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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ctor's Mail] 외롭고 비틀린 삶, 노력하는 게 의미가 없는 것 같아요

기사승인 2019.11.07  02:5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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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의학신문 : 이두형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선생님 안녕하세요. 일 년 내내 쓸까 말까 고민했던 이 글을 큰 용기 내어 써봅니다. 제가 그리 오래 산 것도 아닌데 줄이고 줄여도 인생에 무슨 사건들이 이리도 많은지 잘 모르겠어요.

저는 평탄치 못하게 자랐어요. 돈 문제로 친아버지에게 팔려 가다시피 결혼한 어머니는 친아버지의 방만과 폭력에 맞서 이혼을 하셨어요. 어머니는 생계를 위해 항상 집을 비우셨고 학교에 가기 전 잠자는 엄마를 보는 10분이 엄마와 제 교감의 전부였죠. 그럴 때마다 저는 버려질까 봐 너무 무서웠어요. 쓸모가 있으면 버려지지 않을 거라고, 엄마의 자랑이 되면 사랑받을 수 있을 거라고 그렇게 굳게 믿었죠. 그렇게 제게는 '엄마 대리'라는 큰 직함이 붙게 됐어요. 사랑받고 싶다는 일념 하나로 제 모든 욕망을 죽이고요. 

그러다 엄마의 사업 실패로 더 추락하게 됐어요. 설상가상 엄마가 암이라는 병원의 통보 편지를 보았을 땐 이 세상에 저 어린 동생을 지킬 사람이 저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죠. 몸이라도 팔아야 하는 걸까 매일매일 공포에 질려 살았습니다. 어머니에게 응석 부리면 나까지 짐이 될까 봐, 내가 혹시 엄마를 죽게 할까 봐, 동생과 저는 정말 버려지는 걸까 온갖 생각이 머리를 교차했어요. 그러나 아무도 그런 불안을 입 밖으로 내뱉지 않았습니다. 엄마와 저, 동생 모두가요.

빚 때문에 엄마는 10년을 넘게 살던 지역을 정리하고 간 곳에서 적응을 잘 못하고 왕따를 당했습니다. 엄마에겐 당연히 말 못 했고요. 엄마는 저를 책망하셨어요. 왜 사람들에게 속 얘기를 해서 자신을 창피하고 수치스럽게 만들었냐고요. 몇 번의 이사를 더 했고 집은 더 열악해져 갔으며 저는 마음을 점점 더 닫아갔어요.

 

시간이 지나 제가 고등학교에 들어가니 남동생과 싸우게 됐고 동생은 저를 때리기 시작했어요. 그즈음부터 친아버지에 대한 증오, 삶에 대한 고통, 곪아 터져버린 속이 감당되질 않더군요. 사실 저는 항상 버려졌거든요. 외가의 이모가 새벽에 저랑 동생을 낯선 동네에 버리기도 하고, 몇 번의 자살 시도로 인한 심리상담에서 엄마는 항상 제가 마음이 여린 거고, 제가 못 견디는 거고, "우리 애가 이런 애가 아닌데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요" 하시면서 저를 한심하고, 자신이 이런 자식을 가진 걸 수치스럽게 여기셨던 것 같아요.

그즈음부터 저는 망가지기 시작했어요. 자해하고 자살 시도를 하고 그럼에도 가족을 사랑해서 하루만 더 참아보자고 오열하고, 상담 선생님은 힘든 상황에서도 정말 올곧게 자랐다고 칭찬하셨지만 저는, 전혀 올곧지 않았어요. 죽으면 다 편해질 것 같다는 생각을 몇 번씩 했죠. 미쳐가는 게 무엇인지 알게 되더군요. 외로웠고, 괴로웠어요. 그때부터 남자 친구들을 사귀기 시작했는데 연애는 항상 안 좋게 끝났죠. 저는 인간관계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정말 단 하나도 모르더라고요.

