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광화문 숲 정신과, 염태성 전문의] 

 

도서관이나 서점에 자주 가시는 분이라면 이상한 제목의 이 책을 기억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현재 구글의 엔지니어링 이사로 재직 중인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은 자신의 과학적 지식과 통찰력을 바탕으로 미래를 예측한 '특이점이 온다'라는 책을 2005년 내놓았고, 이는 세계 각종 언어로 번역되어 많은 과학자, 사상가, 철학자들에게 논란의 단초를 제공했습니다.
 


1000페이지에 달하는 두께에 비해 이 책이 이야기하는 주제는 비교적 단순한데, 그것은 바로 2045년 경이 되면 과학기술의 발달이 극한에 달해서 인간은 컴퓨터를 이용한 영생을 누리게 될 것이라는 예측입니다. 특이점이라는 전문용어가 대중화되고 인터넷에서 흔히 쓰이게 된 것도 이 책의 영향이 컸던 것 같습니다.

 

과학의 발전은 우리 삶의 모든 것을 바꾸어 가고 있고, 이는 의학 분야에서도 예외는 아닙니다. 의학은 사람의 생명과 직결되는 학문이기 때문에 과학의 발전과 그 흐름을 같이 하는 가장 중요한 영역이라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덕분에 매우 기발하고 효과적인 치료방법이나 수술 기술 등이 새로이 개발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변화는, 의사가 환자를 직접 평가하고 이를 기반으로 적절한 치료를 행하는 의료시스템 자체가 바뀔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미국의 유명 컴퓨터 회사 IBM은 십수 년 전, 자연어 형식으로 된 질문에 답을 할 수 있는 인공지능 컴퓨터 시스템 ‘왓슨’을 개발했습니다.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대화에서 사용하는 질문들에 대해 대답을 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왓슨의 응용분야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중 가장 각광받고 있는 분야가 의료 쪽입니다. 병의 진단과 치료를 위한 의사와 환자의 대화는 (내용과는 별개로) 비교적 단순한 질문과 답변들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이에 2013년 세계 최고의 병원 중 하나인 미국 엠디 엔더슨 암 센터에서는 IBM과 협업 하에 의료용 인공지능을 지금까지 개발해오고 있습니다. 비판과 회의의 목소리도 많고 아직까지 큰 성과는 없지만, 앞으로도 이 분야에 대한 연구는 점차 커질 것입니다.

인공지능뿐만 아니라 첨단 기술을 이용한 의학의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정신의학의 경우에도 십 년 후, 이십 년 후, 그리고 그 이후의 모습은 지금과는 많이 다를 것이라고 예상됩니다.

 

정신과에서 예상되는 가장 대표적인 변화는 역시 진료를 담당하는 정신과 의사가 인공지능으로 대체되는 시나리오입니다. 정신과의 면담은 투약 등 치료를 위한 정보를 얻기 위해 시행하기도 하지만, 상담치료 자체의 치료적 효과 역시 아주 중요합니다.

사실 정보를 얻는 면담은 현재 과학기술로도 인공지능에 의한 대체가 어렵지 않습니다. 이미 미국에서는 우울증 증상의 평가와 개선을 위한 인공지능 채팅 서비스 워봇(Woebot)을 만들어 서비스를 진행 중입니다.

상담치료의 경우는 아직 논란이 많은 부분입니다. 이 경우 구조화, 체계화하기 어렵고 단순한 대화의 내용 외에도 뉘앙스나 표정, 혹은 과학적으로 설명이 어려운 소위 '인문학적' 요소가 포함되어 있어 혹자는 이 부분을 인공지능으로 대체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라고 말합니다. 정신과 의사와 똑같은 말투로 똑같은 위로를 해주는 인공지능의 목소리를 듣고 실제 환자가 어떻게 생각하고 받아들이게 될지는 지금은 대답할 수 없는 질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의 예측처럼 이는 현대의학에서 인공지능이 대체하기 가장 어려운 부분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반면 연구 분야에서는 이미 큰 진전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몇 년 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알파고'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이제 컴퓨터는 인간이 정해준 프로그램만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학습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점차 키워갑니다. 이를 '머신 러닝'이라 부르며, 이는 현대의학 연구의 지형을 빠르게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분량의 데이터를 빠르게 처리할 수 있게 됩니다.

