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김세웅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전공의 시절 교수님 한 분께서 자기 자신이 소아 정신 교과서에서 아이에게 하지 말라는 것을 사실 다 하면서 아이를 키웠다는 것을 멋쩍게 웃으며 고백하신 적이 있다.(물론 아이는 매우 건강하다)
 

사진_픽사베이


아이가 태어난다는 것, 그리고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어쩌면 수많은 결정들의 시작을 필연적으로 동반하게 되는데 남에게는 별거 아닌 결정도 부모에게는 어쩜 그렇게 하나하나 중요하게 느껴질까 싶다.

들어보니 미디어 노출이 안 좋다는데... 잠시 TV를 틀어줄까 말까,
대상 항상성도 완성되지 못한 2살인데... 어린이 집을 지금 보낼까 말까,
소아 비만 가능성을 높인다는데.. 근데 우리 아이는 단 거 없이는 밥을 먹지도 않는데...

근데 알아도 하자니 쉽지 않고, 안 하자니 아이에게 뭔가 안 좋은 영향 끼칠까 봐 찝찝하고. 
차라리 모르는 게 더 나을 걸 하는 생각까지 들고.
아 힘들다.

 

그런데 우리 조상들은 수천 년간 이 힘든 걸 어떻게 해온 걸까?

사실 인류가 육아/양육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건 오래되지 않았다.(길어야 100년) 사실 그 전까지만 하더라도 대다수의 아동은 그냥 알아서 크는 존재, 심지어 착취의 대상으로까지 인식되었다.  

20세기 후반, 전 세계적으로 많은 여성들이 직업 전선에 참여하는 흐름이 생겨났다. 이 무렵부터 여성들은 [돈을 버는 역할 + 양육에 대한 부담]을 동시에 가지는 압박을 경험하게 된다. 그러면서 육아와 양육은 '누구나 하던 일'에서 '전문가의 조언에 따라 감정을 조절하고 시간을 소비해야 하는 일'(Intensive mothering)로 조금씩 진화하게 된다. 

더욱이 2000년대 초반, Annette Laureau에 의해 확인된 집중 양육(Concerted cultivation)의 개념이 더욱 부모들을 압박한다. 중산층의 부모는 적극적으로 아이들의 재능, 의견, 기술을 길러주고 비용을 대며, 가난한 부모는 자연적으로 성장을 통한 성취를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는 내용이다. 이 양육 스타일은 아이들에게 지적 및 사회적 기술을 개발하는데 도움이 되는 경험과 활동을 제공하는데 중점을 두기에 궁극적으로는 부모 양육의 로딩은 크게 증가했다. 그리고 2017년 여전히 우리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인류가 육아와 양육에 정성을 쏟고 부담을 느끼기 시작한 것은 역사적으로 생각보다 오래되지 않았다. 그렇다 하더라도 나는 그냥 즐겁게 이렇게 하면 되지 않을까?

근데 현대 사회에서는 그게 쉽지 않다. 문제는 사회로부터 나도 모르게 완벽한 부모를 강요받는 우리들이다.

아동기 미디어 노출은 아이에게 해로워...
스마트폰 유아 노출은 사회성을 저해...
단 음식은 아이 소아비만, 당뇨의 원인...

TV를 틀기만 하면 내가 아이에게 일상적으로 하고 있는 것들이 해롭다는 기사 투성이고, 방송과 SNS, 블로그에서 넘쳐나는 육아 자료들은 아이에게 내가 다른 부모들보다 아이에게 덜 헌신적이고 무언가를 못하는 것처럼 느끼게 하기에 충분하다.

전체 10명의 엄마 중 9명이 완벽한 엄마가 되어야 한다는 압박을 받고 있다고 느낀다. 아이에게 TV를 보여주면서도 '완벽한 엄마'라고 느끼는 비율은 26%에 불과.(아래 그림 요약)
 

사진_www.brit.co


어쩌면 우리는 완벽하고 싶지 않아도 "좋은 부모"로서 완벽하려기를 강요받는 사회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완벽하기 위해 하는 노력들이 실제로 육아에는 해를 끼친다는 연구 결과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  페이스북을 더 많이 사용하는 유저일수록 우울감을 느끼는 경향이 크다(타인과 비교하게 되므로)
-  더 자주 계정을 관리하고 타 사이트 방문이 많은 엄마일수록 더 높은 육아/양육 스트레스를 보고한다 

즉, 다른 사람들이 육아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했는지 더 많이 알아볼수록 자신의 육아에 대한 자신감이 떨어진다. 아이러니하게도 육아에 있어서는 완벽함을 추구하는 부모는 실제로 효과적으로 아이에게 대처하는 부모가 될 가능성이 적다. 안 그래도 평소에도 남들보다 육아가 덜 즐겁고 스트레스가 많은 부모라면 필연적인 육아 문제에 직면했을 때 남들보다 더 빨리 포기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좋은 부모란?
 

좋은 부모는 해야 할 것도 이렇게나 많다. 사진_medy life


많은 육아 이론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좋은 부모의 공통적인 요소는 대략 다음과 같다.

- 일관적이고 꾸준하며, 따뜻하며, 합리적이고, 아이 행동에 대한 기대를 적절히 조절하며, 규칙을 설명하며, 적절하게 협상하는 능력.

결국 좋은 부모란 어떤 사람(What)이라고 정의하는 것보다는 어떻게(How) 아이를 대하는 사람이라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할 것 같다. 결국 그런 부모들이 아이의 요구에 더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고 아이 발달에 따른 적절한 육아 방식의 변화, 그리고 아이의 독립성을 더 확장하고 키울 수 있다는 의미이리라.

그러기 위해서는 남과 비교하기보다는 내 육아와 양육에 자신감을 가질 필요가 있다. 페이스북에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쓸 데 없는 육아 자료들의 현란한 제목들에 마음을 뺏길 필요가 없고, 쏟아지는 수많은 육아 기사들 역시 조금 더 회의적인 시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전문가의 조언이나 교과서적인 규칙은 지킬 수 있으면 좋지만 꼭 그래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부모로서 육아의 불완전함을 허용하는 것은 어쩌면 남들처럼 완벽하려 애쓰는 것보다 힘들 수 있겠다는 생각도 한편으로 든다. 완벽하려 하지 않을 때 더 좋은 부모가 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

걱정할 것 없다. 우리는 지금도 충분히 좋은 부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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