그래서 졸업과 동시에 집을 나왔어요. 최대한 집에서 가장 먼,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타지에 대학을 써서 밑바닥부터 혼자 시작했죠. 제가 집을 떠나 이 지역으로 온 지 벌써 7년이 가까워져 가요. 저는 가족도, 친구도 없이 이 타지에서 맨땅에 헤딩하고 있죠. 만났던 남자 친구들은 하나같이 제가 너무 어렵대요. 제가 너무 심오하고 난해하대요.

 

사람들과 나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이렇게 돼버린 저 자신에 대해서 말하는 게 꼭 누명을 써 항변하는 사람같이 보였어요. 변명하듯 내가 왜 이렇게 돼버렸는지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납득시키는 것 자체가 이젠 무슨 소용일까요? 어차피 타인은 저를 이해하지 못하고 저는 보통의 범주를 많이 지나쳤죠.

이제는 지쳤나 봐요. 나를 납득시킬 기운도, 설명할 기운도 없어서 “아 그런가요” 하고 웃고 말지요. 내가 남들과 다르다는 걸 느낄 때마다 확인 사살당하는 기분이고요. 고등학생 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10년 동안 저는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해요. 저를 이해해보려고 심리학책부터 철학책, 사회학, 범죄학, 인문학 등등 인간을 다루는 학문에 관한 책은 먹어치우듯 읽었고요. 운동, 공부, 일 뭐하나 빠지지 않고 해내려고 노력했어요. 몸이 지치고 다치고 부서졌지만 방법은 오로지 이것뿐이었으니까. 정말 악착같이 살았어요. 그런데 이제는 그게 무슨 소용일까 싶어요. 읽으면 읽을수록 나에 대해 알면 알수록 나는 참 외롭고 비틀린 사람이다 싶고요. 우주에 혼자 내던져진 것 같아요. 아무도 없이 그냥 둥둥 떠다닌 채.. 간간히 날아오는 빛을 보면서 울고만 있어요. 그냥 목숨줄만 연명하려고 사는 것 같죠.. 이 세상에 뭐가 의미인가 싶어요. 이 지옥 같은 현실 속에서 글을 쓰는 게 제 유일한 빛이었는데 어차피 누구에게도 닿지 않고, 누구도 좋아하지 않을 텐데 말이에요. 무겁고 힘들고 아픈 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어요?

저는... 이미 너무 한계인데 자꾸 벽에 몰리는 것만 같아요. 제 곁엔 정말 그 아무도, 아무도 없어요. 제가 이 답 없는 싸움을 얼마나 더 이어갈 수 있을까요..? 차라리 제 뇌를 파버리고 싶을 만큼요. 제 마음은 제 고통이 맞다고 말하는데 한 편으로는 정말 제가 모든 것의 문제였을까 싶고요.. 선생님 저는 너무 무서워요. 저는 어떻게 돼가고 있는 걸까요.

 

사진_픽셀

 

답변)

안녕하세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이두형입니다.

흔한 위로를 드리고 싶진 않지만, 진심으로 그간 너무 힘드셨을 것 같다는, 고생 많으셨다는 말씀을 먼저 드리고 싶습니다.

어린 시절의 고통이 우리 마음속에 깊은 상처를 남기는 이유는, 어린아이는 아직은 홀로 자립하여 살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경제적, 사회적으로 그렇고, 심리적으로도 그렇습니다. 말씀 주신대로, 글쓴이님께서는 오래도록 생존의 두려움, 외로움, 공허함과 다퉈 오셨을 것 같습니다. 너무 힘드셨을 것 같아요.

안타까운 부분은, 이제는 더 이상 그러한 두려움, 고통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는 상황으로 나아가더라도, 마음에 남은 아픔의 흔적이 자꾸만 같은 경로의 생각과 감정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입니다. 자꾸만 과거의 기억, 힘들었던 감정을 다시 되새기게 되고, 몸은 오늘을 살아가면서도 마음은 과거의 그때로 돌아갑니다. 그 시절에 경험했던 세상에 대한 인식이 남아 특별한 일이 없어도 미래에 대해 끊임없이 걱정하기도 하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버림받을까 두려워했던 아픔이 마음속에 깊이 새겨져, 오늘 내 곁에 있는 누군가에게 특별한 이유 없이도 비슷한 두려움을 반복하여 느끼게 될지도 모릅니다.