현대 정신과 연구에서 가장 활발한 분야 중 두 가지가 영상 연구와 유전자 연구입니다. 영상 연구는 병을 가진 사람들의 뇌를 분석하여 질병의 원인과 치료를 규명하는 데에 도움을 줍니다. 유전자 연구는 선천적으로 질병에 취약한 사람들을 미리 파악하여 조기치료 등 장기적 예후에 도움을 주는 방향으로 발전해 갑니다. 이 두 분야 모두에서 머신 러닝 기법은 연구 발전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사진_픽사베이


정신질환과 연관된 유전자와 생물학적 요소들에 대한 깊은 이해는 개별화된 치료(individualized treatment)를 가능하게 합니다. 개별화된 치료란 각 개인의 특질에 따라 세밀하게 다른 종류의 치료를 하는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현재 우울증에 쓸 수 있는 약의 종류는 대략 10개에서 20개 정도 되는데, 증상의 종류나 강도에 따라 다른 약을 쓰는 경우는 있으나 개인의 유전적 생물학적 특징까지 약의 선택에 반영하지는 못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좋은 약으로도 증상이 전혀 개선이 없기도 하고, 또는 심한 부작용이 생겨 약을 중단해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유전과 생물학적 특징에 대해 더 밝혀지게 되면 간단한 검사를 통해 이 사람에게는 어떤 약물이 가장 효과가 좋고 부작용도 없는지 알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사실 지금도 각종 부작용이나 효과 등과 연관이 있는 유전자를 확인하는 검사가 실제로 있지만, 아직까지는 해당 검사들로부터 얻는 임상적인 정보는 많지 않아 더 발전이 필요하다 하겠습니다.

 

약물과 관련해서는 인지 기능 개선제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넷플릭스의 다큐멘터리 '슈퍼맨 각성제(Take your pills, 2018)'를 보면 학업 성과를 높이기 위해 수많은 미국 대학생들이 ADHD 치료제인 애더럴을 불법으로 복용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물론 ADHD 치료제는 병이 없는 사람의 학업성취도를 높이는 약은 아니며 각종 부작용도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전문가들은 이런 목적으로의 사용을 권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향후에 부작용도 훨씬 적거나 없고, 정상인의 인지 기능을 올려주는 약이 나온다면 어떻게 될까요? 처음에는 여러 가지 의미에서 반대에 부딪히겠지만 나중에는 마치 지금 사람들이 비타민을 먹는 것처럼 똑똑해지기 위해 약을 먹는 시대가 올지도 모릅니다. 앞서 말씀드린 연구 관련 혁신과 뇌에 대한 더 깊은 이해가 결합되면 충분히 현실성 있는 이야기입니다.

 

사실 사람의 뇌는 워낙에 복잡하고, 의식이나 자아 같은 현대 과학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요소들도 있어서 다른 신체기관에 비해 아직 모르는 것이 많습니다. 회의론자들은 몇십 년의 세월이 지난다고 해서 우리의 뇌에 대한 지식이 넓어질지 의문을 제기하기도 합니다. 뇌영상 연구 기법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많은 것을 밝혀내고 있지만, 사실 방법론의 측면에서는 큰 변화가 없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50년 전 사람들이 지금의 삶의 모습을 상상하지 못했듯이 지금 우리도 미래의 변화를 속단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이에 대해 한 사람의 정신과 의사의 입장에서는 그런 변화와 트렌드에 뒤처지지 않고 환자의 치료에 도움이 되는 요소들은 되도록 빨리 적용시키도록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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