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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기고] 지금은 숲으로 가는 길 - 24. 당신의 숲은 어디 있나요?

기사승인 2020.07.29  09:3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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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은 숲으로 가는 길] 4부 - 숲의 길을 걸어봐요

24화 당신의 숲은 어디 있나요? (마지막 회)

 

“비가 오는 거야? 망했네…!”

제주도 사려니 숲이었다. 롤라이플렉스(Rolliflex)라는 희한하게 생긴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 친구와 좋은 사진을 찍어보겠다고 작정을 한 터였다. 사려니의 정령이 나를 허락하지 않는 것 만 같았다. 투두둑 떨어지는 굵은 빗소리에 우리를 사려니 숲 입구까지 데려다주시던 택시 아저씨가 잠시 만류했다. 젊은 호기에 “아니에요~그래도 가볼래요!” 했다. 우비를 입었는데 우산까지 써야 할 지경이었다. ‘비만 안 오면 저 꽃도 찍고, 특이하게 빨간 저 나뭇가지도 찍을 텐데···.‘

호쾌한 빗소리에 다들 잔뜩 겁을 먹고 숲에서 떠났다. 그 고요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는 감동을 줬다. 무엇과도 대체 불가능한 감동이었다. 나와 I의 발걸음 소리만 가득한, 투둑투둑 빗소리까지···. 동화 속에 와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물기를 잔뜩 머금은 바닥은 화산석이라 색이 더 짙어졌다. 동시에 흙냄새도 더 짙게 풍겨왔다. 비 비린내와 짙은 흙냄새···. 이것보다 더 내 마음을 어루만져주던 순간이 있었나? 싶게 감동적이었다.

그래서 누군가 가장 기억에 남는 숲이 어디냐고 묻는다면, 나는 사려니 숲을 주저 없이 말할 것이다. 다시는 겪을 수 없을 공간과 상황이라 할지 몰라도, 단 한 번으로도 충분한 감동을 받았으니까. 
 


다행히도 우리나라는 산림이 풍족하다. 다른 나라처럼 공원이 많은 문화는 아니지만, 산이 많아 근교 둘레길을 걷는 등, 숲을 접하기 비교적 쉽다. ‘숲.’ 하면 떠오르는 주변 산이나 숲이 있는가? 없으면 지도 앱의 도움을 받는 것도 좋겠다. 크고 작은 숲과 산의 둘레길이 잘 되어 있어서 어린 아이나, 노약자도 쉬엄쉬엄 즐길 수 있기도 하다. 

자꾸 식물도 두 번씩이나 권하고, 이제는 숲까지···. 집착하는 이유가 있다. 사람이 바쁘게 살거나 우울하게 살거나, 혹은 힘들거나, 괴로우면 자신의 생각을 정리할 시간 없이 지나치기 십상이다. 그럴 때 녹색 식물 친구를 찾으면서, 숲을 찾으며, 잠시 생각할 시·공간을 얻는 것이다. 그곳에서 얻어올 수 있는 에너지와 생각할 수 있는 시간, 공기. 수많은 고민과 의문을 풀어줄 알맞은 공간이 되어준다. 

 

사람은 언제나 상황에 따라, 상대에 따라 다른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 나는 종종 정신병원에서도 가면을 쓴다. 아직 정리되지 않은 힘든 마음이 있다면, 우선 괜찮다고 대답하곤 한다. 비겁한 습관이다. 하지만 ‘나’는 ‘나 자신’에게는 항상 솔직해야 한다. 지금 당장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이 아니라도, 우선 멀리 두고 관찰은 해야 한다. 그래서 나 자신 속에 어떤 마음이 들어오는지, 그 후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암흑 같은 곳에서 한 줄기 해도 들지 않게 암막커튼을 치고, 가만히 누워 울기만 했을 때였다. 끝도 없이 생각에 생각을 거듭했다. 대부분 부정적인 생각이고, 괴로웠고, 참으로 외로웠다. 그런 와중에 종종 떠오르던 ‘사려니 숲을 걷던 나’의 기억은 아주 잠깐 ‘휴-’하고 생각을 멈춰주었다. 내 마음에 휴식공간이 들어와 있었던 것이다. 나의 부족한 삶에 매일 웃게 해 줄 수는 없지만, 헤어질 수 없는 ‘나’라는 존재와는 잘 지내야 한다. 마음 안에 떠오르면 쉴 수 있는 휴식공간이 있어야 한다. 

