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광화문 숲 정신과, 염태성 전문의] 

 

사연) 

안녕하세요. 제 언니의 모습이 더 악화되기 전에 교정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도움 요청드립니다.

언니는 고등학교 졸업하고 대학교를 다니다가 자신의 꿈(연예인)과 다르다는 이유로 자퇴하고 은둔하게 살아간 지 10년이 되었습니다. 언니의 꿈을 조금이나마 지원하기 위해 보컬, 댄스학원에 보내 주거나 오디션도 보게 했지만, 끈기 부족으로 본인이 그만두고 집에서 음악 듣고 춤만 춥니다.

아르바이트를 해보겠다며 도전했다가 미성숙한 사회기술로 한 달이 채 가보지도 못하게 잘린 게 수십 차례입니다. 방광염(?)으로 화장실을 비정상적으로 자주 가는데 방광염이 나아야 아르바이트를 하겠다고 말만 하며 매일같이 밤낮이 바뀐 채 방 안에서 거울 보고 춤추는 것과 컴퓨터로 음악 듣는 것, 집안일(빨래, 설거지)하는 것이 전부입니다.

방광염도 치료해보자고 대학병원에 데려가 보았지만 본인이 치료를 거부하며 완치할 생각이 없이 말로만 “방광염 다 나으면 아르바이트를 하겠다.”라고 말한 지 4년이 넘어가는 듯합니다. 독립의 생각 없이 부모님께 의존하려고만 하고 아르바이트로 돈을 버는 목적도 자신이 좋아하는 치킨을 먹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친구와도 매번 절교하고 유일한 친구 1명과도 단절되었고, 이후에는 친구를 사귀려 하지 않고 SNS에서 학교폭력 가해자가 잘 사는 모습만을 부러워합니다.

 

아버지는 현재 정년퇴직을 앞두고 있고 퇴직 이후 경제적으로 불안정해지는 상황에 불안해하며 언니에 대해 걱정합니다. 언니가 정신과 치료받게 해서 장애진단을 받아야 한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어릴 적 언니를 혼낼 때 폭력을 휘두르며 강압적으로 했으나 현재는 언니가 안타깝다며 지지하고 오냐오냐하는 식입니다. 언니는 그런 아빠를 이용해 경제적으로 의지하다가도 미워하는 감정이 있습니다.

어머니는 언니가 20대 초반일 때까지만 해도 언니의 자립(평생교육원, 바리스타 등)을 위해 힘쓰다가 언니가 제자리라는 것을 깨닫고 신경 쓰지 않고 언니에게 집안일 맡기며 본인의 삶을 즐기고 계십니다.

저는 저라도 빨리 독립해야겠다는 생각에 쉼 없이 달려와 현재는 직장 생활하고 있습니다. 저도 언니를 위해 함께 놀러 다니고 자원봉사 권유, 방광염 치료 동행, 상담가인 친구 소개 등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언니는 엄마와 제가 하는 요구에 대해서는 무시하고 무작정 화를 냅니다. 남 탓하기 바쁘고 정작 문제 해결하려고 하면 시비 건다고 자기 방식만 고수해서 지쳐갑니다. 물 적게 써라, 휴지 조금 써라, 음악 소리 낮추라는 상식적인 말 한마디에도 어머니나 저한테 눈 뒤집히며 분개하고 본인이 큰소리칩니다. 때로는 언니의 감정표현이 이성적으로 차분하게 대화해도 될 내용인 것 같은데 저렇게까지 연극적으로 과장되게 화날 행동인가?라는 생각이 들 때 있습니다.

 

저는 작년에 언니 문제로 제가 심리상담센터를 찾게 되었고 제가 상담을 받았습니다. 이곳으로 언니를 먼저 연결하고 싶은데 도저히 상담이나 치료받으려는 의지가 없고 가족들만 전전긍긍 불안한 상태입니다. 철이 없다고 하기엔, 병적인 느낌이 강하고 정신과 및 상담치료 시급합니다. 아버지는 저보고 언니를 대하는 태도를 바꿔 시도하라고 하는데 저도 지쳤습니다. 저보다는 아버지가 개입하고 태도를 바뀌어야 할 것 같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언니가 일하는 것은 바라지도 않고 소소한 자원봉사라도 하면서 사람들과 교류했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전문가의 조언 부탁드리겠습니다.
 

