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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시세끼 라면만 먹고도 살 수 있을까? - 라면 중독

기사승인 2020.08.20  00: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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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형진의 <중독 인생을 위한 마음 처방전> (5)

[정신의학신문 : 신림 평온 정신과, 전형진 전문의] 

 

지하철역 벤치에서 한 남자가 깨어난다. 해리성 기억상실에 걸린 그는 자신의 과거를 기억하지 못한다. 주머니에는 자신을 증명할 그 무엇도 남아 있지 않다. 그가 한 여자를 만난다. 서하숙이다. 그녀는 라면 전문가다. 라면에 관해 백과사전 같은 지식을 소유한 여자다. 그는 이 여자와 동거에 들어간다. 그러다 그는 그녀를 통해 기억 이식 사이트와 기억 이식 중매자 M을 알게 되고, 기억 이식을 거쳐 이명구라는 새로운 인물의 기억을 가지게 된다. 

윤대녕의 소설 『사슴벌레 여자』 줄거리다. 작가는 타인의 기억을 이식받아 자아와 타아가 공존하는 분열된 삶을 사는 사이보그적 인간의 전형을 그려냄으로써 점점 디지털화되고 기계화되는 현대인들의 고독과 그것을 방관하기만 하는 현대 사회의 비극을 폭로한다. 이를테면 이 소설은 첨단 문명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외롭고 쓸쓸한 자화상이다. 내가 누구인지를 타인에게 증명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신분증? 신용카드? 스마트폰? 만약에 그 모두가 없다면 내가 누구인지를 어떻게 알릴 수 있을까? 작가가 던지는 질문들이다.

특히 흥미를 끄는 건 서하숙이라는 여자다. 유난히 키가 작은 그녀는 고독의 냄새가 가득한 다섯 평 남짓한 월세방에 산다. 그녀는 삼시세끼 라면만 먹는다. 팥라면, 허니머스터드라면, 라면크로켓, 발렌타인라면 등 그녀가 요리하는 라면의 세계는 무궁무진하고 휘황찬란하다. 아무리 그래도 매일 라면만 먹고사는 게 과연 가능할까? 그녀는 라면 말고는 다른 어떤 음식도 받아들이지 못한다. 이른바 장협착증으로 인한 특이체질이다. 열여섯 살 때 거식증에 걸려 괴로워하다가 라면을 먹기 시작하면서부터 전혀 문제없이 살게 된 여자다. 

 

특정 음식에 중독된 사람, 그중에서도 라면에 중독된 사람이 의외로 많다. 삼시세끼를 라면으로 해결하지는 않더라도 최소 하루 한 번은 라면을 먹어야만 직성이 풀리는 사람도 있고, 매일 밤 라면을 야식으로 먹지 않으면 도저히 잠을 잘 수 없다는 사람도 있다. 한국인들의 라면 사랑은 유별나지만, 중독이라고 이름 붙이기에 전혀 손색이 없는 극성 마니아들이 있다. 이처럼 라면에 중독되는 이유는 무엇이고, 이들에게는 어떤 증상이 나타날까?

라면을 먹지 않으면 금단 증상까지 느끼는 것은 라면수프에 들어가 있는 인공조미료, 즉 MSG(MonoSodium Glutamate, 글루탐산나트륨) 때문이다. 이는 단백질 아미노산의 일종이자 감칠맛을 내는 글루탐산이 물에 잘 녹도록 나트륨을 결합해 만든 것이다. 다시마를 오랫동안 끓였을 때 얻을 수 있는 감칠맛을 내지만, 다시마가 아닌 사탕수수로 만든다. 식품의 풍미를 증진하는 효과가 있는 MSG는 많은 가공식품에 식품첨가제로 포함되어 있다. 

글루탐산은 뇌를 자극해서 신경전달에 영향을 주는 물질이다. 흥분성 수용체에 결합하는 형태라서 흥분성 신경전달물질이라고도 한다. 이는 뇌의 발달에 필수적이지만, 지나친 흥분은 세포의 자발적인 사멸과 같은 나쁜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래서 적당한 정도로 균형을 유지해야 하는데, 이러한 균형이 깨지게 되면 특정 뇌 부위의 신경 가소성에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측두엽과 측좌핵의 도파민 관련 부위나 피질 선조체 회로의 신경 가소성에 문제가 발생할 경우, 다양한 중독을 유발할 수 있다.
 

