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이두형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임신과 출산에 불안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결혼한 지 어느 정도 되었고 남편도 저도 아이를 원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사실 남편보다 제가 더 아이를 갖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올해 안에 아이를 가지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그동안 결혼생활을 하면서 임신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전혀 안 하고 있었고 임신과 출산은 먼 미래라는 회피 심리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결혼생활을 몇 년 정도 하게 되니 주변에서 임신을 안 하냐는 질문을 서서히 받게 되면서 부담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그전에는 임신 안 하냐는 질문을 받아도 저희 부부가 임신에 대한 압박감이 없었고 저 또한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그런 질문을 신경 안 쓰고 지내왔습니다. 그런데 이제 제가 아이를 가져야겠다고 생각한 후부터 마음에 부담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출산을 하려면 병원을 알아봐야 되는데 인터넷으로 병원을 알아보다가 자연분만을 하며 겪은 고통과 너무 힘들게 아이를 낳았다는 글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자연분만에 대한 자신이 없어서 제왕절개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고, 제왕절개를 해서 아기를 낳은 주변 지인들에게 출산 후기도 물어보았고 인터넷으로 후기를 찾아보았습니다.

제왕절개를 하게 되면 겪는 과정들, 수술실에 들어가면 극심하게 떨리고 무섭다, 이런 후기를 보니 저도 덩달아 너무 무서워지고 불안하게 되었습니다. 과연 내가 저 상황에 괜찮을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이 들면서 아직 임신도 하지 않았는데 너무 무섭고 불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좋아서 한 결혼이고 배우자와 아무 문제없는 행복한 결혼생활인데, 내가 마음만 먹으면 임신해서 아이를 낳고 행복한 결혼생활을 할 수 있는데, 출산에 대한 공포가 너무 커서 임신을 안 하면 앞으로의 결혼생활에 대한 행복이 깨질까 두렵습니다. 친정부모님과 남편에게 얘기를 해도 조언을 들어도 이걸 이겨내고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은 저밖에 없는 상황이라 더 힘이 듭니다.

다른 사람들은 아이를 출산하러 가게 되면 다 그 상황에 닥치게 되면 하게 돼있다고 말하지만, 임신을 안 한 지금부터 너무 무섭고 불안한데 과연 그날 제가 견뎌낼 수 있을지 자신이 없고 너무 불안합니다.

아이가 없는 결혼생활은 상상도 못 하고 입양에 대한 생각도 없는데 하루하루 힘이 듭니다.
저는 그동안 잘 살아왔고 이 고비만 잘 넘기면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합니다.

 

마음을 잘 다스려서 임신을 해보자, 이런 마음을 먹고 잘 지내다가도 갑자기 출산 당일날 겪게 될 공포가 떠오르고, 임신 막달이 되면 출산이 다가올 텐데 그 시간들을 내가 견뎌 낼 수 있을까, 지금 임신도 안 했는데 이렇게 불안하고 힘든데 임신하면 어떡하지, 출산 다가오면 마음이 더 불안할 텐데, 이런 생각을 하면 그때부터 심장이 빨리 뛰고 진정이 안됩니다.

친정부모님은 다 할 수 있고 미리 걱정하지 말라고 조언을 해주시는데 벌써부터 이렇게 불안한 저라서, 임신 막달이 되고 출산이 임박해 올 그때는 불안한 마음을 다스릴 방법이 없다는 생각에 더 불안합니다.

 

저는 정말 이런 불안한 마음을 극복해서 임신을 해서 건강한 아이를 낳고 싶습니다. 제가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된 걸까요? 마음의 준비가 안됐다고 생각하고 임신을 미루게 되면 계속 더 자신감이 없어지고 피하고 싶어 지는 마음이 들까 봐 빨리 마음을 굳게 먹고 긍정적으로 생각해서 임신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는데, 그 결심을 하기가 어렵고 계속 불안한 마음 때문에 결정을 못하고 있습니다.

불안한 사람들은 자기가 생각하는 모호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갖고 현재를 힘들게 산다는 글을 보고 마음을 다잡았는데, 임신 막달과 임신기간 그리고 출산을 할 때 불안하고 무섭지 않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에 더 불안해집니다.

수술 시에 수면마취도 해준다고 해서 수술실 들어가면 그 수면마취하기 전의 잠깐의 시간만 견디면 되는데, 그 잠깐의 시간을 참으면 제 인생도 더 행복해지고 좋아질 텐데, 그 순간이 무섭다고 제가 일상생활이 힘들 정도로 불안하니 더 마음이 힘이 듭니다.