 

과거와 다투어서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어떻게 하더라도 과거를 바꿀 수 있는 방법은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구태여 만나는 사람들에게 나를 납득시킬 이유도 없습니다. 누군가, 즉 타인이 내 이야기를 충분히 들어주고, 나라는 존재를 깊이 이해하고 납득해 준다고 해서 오늘 나의 힘든 마음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대신, ‘수용’과 ‘전념’이라는 개념을 소개해 드리고 싶습니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고, 평생 완벽한 삶을 살아온 사람도 없습니다.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그 정도가 다를 수는 있겠지만, 사람은 누구나 어느 정도 불완전하고, 자기 자신만이 알 수 있는 아픔을 안고 살아갑니다. 글쓴이님도, 글쓴이님만의, 글쓴이님만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아픔을 안고 살아가시는 중입니다.

그저 내게는 그런 상처가 있다는 것, 나만이 아는 아픔이 있다는 것을, 옳고 그름의 판단 없이 바라보시면 어떨까요. 과거의 아픈 기억들을 떠올리고, 오늘의 내가 이렇게 힘든 이유, 숨어있는 깊은 원인을 설명하는 데 마음을 기울이는 대신, 그저 내 마음에 그런 아픔이 있다는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수용’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옛 기억을 반추하고 눈물짓던 시간을, 내가 살아가고 싶은 삶의 모습, 내가 추구하고 싶은 가치를 상상하고, 이를 실현하는 방법을 떠올리고 또 행하며 채우는 것입니다. ‘전념’입니다.

 

구체적으로, 남자 친구분이 글쓴이님께 ‘심오하고 난해하다’라 했던 경험을 예시로 들어 보겠습니다. 그때, 혹여 ‘나를 이상하게 생각하나 보다’라거나, ‘나는 이렇게 아팠는데, 그걸 다 이해하진 못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떠오르고, 슬픔에 빠지진 않으셨나요. 그러는 대신 그저 ‘나에겐 남들이 충분히 이해하기 힘든 아픔이 있긴 하지’라 수용하고, ‘나에겐,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좋은 시간을 보내는 것이 소중해.’라는 가치를 발견하며, ‘내가 난해하고 심오한 면이 있어도 좋아해 주는 남자 친구가 고맙네, 그럼 남자 친구와 편하고 즐겁게 지내려면 어떤 이야기를 나누는 게 좋을까’를 고민하고 떠오르는 행동에 전념하면 어떨까요.

남자 친구분과의 관계뿐 아니라, 삶의 모든 부분에서 다음과 같은 관점을 생각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내 삶은 잘못되었어, 그래서 오늘의 내 삶, 앞으로의 내 삶도 잘못될 거야. 어떻게 하지?’의 관점보다는, ‘나의 과거는 이랬어,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런 삶을 살아가고 싶어, 내 삶에 중요한 것은 이런 것들이야, 그러면, 그렇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지금, 여기에서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를 고민하고, 이에 전념하는 것입니다.

그저 남들이 좋다고 해서, 남들에게 좋아 보여서, 통념상 이걸 하는 게 맞아서 그럴듯한 직장을 위해 공부하고 운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이를 위한 삶을 상상하고, 또 그렇게 살아가 보시면 좋겠습니다.

 

과거를 떠올리는 것, 이에 빠져드는 것, 이를 바탕으로 오늘의 나를 설명하려 몰두하는 것, 그러한 경향성이 ‘나쁘다’라거나 ‘틀렸다’고 말씀드리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앞으로의 내 삶, 내가 원하는 행복으로 나아가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라는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그 대신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삶은 어떤 것인지, 어떤 가치를 추구하고 싶은지, 그러기 위해서 ‘지금, 여기’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를 고민하고, 또 그렇게 하루를 채워 보시기를 권해 드립니다.

과거의 아픔을 떠올리는 시간이, 내일의 행복을 위해 다가가는 시간으로 조금씩, 아주 조금씩 물들어가기를 기원합니다.

도움이 되셨기를 바랍니다.

 

이두형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info.psy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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