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신예니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그림_haerin


◆ 진료실 풍경

외래 환자가 앵무새를 데리고 왔다. 정신과에 몸담은 이래로, (개그콘서트에서 한창 유행했던) ‘브라우니(강아지 인형)’에게 끊임없이 말을 건네던 여학생, 신생아만하던 강아지를 품에 안고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던 중년 부인, 소아진료실 꼬마 버스 ‘타요(만화영화 캐릭터 버스)’와 ‘로보카 폴리(만화영화 캐릭터 경찰차 구조대)’를 움켜쥐고 즉시 출동하려던 꼬마까지, 인간과 동물과 무생물을 아우르는 다양한 방문객을 접해온 터라 딱히 거부감은 없었지만, 조류는 처음인 데다가 독수리 같은 발로 손가락을 움켜쥐고 내려앉은 모습에 일차적으로 위축되고, 저것이 마음만 먹으면 이 좁은 공간을 헤집고 다니겠지라는 두려움에 재차 위축되는 순간! 날카로운 시선을 감지했는지 갑자기 퍼덕대는 날갯짓에 주치의는 처방도 내기 전에 이미 녹다운될 지경. 비상(飛翔)하든 배설하든 무엇을 하든 그 부리로 날 쪼지만 말아다오, 간절한 눈빛을 쏘아 올린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스스로 ‘엄마’라 칭하는 환우가 함께 있어 때마침 소개를 해주는데, 그렇다면 괜히 위축되지 말고 ‘대화’를 시도해볼까 하여 친근한 인사를 건네본다.

“안녕~!”
 

그림_ARA S._“Green Parrot and Woman”


거부감이 줄어든 건 잠시간의 시간이 흐른 뒤였다. 앵무새는 아마존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짙은 녹색 깃털 선명한 컬러를 입었다. 성인 손가락을 편 팔뚝 크기에 ‘닭둘기(닭과 비둘기의 합성어로, 도시에 서식하는 비만 비둘기를 일컫는 말)’에 버금가게 통통한 커다란 ‘아기’. 내가 이들의 관계, 이야기, 한 공간에 있음에서 비롯된 불편에 적응할 무렵, 낯선 진료실 환경과 ‘엄마’의 주치의로 인해 그제야 불안 수준이 높아진 ‘초록 아기’는 온 사방팔방 고개를 휘둘러대더니 정석대로의 (따라 하는) 인사말은커녕 해괴망측한 고함을 처댄다.

“꽥!!! 꽥!!!”

그 바람에 난 소스라치게 놀라고 ‘초록 아기’는 ‘엄마’에게 된통 얻어맞았다. (앵무새는 혀가 사람의 것과 닮아있어 말을 잘 따라 한다는데, 내원 전 오리를 만났는지 난 그의 말을 이해할 재간이 없다.)

갓 돋아난 새싹 같은 초록 깃털로 환우의 손을 가지 삼아 내려앉은 앵무새는 사람들과 의미 있는 관계를 형성하지 못했던 환우에게 그나마 관계와 소통의 대상이 되어 주었다. 그녀는 가족에게 거부당하고 일체의 대인관계를 멈춘 적색 신호, 혹여나 또 상처 받을까 두려워 관계 맺기에 주저하고 주의하는 노랑 신호에서 기다리기만 하다가, 드디어 (사람은 아니지만) 이 앵무새를 청색 신호 삼아 오랜 침묵을 깨고 다시 말을 하게 되었다.

 

◆ 관계 문제(Relational Problems) 

『정신질환의 진단 및 통계 편람(5판)』과 『질병 및 관련 건강문제의 국제 통계 분류(10판)』에는 각각 ‘임상적 관심의 초점이 될 수 있는 기타 조건’과 ‘건강 상태와 의료 서비스 이용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요인들의 추가 분류’에 관계 문제가 명시되어 있다. 그 자체는 정신질환이 아니지만 부모-자녀, 형제간, 배우자와의 정서적, 신체적, 성적 문제가 제반 정신질환의 진단, 경과, 예후, 혹은 치료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판단에서이다. 이것을 질환명으로 고려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은 차치하고서라도 관계 문제는 사회적 동물인 인간에게 중요한 이슈이다.
 