저는 아이를 갖고 싶은데 어떻게 극복해야 될까요.

 

사진_픽셀

 

답변)

안녕하세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이두형입니다.

우선, 출산에 대한 두려움은 너무나 당연한 마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의학이 발달하지 않은 과거에는 산모와 아이 모두에게 생사를 넘나드는 큰일이었고, 지금에도 상당한 고통과 많은 변수를 수반하는 일생의 사건이지요. 다만 산전 진찰을 비롯한 산과적 의학이 상당히 발전을 하여 출산 과정이 산모와 아이 모두의 위험이나 부담을 상당히 줄였다는 것, 무통 분만이나 (필요시) 제왕절개와 같은 술기 등의 발전으로 예전보다는 산모의 고통과 부담을 덜고 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불안에 대해서, 우선 불안 자체가 불안을 낳는다는 이야기를 드리고 싶어요. 두려운 감정, 예컨대 분만이나 수술 후기 등을 보고 불안한 감정이 촉발되면, 이는 이러한 감정과 연관된 생각을 만들어 냅니다. ‘아이가 잘 태어날까? 너무 고통스럽지는 않을까? 아이나 내 몸에 문제는 없을까?’와 같은 생각들이지요. 이러한 생각은 또 다른 불안의 씨앗이 됩니다. 악순환이 반복될 수 있습니다.

적어주신 글을 미루어 보았을 때, 현재 상당한 수준의 불안을 경험하시는 중으로 보입니다. 일단 불안한 감정이나 생각이 촉발되었고 많이 진행된 상태라면 홀로 마음을 다잡고 생각을 조절한다 하더라도 마음이 마음대로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임신 준비로 인해 약물 치료 등이 부담되신다 하더라도, 꼭 약물 치료가 아닌 여러 면담을 통해서도 불안을 경감시키고 이를 다룰 수 있는 방법들을 배우실 수 있습니다. 가까운 정신건강의학과를 방문하시어 진료를 받아 보시기를 권고드립니다.

 

진료를 권하는 이유가 한 가지 더 있습니다. 그것은, 지금 글쓴이님께서 왜 임신을 원하시는가에 관한 것입니다.

그간 아이 없이 만족스러운 결혼 생활을 하셨는데, 최근에 아이를 원하시는 마음이 든다고 하셨습니다. 아마 글에 많은 부분이 생략되었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글의 내용만을 놓고 본다면 ‘주위에서 많이 물어봐서, 가져야 할 것 같다.’ ‘어쨌든 임신은 하는 게 맞고, 어차피 할 거면 지금 하는 게 좋겠다.’라는 뉘앙스의 생각이 제게 전달이 됩니다.

혹시 마음 깊은 곳에 ‘실은 아이 없이도 충분히 행복하고, 아이를 가지는 것이 너무 두렵다.’는 마음과 ‘주변 반응이나 어른들 압박도 그렇고, 결혼은 했으니 아이가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아이가 있어야 올바른 결혼 생활이다.’라는 마음이 부딪히는 중은 아니신지요. 저는 ‘아이를 낳는 게 옳다’는 말도, ‘아이를 낳지 않는 게 옳다’는 말도 모두 틀린 말이라 생각합니다. 부부의 생각과 마음, 각자 그리고 함께 그리고 바라는 삶에 따라 부부마다 달리 답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잠깐만 참으면 된다.’ ‘아이를 낳기만 하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말씀에서, 출산을 언젠가는 해결해야 하는 일종의 삶의 과제로 생각하고 계신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간 행복하던 결혼생활이 ‘언젠가는 아이를 길러야 하는 데 아직은 그러지 못하고 있는 상태’처럼 느껴지기 시작하면서 마음이 조급해지고, 출산과 양육에 대한 부담감과 아이를 낳아야 한다는 의무감이 충돌하는 건 아닐까요.

현재 글쓴이님의 나이나 주변 사정, 부부간 나누신 생각 등을 자세히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글만으로 전해지는 생각과 감정에 대해 말씀을 드렸습니다. 면담의 장점 중 하나는, 현재 내가 보기 어렵거나, 마주치기 힘들어 애써 모른척하는 중인 깊은 내 마음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입니다. 현재 경험하시는 불안에 대해서, 그리고 불안의 근원에 대해 이해하기 위해서 가까운 정신건강의학과 의원을 편한 마음으로 방문해 보시기를 권고드립니다.

도움이 되셨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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