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top_notch
default_setNet1_2

[Doctor's Mail] 미루고 미루다 마지막에 행동하는 습관, 무엇이 문제일까?

기사승인 2019.06.15  11:02:49

공유
default_news_ad1

[정신의학신문 : 윤혜진 연세채움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안녕하세요. 대학생인 저는 지금 중간고사 기간인데요, 살다 살다 뇌가 눈구멍으로 녹아내릴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이번에 글을 씁니다.

저는 시험 보기 전 하루 전까지 아예 백지상태로 모든 과목을 내버려둡니다. 그때까지 유튜브나 게임이나 잡다한 커뮤니티 등을 사이클로 돌려가며 시간을 버립니다. 저는 제가 시간을 낭비한다는 것을 온몸으로 체감을 합니다. 고통스러워하고요. 자살까지도 생각합니다. (시도를 한 적은 없습니다만 6년 동안 생각만 해왔습니다.)

지난 6년간의 우울증인지, 아니면 그런 우울증이 저 같은 사람이 모름지기 가져야 할 사고방식이라는 강박에 빠진 것인지는 몰라도, 결과적으로 군대도 갔다 왔는데 대인관계가 0명입니다. 가족도 멀어지고 있고요. 연애도 못해보았습니다.

이야기가 많이 새죠? 저는 시험기간이 되면 제 주변의 모든 것들에 대해 이처럼 스트레스를 받고 공부하지 않는 스스로를 욕하면서도 그 스트레스를 잊고자 컴퓨터를 합니다. 그러다가 이제 시험이 만 하루 남으면, 저는 갑자기 사람이 달라지기라도 한 듯이 24시간을 초 단위로 나누어서 생활하는 양 변합니다.

변한다는 건 시험 압박감에 눈이 돌아갔단 뜻이죠. 밥도 안 먹고 라면만 먹으면서 먹으면서도 책을 보면서 어떻게든 벼락을 제대로 칩니다. 제대로 친다는 의미는, 벼락치기를 순수하게 20시간 동안 한다는 의미입니다.

아마 제가 중학교 때부터였을까, 수업시간 때 필기 열심히 하고 집에 와서 롤게임 12시간 하다가 시험 하루 남으면 그때서야 잠도 안 자고 벼락치기로 공부를 하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이게 중학교 때부터 유지되어 온 악습관입니다. 이런 제가 대학에 들어온 것도 감개무량하지만 이제는 좀 아닌 듯싶습니다 .

시험의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상관이 없이, 제가 이번에 시험을 연달아 치면서 근 4일 동안 잠을 몇 시간 잤는지 세지는 않았습니다만 10시간 이내로 잔 것 같습니다. 근데 이게 이렇게 되다 보니 눈이 막 돌아가고 진짜 탈력감에 눈감고 걸어가다가 잠깐 졸아서 저 스스로 깜짝 놀라기도 했습니다.

진짜 이러다 죽지 못해 기어 다닐 것 같아서 잠을 잤더니 20시간을 쭉 잤습니다. 근데 그것도 고통스럽게 잤습니다. 시험기간 때 2~3시간 깔짝 자던 것이 습관이 되었는지 1시간, 2시간 연달아서 깨면서도 20시간을 잤습니다. 꿈도 무서운 것만 꾸고..

가장 무서운 점은 그렇게 잠을 잤는데도, 한 새벽 2시~3시쯤에 잠 안 자고 불침번 서는 듯한 피로가 남아있다는 점이며, 시험이 아직도 연달아 남아있다는 점입니다.

