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송미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저는 고등학생 때 제가 애어른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제 주변에서는 자기 맘대로만 하는 어른아이라고 하네요."

"내가 지금 제대로 된 방향을 가고 있는지 정말 혼란스러워요."

고등학교 시절, 저와 상담하며 함께 고민했던 김군, 그런데 대학생이 되어 다시 저를 찾아왔습니다. 김군은 고등학교 3학년 때 강박증상과 불안으로 약물치료와 상담치료를 하였는데, 2년 후 자주 식은땀이 흐르고 불안, 무력감에 사로잡혀 다시 내원하게 된 것이지요. 무엇이 김군을 다시 불안하게 했을까요?
 

사진_픽셀


어렸을 때부터 책을 많이 읽고 사유하는 것을 즐기는 편이었던 김군. 고등학교 시절, 대입에 필요한 점수들, 반복되는 평가, 친구들과 점차 겉도는 이야기만 하게 되는 상황에서 김군은 괴로워하였습니다. 하지만 치매 노모를 모시는 어머니, 늦게야 퇴근하는 아버지, 철이 없어 보이는 동생을 보면서 자신의 힘겨움 정도는 참아야 한다고 생각했지요.

그러다 대학 진학을 앞두고 부모님과 갈등이 생겼습니다. 평소 사람들을 잘 이해하고 관찰하는 것을 좋아하였기에 김군은 심리학과에 진학하기를 원하였고, 부모님과 선생님은 세무회계학과를 권하셨기 때문입니다. 결국 부모님의 뜻에 따라 진학을 하였고, 자신이 원하는 학과를 진학하진 못했지만 어두운 터널 같은 고등학교 시절을 지나서인지 고등학교 졸업 무렵 김군은 어느 정도 편안해 보였습니다. 
 

“대학에 가서 봉사 동아리에 들어 활동도 하고 영어 신문사 활동도 하고, 아르바이트도 해서 직접 용돈을 벌었어요. 그런데 2학년이 되면서 ‘이렇게 사는 게 맞나?’ 라는 회의감이 들더라고요.”


김군은 주변 친구들이 어학연수를 가고 연애도 하고 즐기면서 지내는 것을 보며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꼈습니다. 원하지 않은 전공이기에 학업에 몰두하기가 힘들어지고 학점이 원하는 만큼 나오지 않자 조바심이 났습니다. 그러던 중 그동안 모은 학자금으로 해외여행을 다녀와야겠다고 결심을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때 김군을 향해 쏟아졌던 것은 격려보다는 이기심으로 바라보는 시선이었다고 합니다. 
 

“해외여행 계획을 말씀드렸을 때 어머니께서 ‘어떻게 너는 너만 생각하니? 우리 힘든 것은 안 보이니? 아빠가 실직하실 지도 몰라.’ 라고 하셨어요. 이 말을 들었을 때, 정말 기분이 바닥 치는 것 같았어요. 이렇게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고요.”


그 후 김군은 상담을 하며 생활 패턴을 바꿔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동아리는 그만 두고 평소에는 참여 안하던 술자리에 가고 학과 친구들과 여행도 다녀오는 등 그동안 차마 시도해보지 않았던 일들을 실행하기 시작한 것이지요. 

 

사진_픽셀


소아정신과 의사의 입장에서 대학생은 발달 과정 중 청소년과 성인 사이의 경계선에 있습니다. Erikson의 이론상 만 18세경까지 인생관과 가치관을 다루는 자아정체성을 성취하고, 그 다음 단계에서 직업과 가족을 이루고 유지할 수 있는 친밀성을 만들어야 합니다. 

하지만 대한민국 현실을 고려하고 저의 임상적인 경험에 근거해 생각해볼 때 자아정체성의 획득은 점차 지연되고 있습니다. 학생들은 초중고를 거치며 지식을 습득하고 사회적 기술을 익혀 사회적 기준에서의 성실성을 갖추게 됩니다. 이후 자신의 성향, 욕구, 정서에 대한 이해, 성찰을 통해 자신만의 생각, 목표를 설정해야 하지요.

그러나 고등학교 시절 이러한 과정을 시행해나가기란 쉽지 않습니다. 성적에 맞춰서 혹은 주변의 권유대로 대학교에 진학하게 되는 경우가 빈번합니다. 결국 김군처럼 맞닥뜨리는 현실에 대해 정서적인 혼란감을 느끼고 이로 인한 불안, 초조함, 식은땀과 같은 스트레스 반응이 다양하게 나타나게 됩니다. 

 

김군이 대학생이 되어 호소한 스트레스 반응은 기존에 유지하던 자신만의 적응방법을 바꾸면서 자연스럽게 나타난 것으로 여겨집니다. 무조건 주변의 기대에 맞추기 보다는 다양한 일을 경험하면서 자신의 욕구, 가치관을 확립하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자아 정체성을 찾는 과정에서 가족 구성원이나 주변의 환경과 갈등을 빚는 과정도 생길 수 있습니다. 

성인기가 시작되며 가족으로부터 독립을 하게 되고 쾌락의 추구와 절제 과정을 배우는 것은 반드시 경험이 필요합니다. 단지 안타까운 점은 대한민국의 대학생들은 이러한 과정을 겪는 것에 대해 주변의 지지와 이해가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가족들은 그 동안 김군이 보여준 성실함, 인내심을 근거로 지금의 과도기를 잘 통과하리라고 믿고 기다려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사진_픽셀


중간고사 기간되면 불안감, 소화불량, 두통, 어지러움, 우울감을 호소하는 대학생들, 학점관리를 불안해하는 대학생들. 하지만 그들의 불안의 뿌리는 학년이 올라가면서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이 근본 원인이라 볼 수 있습니다. 

대학생 중 69%가 자신을 N포세대로 여긴다는 여론조사, 대한민국 대학생의 삶의 만족도가 OECD 48개국 중 47번째 순위에 속한다는 연구결과, 그리고 대학캠퍼스에서 이따금 열리는 ‘스트레스 날려버리기 캠페인’ 등. 

많은 20대 청년들이 고민, 심리적 불편감을 이제라도 사회적으로 다양한 관점에서 다뤄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더 이상 청년들의 문제는 ‘헬조선, N포 세대, 흙수저’라는 자조적인 말을 들으며 결국은 개인이 극복해나가야 되는 문제로 여겨져서는 안 됩니다. 

대학생들의 정신건강을 위해서는 정체성을 확립하고 직업, 가정을 준비하는 단계로 넘어가는 과정에 대한 주변의 실질적 도움, 공감적 반응이 필요합니다. 막연한 여론 조사로 이슈화를 하거나 단순한 이벤트 행사로 도움을 주기 보다는 인식 개선을 위한 교육, 미디어의 활용, 심리 상담에의 접근성 강화, 청년들 간의 소통의 장 마련 등이 필요합니다.

 

저작권자 © 정신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