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장재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우리나라에만 있는 정신질환으로 미국정신의학 교과서에 기술되어 있는 병이 있다. 하나는 ‘신병(神病, shin-byung)’이고 다른 하나가 그 유명한 ‘화병(火病, hwa-byung)’이다.

그런데 또 하나가 언젠가 인정될지도 모르겠다. 바로 한국 특유의 정신적 현상으로 근래에 신병이나 화병보다 더 자주 언급되는 명절증후군이다.
 

사진_픽사베이


명절증후군은 명절과 관련된 스트레스로 인해 신체적 정신적 증상이 발생하는 경우를 의미하는 것으로, 우리나라 고유의 문화에서 발생하는 일종의 문화증후군(culture-bound syndrome)이다.

예전에는 주로 가부장적 가족문화 속에서 명절에 가사노동에 집중적으로 시달리는 며느리들이 주로 경험하는 증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오히려 며느리 눈치를 보는 시어머니도 있고, 형제나 동서 간 갈등으로 인해 명절 기간 스트레스를 경험하는 경우도 많다.

또한 취업준비생이나 미혼 청년, 실직 가장 등 스스로 뭔가 모를 위축감을 경험하고 있는 사람들이 명절 때 가족들의 이목이 집중되는 상황에서 느끼는 심리적 어려움도 폭넓게 포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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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소리에 스트레스받는 청년들

취업준비생들과 결혼 적령기의 미혼 청년들을 둔 가족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그냥 아무 말하지 않는 것이 중간은 한다’는 것이다.

예전에 한 취업준비생과 상담을 한 적이 있는데 명절에 어떤 친척이 ‘공부는 안 하고 미모만 가꿨나?’라고 말했다며 불쾌해했다. 내가 제삼자 입장에서 들었을 때는 예뻐졌다는 칭찬인 듯 느껴졌는데, 본인은 ‘공부는 안 하고 외모만 신경 쓴다’는 비난으로 들어 기분이 나빴던 것이다.

무엇이 말한 이의 진짜 의도였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확실한 것은 취업이든 결혼이든 무엇이 늦어졌다 느끼는 사람들은 본인 스스로가 위축되어 있을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다. 마음이 위축되면 같은 이야기도 더 부정적으로 들리게 된다.

말하는 사람은 자신이 한 마디 보태면 조금 더 분발해서 취업이나 결혼을 빨리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그런 이야기를 할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가뜩이나 위축된 마음에 부담만 가중시켜 아예 명절을 피하고 싶게 만들 수 있다. 아무런 효과도 없이 관계만 멀어지게 만드는 행동을 굳이 왜 한단 말인가.

 

청년들 입장에서 이야기를 하자면, 어른들의 그런 이야기를 스트레스로만 생각하기보다는 ‘어른들은 원래 그렇다’라고 당연하게 받아들였으면 좋겠다.

우산을 챙기지 못한 날 외출 중에 갑자기 소나기가 내린다고 짜증 내 봤자 비는 멈추지 않는다. 실내로 피하거나, 피할 상황이 아니면 옷이 젖더라도 아예 당당하게 비를 맞아 버리는 게 스트레스를 덜 받는다. 마찬가지로 어른들의 잔소리도 피할 수 없다면 그러려니 하고 담담하게 받아넘기라.

물론 어른들 입장에서는 걱정해서 하는 이야기니 너무 고깝게만 듣지 말고 본인에게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가 있다면 새겨듣고 자신을 돌아본다면 발전의 계기로 삼을 수도 있을 것이다. 

 

여성.. 고부갈등으로 인한 화병 완화하는 방법

진료실에서는 시어머니 때문에 스트레스받는 며느리도 보지만 의외로 며느리 때문에 스트레스받는다고 호소하는 시어머니도 꽤 자주 보게 된다.

시어머니 입장에서는 요즘 젊은 애들은 너무 경우를 모른다는 식의 이야기를 하는데,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면 시어머니는 옛날에 자신은 어떻게 했으니 자기만큼은 아니더라도 며느리가 이 정도는 해야 된다는 기대가 있는데 거기에 부합하지 못하니 못마땅하게 느낀다.

공격자와의 동일시라는 방어기제가 작용하는 것인데, 마치 군기를 빡세게 경험한 선배가 후배를 빡세게 군기를 잡게 되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이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가게 되는 길이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늘 있어왔던 일종의 자연법칙 비슷한 것으로 생각해야 한다. 고부갈등이 있으면 ‘아 그냥 내가 정규분포곡선의 평균에 속하는구나’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정신건강에 이롭다.

