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란]
- 임상심리전문가
- 네이버 지식iN eXpert 마음상담 전문가

 

가끔 마음이 불안해지는 날들이 있습니다. 사소한 일 때문일 수도 있고, 조금 오래되고 반복적인 문제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럴 때 스스로에게 습관적으로 던지는 말이 있습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극적인 변화는 아니라도, 그렇게 되뇌다보면 불안해지던 마음에 잠시 고요가 찾아옵니다. 그건 사실이니까요. 지금 현재, 내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 무엇에 대하여 가지는 나의 생각들이 이 불안들을 자꾸만 만들어 냅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마음의 호수에 파장을 만들어 냅니다. 어느 날은 큰 돌덩이를 떨어뜨리고, 또 어떤 날에는 작은 조약돌을 자꾸만 떨어뜨리며 말입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가지고 있는 불안의 실체를 제대로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감정이 대수롭지 않은 것이 되기도 하고, 해결해볼만한 것이 되기도 합니다. 
  
불안(Anxiety)
“불쾌한 일이 예상되거나 위험한 일이 닥칠 것처럼 느껴지는 불쾌한 정동 또는 정서적 상태”
  
우리가 불안과 흔히 혼동하는 것이 ‘공포(phobia)’라는 개념입니다. 공포는 의식적으로 인지할 수 있는 외부적이고 현실적인 위험에 대한 반응입니다. 쉽게 이해하자면, 내가 걱정하고 두려워하는 뚜렷한 대상이 있는 것이 공포이고, 막연히 위험에 직면한 것 같아 신체적 증상 등을 동반하며 걱정하고 염려하는 것이 불안입니다. 

집안에 벌레를 볼 때마다 극도로 무서워하는 것은 공포 반응일 수 있고, 혼자 있을 때 괜히 무섭고 마음이 동요되는 것은 불안 반응일 수 있습니다. 이처럼 불안은 때로 나 자신도 내가 무엇 때문에 이렇게 가슴이 두근거리고 식은땀이 나며 집중이 되지 않는지, 의식하기 힘든 그 어떤 감정 상태입니다. 

그렇다면 그 불안의 실체는 무엇일까? 이걸 알아차리는 것이 제일 중요하고 또한 어려운 일이기도 합니다. 나의 몸과 마음을 반응하게 하는 이 불편한 감정의 이면에는 무엇이 있을까?
  
“회피가 불안의 몸집을 더욱 불린다.”
  
우리는 두렵고 불편한 상황이나 대상을 마주하면 여러 가지 대처를 할 수 있지만, 그 중 대다수는 ‘피하는’ 쪽을 택합니다. 사실 원인의 제거가 힘들다 여겨지면 그것만큼 효과적인 방법도 없을 겁니다. 안 보면 되는 것이고, 내가 피해버리면 마주할 일이 없으니까요. 

하지만 문제는 그게 끝이 아니란 겁니다. 그런 상황은 또 마주하게 되고 우리는 다시 불안해지곤 합니다. 매번 피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지만, 안타깝게도, 살며 그렇게 매번 피하는 것도 꽤 에너지가 쓰이고 부담스러운 일입니다. 그리고 피할수록 이 불안이라는 녀석이 몸집을 불려, 심하게는 공황의 상태를 경험하게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결국 전문가를 찾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몸이 아프기도 합니다. 피하는 것은 편한 선택같지만, 반복되면 내가 막아내기에 감당이 되지 않을 정도로 내 삶을 흔들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할 수 있는 일들은 무엇이 있을까요?
  
‘불안 뒤에 숨어 있는 생각을 찾아내는 일’
  
우리는 흔히 우울해지고, 화가 나고, 불안해지지만 때로 내가 왜 그렇게 느끼는지에 대해서 생각해보지 못합니다. 감정은 강렬하고, 여러 신체적 반응(얼굴이 붉어지거나, 눈물이 나거나, 심장이 두근거리는 등)으로 빨리 인지되기에 우리는 쉽게 내 기분이 지금 어떻다고 말은 하지만 그 감정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에 대해서는 놓치곤 합니다. 

부글부글 끓는 냄비 같은 내 ‘기분’을 살펴보면 마음을 들끓게 하는 거센 불꽃같은 ‘생각’이 있습니다. 어떤 생각이 내 기분을 다스리는 겁니다. 그래서 앞서 언급했듯이, 불안의 이면에 있는 생각을 잡아내야 합니다. 내가 불안해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날 불안하게 만드는 생각은 무엇일까?

사람들마다 모두 생각이야 다르겠지만 대개 불안한 사람들은 ‘안 좋은 일이 생길 거야’라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내가 불편해하는, 두려워하는 어떤 구체적인 혹은 애매한 상황이 벌어질 거라고 미리 예견하는 겁니다. 

예를 들어, 현재의 바이러스에 대한 공포와 불안도 마찬가지입니다. 안 좋은 일, 감염이 되어 격리가 되고 건강을 잃게 되고 최악의 결과로 생명이 위험해지리라는 생각 말입니다. 그 생각은 점차 불안을 가중시켜 최소한의 필요한 활동들에 대한 강한 스트레스로 이어지기도 하는 겁니다. 그럴 때 스스로에게 한 번 되물어보는 것도 필요합니다. 

‘지금 내게 그 중 하나라도 일어났는가?’, ‘만약 안 좋은 일이 생겼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지금 바로 이 순간에 내가 직면한 위험의 객관적인 파악과 함께 위험이 닥쳤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조치와 행동과 같은 ‘매뉴얼’만 간단히 정리하더라도 불안은 많이 줄어들 수 있습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다시 한 번 되뇌어 봅니다. 지금 내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저 먼 산 뒤에 있을 혹시 모를 위험한 것들 때문에 걱정하는 사이에 내 발밑에 어여쁜 꽃이 피었다 지고 있을지 모를 일입니다. 지금, 내가 서 있는 이 곳을 둘러보세요. 발 밑을 바라보세요. 분명 내가 미처 보지 못한 아주 사소하지만 소중한 것들을 찾아내는 동안 내 마음도 조금 가벼워질 겁니다.


 

저작권자 © 정신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