그 존재가 나 자신의 경험이 될 수도 있고, 어떠한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람을 그 대상으로 삼는 건 조금 위험하다. 내가 매일 바뀌어 가는 것이 가능한 것처럼, 상대방도 매일 변하고 있으니까. 결국에 당신이 지칭하는 모든 ‘생각 휴식공간’을 나는 ‘숲’이라 부르련다. 

 

당신의 숲은 무엇인가? 어디인가? 언제인가? 하루하루 쌓아가는 삶 속에 당신은 어느 곳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나? 알고 보니, 전혀 낯설지만은 않던 공간일 수 있다. 이미 당신 안에서 알아봐 주길 기다리고 있을 수 있다. 
 


나는 사려니 숲의 기억을 따라, 집을 숲처럼 가꾸고 있다. 실제로 수많은 식물들이 존재하고, 엄청난 노동으로 그들을 매일 가꾸어 줘야 한다. 물도 때에 알맞게 줘야 하고, 빛도, 바람도 각자에 맞게 존재해야 한다. 나는 작은 발코니에서 그것들로부터 매일, 매 순간 배움을 얻는다. 그리고 충분히 쉰다. 하나하나 돌보며 물을 주면 족히 두 시간은 걸리는데, 그 시간이 나에게는 큰 휴식이다. 동시에 큰 위안이 된다. 이제는 사려니 숲으로 가면, 우리 집 식물들 걱정에 밤잠을 설칠지도 모르겠다. 

 

삶은 유한하고, 모두에게 같은 시간이 부여된다는 점에서 어쩌면 시간은 참으로 잔인한 면이 있다. 그 시간을 충분히 즐기며 사는 사람과 조금씩 더디게 깨닫는 사람들은 분명 다른 삶을 살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모두 하나의 생명을 가졌다는 점에서 시간의 잔인함은 뒤틀어진다. 삶을 주도적으로 꾸려가는 데에 늦어도, 그것 또한 소중한 삶이라는 것은 변함이 없다. 당신이 해야 할 일은 당신의 숲을 만드는 일. 아무리 빠르게 살아도, 또는 조금 늦게 살아도 ‘숲’이 없다면, 당신은 허둥지둥 하루하루를 지내는데 휴식과 위로 없이 ‘살기만’하는 것이다. 

분주하고, 때로는 권태로운 삶을 살지라도, 하루 중 숲으로의 짧은 여정은 당신의 정신을 건강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그러한 여정을 만드는 데에 이 글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기를 간절히 바란다. 모두 각자의 숲에서 무한한 행복과 휴식을 만끽하기를 바라며, 글을 마친다. 

 

 

긴 시간 저의 발걸음에 발맞춰 걸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큰 소망이 있다면, 그 걸음걸음이 너무 지루하거나 저만 일방적으로 떠들었던 것이 아니었길 바랍니다. 여러분 마음속에 작은 숲을 위해 그 보다 작은 나무 한 그루 심어 두고 떠납니다. 부디 향기도 나고 새싹도 잘 돋는 나무로 성장해주길 바랍니다. 진심을 다해 감사합니다.

 

<함께, 숲으로 가요>

<지금은 숲으로 가는 길>의 차기작 <함께, 숲으로 가요>에 함께 해주실 분들을 모십니다.

힘든 이야기를 제게 털어놓아주세요. 열심히 듣고, 글을 짓습니다. 

겪은, 겪고 있는 아픔을 글로 나눔으로써 모두에게 공감과 위안을 주는 이번 글은 익명으로 

진행됩니다. 자세한 사항은 simkyungsun@naver.com 으로 문의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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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경선 info.psy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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