만약 사이가 좋다면 운이 좋다 생각하고 감사하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부갈등을 줄이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서로 깊은 대화를 통해 이해의 폭을 넓힌다면 간극을 좁힐 수 있다.

‘알고 보면 나쁜 사람은 아니다’는 식의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꼭 고부관계가 아니어도 우리가 살다 보면 정말 이해가 안 되는 사람은 어디에나 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도 이야기를 깊이 나누다 보면 그렇게 말하고 행동하는 나름의 이유가 있는 경우가 많다. 그 사람에 대해 아는 만큼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정신과 의사로 많은 분들과 깊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런 부분을 더 확실히 느낀다. 심지어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키는 그런 행동들까지도 그 사람의 입장에서는 이해가 되는 면이 많이 있다. 그러니 평소에 대화를 통해 이해의 폭을 넓히는 것이 갈등 해소에 큰 도움이 된다.

다만 대화할 때 한 가지 주의할 점은 상대를 바꾸려고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철저히 자기 자신을 바꾸려는 노력만 해야 한다. 즉, 상대한테 나를 이해시키려는 포지션을 취하기보다 내가 상대를 이해하려고 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물론 그래도 끝까지 도저히 이해가 안 되면 그냥 사는 수밖에 없다.

 

고부갈등 해결을 위해서는 남편의 역할도 중요하다. 남자들은 해결사 본능이 있어 갈등 상황에서 흔히 서로를 이해시키려 당사자에게 가서 상대편 입장을 자꾸만 이야기한다. 그러면 서로 기분만 상할 뿐이다.

그 사람과 이야기할 때는 정확히 그 사람 편을 들어라. 예를 들어 엄마 이야기 들을 때는 엄마 편을, 아내 이야기를 들을 때는 아내 편을 들어라.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공정한 판결을 기대하는 게 아니다. 혹시 말은 그렇게 하더라도 진짜 마음은 그게 아니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자신의 입장에서 힘든 마음을 알아주기를 원하는 것이다. 그러니 뭐라 해결책을 제시하려 하지 말고 진심을 다해 들어주기만 하라.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듣다 보면 그 입장에서는 그 이야기도 다 일리가 있다.

만약 조금 더 적극적 역할을 하고 싶다면 듣는 사람 편에서 같이 조금 흥분해서 맞장구 쳐주라. 예를 들어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을 때 “이 놈의 여편네, 집에 가면 가만 안 두겠다”는 식으로 말해 보라. 그러면 아마도 어머니는 아들이 돌아가 사고라도 치는 게 아닐까 싶어 “그래도 네 아내만한 사람도 없다”며 말리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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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증후군 피로를 푸는 방법

한방에 해결되는 비법은 없다. 원래 사람은 피곤하면 저절로 어떻게 하고 싶게 되어있다. 그러니 그냥 몸이 원하는 대로 하면 된다. 자고 싶으면 자고, TV 보고 싶으면 보고, 친구 만나고 싶으면 만나서 이야기하고, 그렇게 푹 쉬는 것이다. 스트레스나 피로를 푸는 방법이라는 게 각자에게 다 맞는 방법이 있으니 기본적으로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하는 게 좋다

다만 너무 늘어져서 잠만 자거나, 하루 종일 TV만 보거나 하는 건 오히려 피로를 가중시킬 수 있으니 가볍게라도 몸을 움직이는 것이 좋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까운 곳에서 바람을 쐬는 정도의 외출을 하는 것도 괜찮다.

 

꼭 명절 때뿐 아니라 사실 평소에도 많은 분들이 피로를 느낀다. 단기에 피로를 극복하는 방법은 쉬는 것이겠지만 더 좋은 방법은 체력을 키우는 것이다. 배터리가 빨리 떨어지면 충전을 자주 하는 방법도 있지만 배터리를 대용량으로 교체하는 수도 있다.

사람도 비슷하다. 자주 쉬면서 충전을 할 수도 있지만 근본적인 해결은 아니다. 더 좋은 방법은 운동을 통해 스트레스와 피로를 극복해내는 정신적, 신체적 능력을 키우는 것이다. 즉, 단번에 해결하려는 비법을 찾으려 하기보다 피로를 자주 느낀다면 평소 꾸준히 운동을 하는 것이 정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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