사진_픽사베이


라면 중독을 유발하는 또 하나의 요소는 탄수화물이다. 단백질, 지방과 더불어 3대 영양소인 탄수화물은 우리 몸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영양소지만, 필요 이상으로 많이 섭취할 경우 건강을 해치는 주범으로 돌변한다. 탄수화물은 당으로 바뀐다. 당을 많이 첨가한 식사는 뇌와 행동에 많은 변화를 유발할 수 있다. 뇌 영상 연구에서 당 역시 코카인 같은 약물을 섭취할 때 활성화되는 뇌 부위를 활성화한다는 결과들이 있다. 아울러 동일한 부위를 활성화하기 위해 더 많은 양이 필요한 내성이 생긴다고 알려져 있다. 라면이나 빵 같은 식품은 탄수화물 과잉 섭취의 주요한 통로가 된다. 정제된 탄수화물의 달콤함에 빠져 끊임없이 이를 체내로 공급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증상이 바로 탄수화물 중독이다. 

MSG는 중독과 관련된 문제 이외에도 신진대사에 관여하는 부위나, 에너지 균형을 유지하는 곳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인슐린 저항성이나 렙틴과 같은 비만과 관련된 호르몬의 작용에 문제를 유발하고, 각종 염증 관련 물질을 유도한다. 여기에 과잉섭취된 탄수화물이 축적되면 대사증후군과 관련된 문제 또한 피하기 어려워 다양한 질환을 겪게 된다. 

 

MSG와 탄수화물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중독성이 강하다. 입맛을 자극해 기억하도록 하는 까닭에 몸에 좋지 않은 걸 잘 알면서도 자꾸 먹게 된다. 건강에 좋지 않은 음식을 끊지 못하고 계속 섭취함으로써 몸에 이상이 생기는 중독 증상은 정신적 문제로 귀결된다. 

어떤 일을 몹시 즐겨서 거기에 빠지는 걸 탐닉(耽溺)이라고 한다. 의학적으로는 신체적 혹은 정신적 원인으로 강화 효과가 생겨 특정 행동이나 물질 등에 집착함으로써 정상적인 생활을 유지해 나가는 데 장애가 생긴 상태를 가리킨다. 일시적 쾌락을 추구하는 행위를 장기적으로 반복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부정적인 결과가 발생하더라도 이미 통제력을 상실했기에 제어할 수 없고, 개인이 스스로 노력해도 좀처럼 빠져나올 수 없는 상태를 말한다. 

인간의 삶에서 하루 세끼 식사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생물학적으로 제때 영양분을 공급해 줘야만 살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인간관계와 사회생활 대부분이 식탁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살기 위해 먹는 사람도 있지만, 먹기 위해 사는 사람도 있다. 식탐, 즉 먹는 것에 대한 탐닉은 상상 이상으로 강렬하고 중독성이 세다. 현대인들에게 MSG와 탄수화물로 무장한 라면의 유혹은 간단히 뿌리치기 힘든 시험이다.

 

라면 중독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 천연 조미료로 맛을 낸다. 자연식품 속에 포함된 글루타메이트를 먹는 건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번거롭더라도 멸치나 다시마를 사용해서 천연 조미료로 맛을 내는 게 좋다.

둘째, MSG는 하루 1그램 이하로만 섭취한다. 다양한 음식 재료 속에 MSG가 들어있으므로 음식을 골고루 먹을 경우, 위험 수준 이하로 MSG를 섭취할 가능성이 커진다. 

셋째, 제철 음식은 물론 채소와 과일을 충분히 먹는다. 제철 음식을 먹는 것이 MSG에 오염된 미각을 회복하는 지름길이다. 채소와 과일은 다양한 비타민과 항산화제가 많아 인체에 매우 유익하다. 이들은 MSG로 인한 독성을 줄여주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넷째, 혈당지수가 낮은 탄수화물을 섭취한다. 통밀빵, 콩, 현미, 견과류 등 혈당지수가 낮은 식품을 자주 먹으면 인슐린이 과도하게 분비되지 않아 비만과 당뇨도 예방할 수 있다.

다섯째, 먹는 것에 대한 탐닉을 다른 데로 돌리기 위해 운동, 영화 감상, 독서, 미술이나 사진 전시회 관람 등 열정과 에너지를 쏟을 수 있는 취미나 예술 쪽에 관심을 가진다. 

 

작가는 디지털이라는 주제를 다루기 위해 라면을 소재로 사용했다. 현대 문명 속에 버려진 주인공은 인스턴트 시대에 걸맞게 라면에 중독되어 다른 사람의 기억을 이식한 채 고독을 벗 삼아 살아간다. 기억을 이식한 남자는 어떻게 됐을까? 자기가 누구라는 걸 알게 되고 집으로 돌아가지만, 과거의 기억을 재생시키지 못하는 남자를 가족들은 식구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남자는 결국 다시 서하숙을 찾는다. 함께 라면을 끓여 먹던 그 기억 저편의 방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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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info.psy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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