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정신분석으로의 초대 

Karen Kaplan-Solms, Mark Solms 공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려원기 역

 

혹자(어빈 얄롬 Irvin D. Yalom)가 언급하였듯 언젠가부터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와 정신분석을 비판, 비난하는 일은 유행이 되어버렸습니다. 정신분석은 옛 시대가 낳은 빛바랜 학설로, 내성법과 임상적인 관찰만을 바탕으로 하였기에 근거가 부족하며, 이제는 살펴볼 필요조차 없다는 식의 평가절하가 빈번해진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 속의 방대한 사상이나 실용적인 이론들은 사람들에게 제대로 알려질 기회마저 박탈당했습니다. 과학철학자 카를 포퍼 Karl Popper는 심지어 이런 주장을 펼치기도 합니다. “정신분석은 반증이 불가능하기에 과학이 아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한 사람의 내면, 즉 주관성을 다루는 학문은 애초부터 그런 숙명을 타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스스로의 내면을 직접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인물은 세상에 단 한 사람, 바로 자기 자신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정신물리학에서 꿈꾸는 그런 수단을 우리는 아직 만들어내지 못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타인이 지금 느끼는 마음속의 우울감이 어떤 양상인지 정확히 파악할 수가 없습니다. 우울감에 대한 설문지를 통해 점수를 매겨본다고 한들 그것이 한 인간으로서 느끼는 실제 우울감의 본질을 반영한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카를 포퍼는 강하게 반발하겠지만 어쩌면, 공감을 통해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달되는 근사치야 말로 아직까지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가장 ‘과학적인 값’이 아닐까 싶습니다. 

 

아무튼 지난 수십 년간 과학자들은, 정신분석이 진지하게 탐구했던 ‘마음 그 자체’가 엄밀한 과학적 연구 대상이 아니라고 치부했습니다. 대신에 마음의 ‘장기’ 즉 뇌에 대해 철저히 매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주관성(마음)과 동시에 일어나는 객관적인 두뇌 현상을 살펴보기로 한 것입니다. 그런 식으로 밝혀낸 사실들이 축적되자 이는 곧 임상에서 쓰이게 됩니다. 그리고 대단히 매력적인 해결책으로 자리매김하게 됩니다. 마음의 고통을 다룸에 있어서, 심리적 현실을 탐구하기보다는 “당신에게는 어떠어떠한 신경전달물질이 고갈되었기에 고통을 느끼는 것입니다.”라고 설명하는 편이 좀 더 손쉽기 때문입니다. 

물론 약물을 포함한 생물학적, 생리학적 치료는 비교적 신속하면서도 강력한 옵션입니다. 상황이 심각하거나 급한 경우 생물학적 치료는 거의 유일한 해결책이 될 수도 있습니다. 다만 생물학적으로 접근하는 시각만으로는 간과하기 쉬운 영역들도 존재할 수 있기에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개인이 가진 마음속 깊은 동기나 인격과 같은 것들을 놓치기 쉬울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를 다루기 위해서 우리는 다시 주관성으로 돌아올 필요가 있습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프로이트는 애초에 신경과학자였습니다. 젊은 시절 그는 독일의 물리학자이자 생리학자인 헬름홀츠Helmholtz의 영향 아래, 마음이 운용되는 방식을 물리적 에너지라는 형태로 설명해 내려고 시도하였습니다. 다만 그가 살던 시기의 기술로는 뇌의 역동적인 양상을 살펴볼 길이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아쉬움을 남긴 채 결국 ‘두뇌의 역동=마음의 역동’이라는 등식에서 좌변을 포기한 채 우변만을 탐구하기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프로이트의 저작에서는 다음과 같은 식의 예언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 만약 우리가 이미 정신적인 용어를 생리학적이거나 화학적인 용어로 바꿀 수 있는 위치에 서 있었다면 우리가 설명한 것의 결점들은 아마도 사라졌을 것이다 ... 진실로 생물학은 무한한 가능성의 땅이다. 아마 생물학은 우리에게 가장 놀라운 정보를 줄 것인데, 우리가 던진 질문에 대해 수십 년 뒤 어떤 대답을 내어 놓을지 상상할 수조차 없다 ... (Beyond the pleasure principle, 1920) 


이제 그 예언은 슬슬 현실이 되어 갑니다. 두뇌와 마음을 함께 아우르는 신경정신분석이라는 통섭적 학문이 등장한 것입니다. 책 <신경정신분석으로의 초대>는 신경정신분석이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만들어낸 인물 마크 솜즈Mark Solms 박사의 기념비적인 작품입니다. 책에서는 여러 가지 사례들에 대해 루리아Luria의 역동적 위치 특정법을 적용하며, 신경과학과 정신분석이 다시 합쳐질 수 있는 길을 소개합니다. 프로이트가 꿈꿨던 이 길을 따라가다 보면 언젠가 우리는 좀 더 온전히 마음과 뇌를 이해할 수 있으리라 희망을 품게 됩니다. 

 

* 원서의 제목은 Clinical Studies in Neuro-Psychoanalysis, Introduction to a Depth Neuropsychology입니다. 한국어판 제목은 이무석 교수님의 책 제목 <정신분석에로의 초대>의 오마주임을 밝힙니다. 

 

려원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대구 원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경북대학교 의과대학 의학과 졸업
서울대학교병원 인턴 수료
국립서울병원 (현 국립정신건강센터) 전공의 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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