 

제가 약간 가볍게 생동감을 붙여서 글을 적기는 했지만, 저한테 이건 농담이 아닌 문제입니다. 어디 강연이나, 장학재단 캠프나, 대인관계 약속이나 등등 그 모든 문제들에서 저는 똑같이 행동합니다. 예컨대 1시간 30분 지하철로 갈 거리라 하면, 정말 딱 1시간 30분에 가는 것을 전제로 하고 몸이 움직여집니다. 의식해서 일찍 가려고 해도 정작 나갈 때 보면 그 정도만 남아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대인관계를 일부러 안 만들기도 한 점이 있습니다만, 이딴 정신머리가 군대에 가서도 안 고쳐질 정도면 저는 스스로 자해를 하지 않는 이상 못 깨우칠 것도 같습니다.  

더 큰 문제는, 이것이 가족도 마찬가지라는 점입니다. 제 가족 중 한 분은 영화 상영시간이 2시라고 하면, 2시 10분에 출발합니다. 적어도 2시까지는 메이크업을 하고, 옷은 무얼 입고하는 걸 준비하면서 지각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그러한 경향성이 아기 등교 시간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그 모습을 보면서 만일 제가 지금 이 정신머리로 운 좋게 잘 취업하고, 혹여나 상대자를 만나서 아기를 가져도, 안타깝게도, 그 아기 또한 제 인생을 그대로 답습하리란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한테 이건 정말 심각한 문제입니다. 작금의 저는 제 개인적인 우울증을 해결하고자 과거로부터 단서를 잡고 그 과거에 대한 매듭을 짓는다는 둥 아니면 약물치료를 하는 것이 낫다는 둥의 방안을 찾고자 했는데 그런 차원이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저의 잘못된 시간관념이 먼저이고 우울증은 부차적입니다.

혹자는 시간 계획표를 쓴다든지, 뭘 한다든지의 해결책을 제시하는데, 저는 그러한 계획을 야심 차게 정말 공들여서 만들어도, 절대로 그것이 저에게 진정으로 해야 할 것으로 여겨지지가 않습니다. 마치 다른 사람 계획표를 만들어준 느낌입니다.

내심 저는 하루 만에 시험공부를 하는 능력을 가졌다는 이상한 자만심이라도 있는 양, 절실히 야심 차게 변하기를 마음먹는다 할지라도 며칠 지나면 제자리입니다. 이런 인지부조화의 극치를 달리는지라 고통스러울 정도입니다. 

통상 보편적인 해결책으로 해결이 안 됩니다.. 8년 간 한 롤게임도 계정 삭제를 하고 모든 게임도 다 지운 채로 핸드폰도 알뜰폰 오천원 요금제로 쓰면서 생활비도 식비, 관리비, 전기세, 도시가스비 포함 기껏 해야 10만원을 쓰는데 도대체 저는 어째서 이렇게까지 시간 하나를 관리하질 못해서 이렇게 무너질까요?

이 시간관념에 관련된 정신병이 있는지, 아니면 단순히 계획표를 적고 하루하루 해나갈 것을 해나간다든지의 통상 보편적인 해결을 제외한 극약처방이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

 

사진_픽셀

 

답변)

안녕하세요? 연세채움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윤혜진입니다. 대학생이시고 지금 중간고사 기간이시군요. 뇌가 눈구멍으로 녹아내릴 것 같은 느낌이 드실 정도라고 하시니 정말 많이 힘드신 것 같습니다.

본인도 우울증이라고 표현하셨고, 자살사고가 있는 채로 6년간 지내오셨다고 하면 그동안도 오랫동안 힘든 시간을 보내오셨군요. 가족 중에 한 분도 비슷한 성향을 지니셨다고 하셨고 아이 등교시간에도 영향을 미칠 정도라고 하셨으니, 이미 그 전부터일 수도 있겠네요.

그래도 군생활도 마치셨고, 지금도 이렇게 거의 잠을 못 자는 상태를 수일간을 견디며 열심히 시험공부를 하고 계신 걸 보면 글쓴 분께서 가지신 힘이 있다는 것이 느껴지네요.