사진_픽셀


◆ 『앵무새 죽이기(To Kill a Mockingbird)』에 나타나는 인간관계: 처세술

하퍼 리에게 퓰리처상을 안겨주었던 『앵무새 죽이기』는 ‘죽기 전에 꼭 읽어보아야 할 소설’이자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힌다는 작품이다. 이 책이 발간된 1960년 미국은 이미 노예해방을 이루었지만, 앨라배마를 비롯한 남부지역에서는 여전히 인종차별이 극심했다. 이 작품은 바로 1930년대의 인종차별과 부조리한 사회 문제를 6세 여아 스카웃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스카웃의 아버지인 백인 변호사 애티커스 핀치는 백인 여성을 강간했다는 누명을 쓴 흑인 남성 톰 로빈슨의 변호를 맡는다. 강간과 인종차별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는 법정 이야기가, 스카웃과 젬 남매의 따뜻하고 익살스러운 성장기(成長記), 그리고 세상과 단절한 채 소문만 무성한 부 래들리를 둘러싼 공포 분위기와 어우러져 펼쳐진다. 차별과 부정, 부패가 판을 치던 사회를 통렬히 비판하면서도 정의와 평등, 배려와 공감, 그리고 용기와 사랑으로 관계의 청신호를 밝히는 이 작품을 통해 관계의 문제를 되짚어보았으면 한다.

 

【역지사지 행하기】

애티커스 핀치의 언행과 작품을 관통하는 메시지에는 역지사지가 담겨있다. 그는 아직 어린 자녀들에게도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어보지 않고서는 그 사람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없다.”고 가르친다. 같은 백인들의 비난과 조롱을 받으면서도 흑인의 상황과 입장을 변호해주며 정의를 구현하고자 노력하는 그는 자녀들에게 타인의 입장이 되어보도록 권유하고, 그 자신도 자녀의 심정으로 그 마음을 헤아리고 경청하고 조언한다. 스카웃과 젬은 강압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런 아버지의 태도를 직접 보고 겪으면서 자연스레 타인을 존중, 배려, 공감하고, 더불어 아버지에 대한 존경심을 갖게 된다.

역지사지가 중요한 또 하나의 이유는 관계 문제가 감정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상대방의 감정에 주파수를 맞추어 그 심정을 헤아릴 줄 아는 관계는 편안하다. 상식적인 관계에서는 거리낌도 분노도 적다. 잘못과 실수를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면 의외로 간단히 해결될 일도, 오리발과 적반하장의 훼방으로 관계가 어긋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사실을 왜곡하고 위장한 가십으로 실제 가해자가 피해자로 돌변하기도 하지만 결국 쌍방에 이중 삼중의 상처를 남긴다. 거짓이 거짓을 낳고 진실이 묻혀 잊히는 듯하다. 그러나 진실과 진심의 빛은 밝아서 어둠으로 가려지지 않고 언젠가는 드러나기 마련이다. 대인관계에서 착취적이거나 스스로 관심과 주목의 대상이 되고자 하는 미숙한 관계 패턴이 반복·지속될 것이니 말이다.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본다면 감히 할 수 없는 말과 행동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익명성이 보장되는 사이버 환경에서는 거짓과 분노와 정서적 배설이 난무한다. 그리하여 역지사지하고 핵심감정을 깨닫는 것에서부터 건강한 관계를 다시 시도해보았으면 한다.
 

【핵심감정 깨닫기】

어릴 적에 정서적으로 영향을 끼친 사람들, 특히 부모와의 관계에서 형성된 부정적인 감정을 두고 서구의 정신분석가들은 ‘콤플렉스’, 즉 ‘마음속 응어리’라 하였고, 한국의 이동식 선생님은 ‘핵심감정’이라고 이름 붙였다. 이는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이나 ‘쌀가마니의 어디를 찔러도 쌀이 나온다’는 쌀가마니의 비유에서처럼 ‘한 사람의 일거수일투족에 배여’ 있어, 하루 종일 그리고 일생을 두고 정서와 사고, 행동을 지배하는 중심 감정이다. 핵심감정은 이제까지의 삶을 지탱해온 건강한 면도 있지만, 대개는 적절히 해소되지 못하고 무의식적으로 쌓인 부정적인 감정이, 그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유사한 상황마다 반복 경험되어 현실을 왜곡하고 행동문제를 일으켜 관계를 위태롭게 한다. 가령, 사랑받고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좌절되었을 때 이 감정은 우울, 불안, 소외감, 버림받은 감정, 분노, 적개심, 외로움, 무가치감 등의 여러 형태로 나타난다. 과거의 지배 혹은 얽매임으로 인한 부정적인 관계 패턴을 그치고, 핵심감정을 파악함으로써 자유로운 현재를 충실히 살아내는 훈련이 필요하겠다. 나 자신을 알고 역지사지하여 상대를 공감하게 된다면 순조로운 대인관계도 기대해볼 수 있지 않을까.
 