사진_픽사베이


답변)

안녕하세요? 광화문 숲 정신과 염태성입니다.

언니께서 가지고 있는 문제들에 대해 자세히 작성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본 답변은 현재 언니가 가지고 있는 정신 병리나 진단명 등에 집중하기보다는 현실적으로 어떤 해결책을 생각해볼 수 있을지에 대해 작성해 보고자 합니다.

 

우리나라 정신보건법에서는 정신병의 증상이 뚜렷하고 자, 타해의 위험이 명확한 경우에만 강제입원이 가능하다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강제 치료에 대해서도 사실 입원을 시키지 않으면 치료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므로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따라서 현재 우리나라에서 정신과 치료를 받고 계신 분은 두 부류입니다. 하나는 스스로 원해서 병원에 오시는 경우이고, 또 하나는 위의 조건을 만족시켜서 가족 등 타의에 의해 입원해서 치료를 받고 있는 분들입니다.

그래서 그 사이에 있는 사람들은 치료 대상이 아닙니다. 뚜렷한 정신과 질환이 있고 이로 인해 가족들을 힘들게 하거나 스스로의 인생을 갉아먹고 있더라도 본인이 치료를 원치 않으면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법이 이런 식으로 정해진 이유는 증상이 아주 심한 사람이 아니라면 치료받을 필요성보다 그 사람의 인권을 더 존중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극단적으로 이야기하면, 지금 글쓴이분께서는 언니의 인생이 안타깝고 가족들도 힘들어서 치료받기를 원하는 마음이 간절하시지만, 언니분의 입장에서는 스스로 치료의 필요성이 없다고 생각하고 현재의 상태에 만족하고 계실 수도 있습니다.

 

언니의 증상들을 들어봤을 때 투약치료 등 정신과 치료로 언니가 좀 더 정상적이고 남들과 비슷한 생활로 돌아갈 가능성은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이런 치료는 언니가 원하지 않으면 절대 시행할 수가 없습니다. 언니가 치료를 받고 싶지 않아 하는 근본적인 이유에 대해 생각해보세요. 언니가 사회로 돌아갈 필요성이 없기 때문에 현재 상태에 만족하고 계신 것이라면 스스로 독립의 필요성이 생기도록 가족들과 상의해서 전략을 세워보는 것도 필요합니다.

혼자 방문해서 진행하는 정신과 치료나 상담치료에 대해 언니가 거부적이라면 가족치료 등의 세팅으로 언니를 점차 치료의 범위 안으로 끌어들이는 것도 고려해 보세요. 언니로 인해 가족들이 얼마나 힘든지 전문가의 입을 통해 분석된 내용을 듣게 되면 언니의 태도도 조금은 바뀔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가족 구성원 중 글쓴이분만이 노력하고 부모님께서는 그렇지 않으신 것 같은데, 필요하다면 부모님께서 글쓴이분과 함께 병원에 방문하셔서 현재 언니의 상태나 치료 필요성에 대해 교육을 받으시면 서로 힘을 합칠 수 있지 않을까도 생각이 듭니다.

 

제 답변이 충분한 도움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사실 안타깝게도 언니와 비슷한 상황의 정신과 환자들이 가족들의 괴로움에도 치료를 받지 않고 있는 경우가 아주 많습니다. 저도 가끔 비슷한 문제를 가지고 병원을 방문하시는 보호자 분들께 '환자가 스스로 치료받을 의지가 없으면 딱히 방법이 없다'는 말을 전하면서 괴로움을 느낍니다. 부디 상황이 잘 해결되어서 글쓴이분께서 느끼고 계신 괴로움도 사라지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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