 

써주신 내용 중에 하루 만에 시험공부를 하는 능력을 가졌다는 이상한 자만심이 있는 것 같다고 하셨는데 그것이 중요한 내용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하루 만에 시험공부를 하는 것은 보통 사람과는 조금 다른 패턴이지요. 특별한 느낌을 줄 수 있습니다.

전날까지는 그렇게 놀더니 성적은 나왔네?
혹은 어떻게 그렇게 며칠 밤을 새울 수가 있어? 

다른 사람들로부터의 찬사나 부러움, 혹은 그런 자신의 모습에 대한 무의식적인 만족감일 수도 있고요. 그런 것을 통해 자신이나 타인에게 인정을 받고 싶은 욕구가 숨어 있는 게 아닐까요.

혹은 미리 공부를 시작하신다고 하여도 결국 전날에는 불안함에 잠을 자지 못하고 벼락치기를 하고 밤샘을 해야 하기 때문에 그 고통을 최대한 미루고 싶은 마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보통 이러한 경향은 강박적인 성격을 가진 분들에게서 나타나는 모습 중에 하나라고 생각이 됩니다. 식비, 관리비, 전기세, 도시가스비 포함 10만원을 사용한다고 하신 것. 다른 것은 다 통제할 수 있지만 시간 관리를 못한다고 생각하며 좌절을 느끼시는 것을 보면 그러한데요. 이 또한 모든 것을 다 완벽하게 통제해야 한다는 마음에서 비롯된 생각이 아닐까 싶어요.

그래서 지금의 시험공부 방식은 본인 무의식에서는 이미 단련된 나름대로의 시간 관리일 것입니다. 이것이 그나마 최대한으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이 방법을 고수하는 것이지요. 강박적인 성격을 가진 분들은 진정한 휴식을 즐기는 경우가 별로 없습니다. 생각해보시면 게임이나 유튜브 등이 시험 전의 불안을 달래는 수단일 수는 있겠지만 그것이 진정한 휴식이나 즐거움을 주는 것은 아니실 것입니다.

결국 글쓴 분은 자신의 내면에 불안이 많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시는 것이 필요하시겠네요. 사람을 만나러 가기 전에도 그렇고, 영화를 보러 가기 전에도 그렇고, 시험 전에도 그렇습니다. 뭔가 시작되기 전에 불안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요. 하지만 그 불안을 스스로 인정하고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에, 불안을 느끼지 않기 위해 최대한 다른 일들로 꽉꽉 채워가며 그 불안을 잊으려고 하는 것이죠. 아무리 시험 전날이라고 해도 우리에게는 적당한 휴식이 필요할 텐데요, 이를테면 적당한 수면, 식사 같은 것 말입니다.

 

저는 시간을 더 잘 관리하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지 않습니다. 진심으로 마음 편하게 휴식을 취하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합니다. 중간고사가 끝난 후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하니 시간을 보내보시는 게 어떨까요. 물론 지금까지 해오신 적이 없기 때문에 쉽지 않은 일이라 생각합니다. 안절부절못하고 불안해서 늘 하던 게임에 자연스레 손이 갈 거예요. 하지만 멍하니 시간을 보내다 보면 게임 말고 다른 하고 싶은 일이 떠오를 거예요. 거절당하거나 실수할 것을 염려하지 말고 그 하고 싶은 일을 해보시면 좋겠습니다.

성격적인 문제는 어린 시절부터 시작된 것이기 때문에 교정하는 데에도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글쓴 분께서는 가지신 힘이 있기 때문에 이를 인식하시고 노력하시다 보면 조금씩 변화가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중간고사 잘 끝내시고 이후에는 좀 더 편안한 시간이 더 많아지시길 바라봅니다.

 

 

미루는 습관을 바꾸고 싶다면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협동조합 선생님에게

무료 마음건강검진 받으세요 ► (6월 한정, 선착순)

 

윤혜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info.psynews@gmail.com

<저작권자 © 정신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default_news_ad4
default_bottom
#top
default_bottom_not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