌졸중이 동반됐을 가능성이 적다고 판단하는 경우에는 우울증 약을 처방하면서, 증상이 호전되는지 여부를 지속적으로 확인하고, 우울증 약에 반응이 없다면 그때 뇌 MRI 검사를 하게 됩니다. 

검사를 하지 않더라도, 치매나 뇌졸중으로 인한 기능저하는 환자 본인도 알고 있습니다. 이전에는 한 번에 잘 하던 일도 못하게 되고, 기억력도 떨어지고, 길을 잃어버릴까 외출도 못하게 되죠. 자존심이 강하신 분들에게는 이런 상황 자체가 굉장히 큰 상처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증상을 숨기고, 부정하는 경우도 종종 있죠. 질문자 분의 시아버님도 이런 경우에 해당하는 것 같습니다. 본인은 본인의 병을 알고 계실 가능성이 높아 보이고, 그 사실을 마주치는 것 자체를 피하고 계실 가능성이 있습니다. 

강제로 검사를 할 수 없으니, 치매나 뇌졸중이 동반된 것이 아닌지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없죠. 뇌 MRI는 시끄러운 통 안에서 수십 분 동안 가만히 있어야 하기 때문에, 본인이 협조하지 않으면 촬영 자체가 어렵기도 합니다. 또 환자 본인이 병원에 오지 않기 때문에 주치의 선생님이 약을 조절하기 어렵습니다. 처방하는 약에 대한 반응이나 부작용을 직접 확인하지 못한 상태에서 약을 조절하는 것은 부담스럽기 때문이죠.

아마 병원에서는 추가적인 검사가 필요하니 환자분을 모시고 오라고 시어머님께 수차례 권고했을 겁니다. 하지만 시어머니는 시아버지를 강제로 데려가기 힘드니 약만 받아서 투약하고 있고 계시겠죠. 시아버지 증상이 집안에 가만히 있는 것도 한몫할 테고요. 만약 증상이 집안 물건을 부수거나 집 밖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양상이라면 바로 병원에 데리고 가셨었겠죠. 시어머니 입장에서는 같이 사는 시아버지와 싸워서 병원에 데려가는 것보다, 약만 받아서 먹이는 것이 더 합리적인 결정일 수밖에 없습니다. 같이 살지 않는 가족 분들이 보시기에는 이해하기 어려우실 수도 있어요. 하지만 같이 사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선택지 자체가 다르다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4년이 흐른 시점에서, 치매나 뇌졸중을 진단받는 것이 엄청난 변화를 가져올 수는 없습니다. 치매나 뇌졸중이 맞다면, 이미 병이 너무 많이 진행했을 테니까요. 하지만 진단을 받는 것으로 얻을 수 있는 이점이 몇 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시아버님께 남은 시간을 통계적으로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남은 시간을 안다는 것은, 본인에게도 주변 사람에게도 남은 시간을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게 도와주니까요. 또 다른 이점은 남은 가족들이 자신의 주의해야 할 질병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는 점입니다. 알츠하이머 치매의 특정 타입은 유전성이 있으니, 시아버님이 진단받는다면 다른 가족 분들은 훨씬 주의하며 건강히 살 수 있겠죠. 또 시아버님 본인을 위해서도 진단은 중요합니다. 삶의 끝자락이 엉망이 되는 것은 누구도 원하지 않습니다. 진단을 통해서, 자신의 삶의 마지막이 어려워진 것은,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 병 때문이었음을 알고, 위안받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저는 질문자 분의 시아버님을 모르기 때문에, 제가 위에서 언급한 장단점이 정확히 맞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이런 장단점에 대해서 가족 분들이 모여서 의논하셔야 할 듯합니다. 이삼십 년 전에는, 암환자에게는 암이라고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가족에게만 말했죠. 환자를 위해서요. 옛날 일이죠. 하지만 지금도 가끔 자신의 병을 알고 싶지 않아하시는 분도 있습니다. 그러니, 불편한 주제이긴 하지만, 시아버님을 잘 알고 있는 가족 분들이 잘 상의하셔서 결정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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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kpdcoop@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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