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김정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나 요즘 잠을 잘 못 자는데, 약국 약이 잘 안 들어. 혹시 수면제 한 알만 구할 수 있어?”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 카페에서 수다를 떨던 중에, 친구가 조금 주저하며 물어봤다.

“처음 사업을 해봐서 법이나 그런 것도 잘 모르는데... 다행히 일은 잘 되고 있지만... 침대에 들어가도 계속 뜬눈으로 뒤척거리다가 잠을 아예 못 자고 출근하는 경우도... 근데 정신과는 기록이 남으면 좀 그래서...”

작은 개인 사업을 시작한 친구가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친구로서 무심한 나 자신을 탓하며, 직업병처럼 입으로는 유감을 표하며 현재 상황을 파악하기 시작했고, 머릿속으로는 친구를 도와줄 방법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일단 수면제를 처방을 해야 할 것 같은데... 여기가 병원이 아니라 이게 진료를 한 건 아니고... 진료가 아니니깐 처방프로그램에 진단명을 입력할 수가 없는데... 아니 일단 이렇게 카페에서 말을 하고 병원에 접수를 하는 것 자체가 문제가 될 것 같은데...?’
 

사진_픽셀


이것저것 고민하며 한참 상황을 정리하던 중, 친구가 다시 물어봤다.

“...그래서 수면제를 한번 먹어보고 싶은데 가능해?”

“그래 뭐... 수면제를 일단 내 이름으로 처방받아서 다음에 볼 때 줄게!”

그리고 병원에 돌아와 친한 동료에게 접수를 하고, 스스로 뭔가 꺼림칙하여 상황을 설명했다. 동료는 잠시 고민을 하더니 말했다.

“일단 대리처방은 불법이잖아. 그리고 그 친구가 정말 중요하면, 진료를 받게 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일단, 불면증은 우울증, 양극성 정동장애, 조현병 등 모든 중증 정신질환이 시작하기 전 나타날 수 있는 증상이기도 한데 그런 부분도 기본적으로 확인을 해 봐야 하고, 사업 스트레스 말고 다른 스트레스가 있을 수도 있는데, 네가 친한 친구라서 차마 말을 못 한 부분도 있을 수 있잖아. 그 친구 앓고 있는 다른 병은 없대? 갑상샘 질환 같은 거. 네가 그냥 약 가져다주면 그 친구는 병원을 갈 기회를 잃는 거잖아.”

그러고 보니 평소 진료를 할 때는 매번 확인했던 것들인데, 지인에게는 뭐 하나 제대로 확인한 것이 없었다.

친구에게 연락해 잠깐 만나자고 한 뒤에, 빈손으로 가기 민망해 수면양말 한 켤레를 샀다. 수면제를 기대하고 나온 친구에게 수면 양말을 건네면서, 고민을 해 봤는데 정식으로 진료를 보는 것이 좋겠다고 말을 꺼냈다. 내가 친한 친구라 네가 말을 못 했을 것들이 마음에 걸리는데, 지금 내가 약을 주면 병원에 안 가게 될 거고, 그 뒤에 생길 수 있는 문제가 걱정된다고 하니 친구는 웃으며 고맙다고 했다. 기왕 만난 김에, 불면이 생길 수 있는 질환, 잠이 잘 오는 방법, 정신과 기록이 남는지 등을 열심히 설명하고 헤어졌다.

 

정신질환명은 아니지만, 병원에는 ‘VIP 신드롬’이라는 것이 있다. 보통 환자에게는 일어날 리가 없는 터무니없는 의료 사고가, 중요한 사람이나 지인에게 일어나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의사들이 자신의 모교에서 수술을 받을 때는, 그냥 일반 환자처럼 대해 달라고 신신당부하는 경우도 있다.

정신과 영역에서 이런 VIP 신드롬이 상담 부분에서 나타나기도 한다. 지인이라 더 잘 상담해 줄 것 같지만, 실제로는 지인이라 깊이 있는 상담을 하기가 어렵다. 정신과 영역에서 지인에게 해 줄 수 있는 최선은, 내가 신뢰하는 다른 전문의를 소개해 주고 이런 상황에 대해 성심껏 교육하는 것인 듯하다.

그리고 앞에서 말했듯이 대리처방은 불법이니 요구도 수락도 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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