【선입견 타파】 

핵심감정을 파악하여 감정이 잘 정리, 그리고 처리된 사람들은 대인관계에서 서로를 반영(mirroring)하는 역할을 한다. 철학자 후설이 말한 ‘에포케’, 즉 ‘판단 중지’는 ‘사물에 대한 기존의 관점이나 선입견, 습관적인 이해를 배제하고 직관해보는 것’이다. 정신치료에서도 ‘착각, 갈등을 일으키는 투사를 없애고 판단 중지하여 직관하는 것’을 궁극의 목표로 삼을 만큼 이것은 중요하며 본 지면에서 다 다룰 수 없을 정도로 방대하고 깊이 있는 개념이다.

『앵무새 죽이기』에서 기존의 관점을 배제하고 순수하게 직관을 시도하는 것은 초등학생 아이들이다. 이 작품은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뿐 아니라 장애우에 대한 편견도 다루고 있는데, 그 가운데 작품 내 상당 부분에서 소문만 무성하고 좀체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부 브래들리가 대표적 인물이다. (인종을 막론하고) 어른들의 세계에서 그는 무서운 괴물, 식인종에 가까운 야만인으로 그려지지만, 젬과 스카웃, 그리고 그의 친구 딜은 브래들리의 집에 찾아가 접촉을 시도한다. 그들은 편견과 선입견에 좌지우지되지 않고 경험을 통해 그와 연결을 추구한다. 핀치는, 아무에게도 아무런 해도 입히지 않고 우리에게 노래만 불러주는 앵무새를 죽이는 것은 죄라고 선언한다. 이 작품에서 앵무새가 누구인가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지만, 관계의 측면에서 보자면 1930년대 미국 남부 지방, 흑인으로 대변되는 사회적 약자와 가십과 소문, 편견과 선입견에 가려 괴물로 인식되는 타자(他者)이자 약자인 부 래들리가 바로, 죽여서는 안 되는, 오히려 포용해야 하는 앵무새로 여겨진다.
 

사진_픽사베이


◆ 관계의 신호등, 다시 앵무새로

대인관계는 흔히 신호등으로 표현한다. 관계가 머뭇거리는 노란불이나 위험에 처한 빨간불이라면, 이제 잠시 멈춰 초록 신호를 기다리자. 눈의 피로감 없이 편안한 녹색, 특히 새싹 녹색, 관계의 초록불(green light)은 영어의 사전적 의미로도 ‘순조로운 관계’, ‘허가’, ‘승인’을 일컫는다. F. 스콧 피츠제럴드의 유명한 소설이자 영화로 각색된 『위대한 개츠비』에는 초록불이 등장한다. 개츠비의 진취적인 삶과 열망을 존속시켜준 그의 첫사랑 데이지의 집에서 새어나오는 불빛이다. 개츠비의 가난하고 힘든 삶의 여정을 버티게 해 준 희망이었던 그 불빛은 결국 이루어지지 못한 꿈으로 마무리되지만, 우리는 개츠비의 아픔을 딛고 일어나 관계와 소통 안에서 새로운 불빛을 만들어가야 하겠다. 그래서 우리가 맺고 있는 수많은 관계들이 초록 신호로 질서를 회복하면서 각자의 마음에도 초록의 희망이 새싹처럼 돋아나기를 희망한다. 

사람들과 관계를 형성하지 못하고 동물, 인형, 물건과 ‘가족’의 연을 만들어 사는 외로운 사람들을 진료실에서 만난다. 오리 소리가 아닌 우리의 언어로 초록 앵무새와 인사 나누게 될 그 날, 우선 초록 앵무새와 대화함으로써 침묵을 깬 환우가 이제 동물 아닌 인간과 친구 혹은 가족 관계를 맺으며 사는 삶의 이야기를 들려줄 가까운 미래를 조심스레 기대해본다. 

“안녕!”

 

* 참고자료

Lee, H(2005). To Kill a Mockingbird. NY: Harper Perennial.

『알라바마 이야기』. (1962). [비디오] 미국: 로버트 멀리간.

이동식(2008). 『도정신치료 입문: 프로이트와 융을 넘어서』. 서울: 한강수.

Blazina, C and Boyraz, G(2007). The Psychology of the Human-Animal Bond: A Resource for Clinicians and Researchers. NY: Springer. 

Skinner, P(2018). Collaborative Advantage: How Collabortion Beats Competition as a Strategy for Success. London: Robinson Press.

 

* 대한정신건강의학과 봉직의협회는 정신건강의학과 봉직의들로 구성된 비영리단체로, 일선 정신건강의학과 진료현장의 불합리한 제도를 개선하고 정신건강의학과 봉직의들의 권익과 처우를 증진시키며 이를 통해 환자의 치료받을 권리 보호와 정신 건강 향상을 목표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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