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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ctor's Mail] 사회생활에 적응하는 것이 너무 어려워요

기사승인 2020.10.04  09:4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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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의학신문 : 서울 숲 정신과, 염태성 전문의] 

 

사연) 

저는 아부를 못하는 성격이에요. 짧은 인생의 경험상 꼭 그런 말로 다가오는 사람들은 뒤통수치는 사람들이 많더라고요. 어릴 때부터도 사실 나는 물론이고 사람들에게 잘 관심이 없었어요. 그 결과 이런저런 핑계로 사교적이지 않고 사회생활에 서툴러요. 제가 말하면 정적이 흐를 정도로요. 이전 직장은 대부분 수평적 구조라 그런 제 단점이 상대적으로 덜 드러났는데 극보수적인 직종으로 바꾸니까 이런 점들이 여러모로 힘드네요.

제가 어릴 때부터 사귄 친구들은 그냥 제가 제 일을 묵묵히 하고 있으면 다가오는 성격들이었어요. 시시콜콜한 고민 이야기보다 그냥 같이 밥 먹고 하면 그걸로 충전되는 스타일들이었어요. 힘들 때 힘든 이야기를 외면하지는 않지만, 사소한 일들로 부정적인 이야기가 지속되면 적당히 선을 긋기도 하고요. 한때는 서운하기도 했는데 저는 이제 그게 그렇게 섭섭하지 않아요. 내가 미워서가 아니라는 것도 알고, 감정은 전염되니까 내가 고쳐야 하는 부분이라는 것도 알고, 언제든 친구들에게 돌아가서 다시 웃을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사회에선, 수직적인 구조에선 그런 게 필요한가 봐요. 하나하나 관심 갖고 추켜올려주고 하는 것들이요. 그리고 그런 센스들로 인해 일의 부족함이 눈 감아지기도 하고 더 드러나기도 하나 봐요. 이런 건 그냥 노력하면 되는 건가요? 이런 건 관심인 거고 아부는 아닌 거죠?..

 

느린 성격이에요. 아무리 필요한 부분만 봐라 이야기해 주셔도 제가 아는 한 총체적으로 다 보려고 해요. 어느 순간 까먹고 있어요. 일부만 봐도 된다는 그 말을요. 사실 상사님들이 책임지시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 들어요. 이전 직장을 그렇게 퇴사했거든요. 문제가 발생하고 힘들었을 때 어떤 조치도 없이 제 잘못만 추궁하는, 오랜 시간 저를 봐온 분들은 안타까워했지만 버티지 못했어요. 

사실 현재는 일적으로든 개인적으로든 상사님이 저를 괴롭힌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랬다가 저랬다가, 오라 가라, 욕도 하시고 그러다가 같이 밥 먹자고도 하시고, 또 화내시고. 그리고 그런 것들을 나타내는 표현들이 한 번도 겪지 않아본 것들이었어요. 이런 걸 씹어서 떠먹어줘야 하냐는 표현이나 볼펜으로 배를 꾹꾹 누르면서 지적하는 행동, 전임자와 제가 만든 자료를 보고 "썅년이네." 하는 말. 아무리 고민해봐도 그냥 꼬투리를 잡아서 자신의 감정을 다 저에게 쏟아내는 것처럼만 느껴져서 사실 오래 버티지는 못할 것 같아요. 일을 해야 하는 곳에서 감정이 먼저 보이고, 이미 의심이 생긴 관계가 어떻게 나아지겠어요.

그런데 남은 기간 어떻게 하면 관계가 조금 더 개선될 수 있을까요? 만약 제가 정말 밉거나 싫으신 거면 저는 어떻게 하는 게 나아요? 아니 사실 가장 궁금한 것은, 누군가에게 적당한 관심으로 호감을 얻고 적당한 거리를 둬서 나 스스로가 안전하다고 느끼려면 어떻게 행동해야 해요? 정말 고집이 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런데 정말, 아부하는 것보다 차라리 미움받는 게 편해요. 고칠 수 있는 방법이 있나요? 어이없고 기가 찰지 모르겠지만, 저는 저처럼 관심 가져 달라고 하는 분들이 불편해요. 제가 싫어하는 제 모습이라서요. 사회적인 인간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사진_픽셀

 

답변)

안녕하세요, 홍대 서울숲 정신과 염태성입니다.

정신분석학의 초석을 다진 학자 중 한 명인 카를 융은 일찍이 ‘페르소나’라는 용어를 도입하여 사람들의 관계에 대해 설명하고자 했습니다. 라틴어로 가면이라는 뜻인 페르소나는 사람이 사회적 활동을 할 때 보이는 모습들을 말합니다. 우리는 각기 다른 환경에서 사람들을 대할 때 조금씩 다른 태도와 마음가짐으로 행동합니다. 한 사람의 배우가 연극에 설 때마다 매번 다른 역할을 맡는 것처럼 그때그때 필요로 하는 모습도 조금씩 달라집니다.

 

자기의 본래 내면의 모습과 페르소나 사이의 차이가 너무 크면 사람은 필연적으로 지치게 됩니다. 외출할 때마다 몸에 맞지 않는 옷이나 신발을 신고 다닌다면 금방 피곤해지고 스트레스를 받을 것입니다. 따라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다양한 페르소나들은 어떤 면에서는 조금씩 나의 모습을 반영한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만약 어쩔 수 없이 원래의 나와는 다른 또는 전혀 반대되는 캐릭터를 지속적으로 연기해야 한다면, 만성적인 스트레스가 쌓여서 우울증이나 번아웃 증후군에 이르게 될 수 있습니다.

반대로 모든 상황에서 태도를 바꾸지 않고 일관되게 행동하는 것이 가능할까요? 모든 주변인들이 자신에게 맞추어 주고 뜻을 거스르지 않는다면 이런 이상적인 생활이 가능할지도 모릅니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기에 해당되지 않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상황에 따라 다른 태도를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처럼 한 사람이 여러 가지 페르소나를 가지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며, 사회활동을 하는데 꼭 필요한 것입니다. 상황에 맞는 적절한 페르소나를 유지하는 것은 정신건강을 위해 꼭 필요한 일입니다.

 

그렇다면 괴로움에 빠지지 않고 필요한 페르소나들을 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람들은 타고난 것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아주 근원적인 부분까지 노력으로 바꾸지는 못합니다. 그래서 우선은 자신이 타고난 부분에 대해 스스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먼저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바꿀 수 없는 것에 대해 괴로워하고 생각을 반복하는 것은 만성적으로 우울해지고 불행해지는 흔한 길 중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자신의 장단점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은 자존감이 높은 사람들이 보이는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그다음 단계는, 자신의 본모습을 바탕으로 상황에 어울리는 페르소나를 찾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어떤 모습을 보여야 하는지 적당한 태도를 찾아야 하고, 이는 자기만이 할 수 있는 작업입니다. 가령 직장에서 나의 페르소나는 나의 본모습을 바탕으로 스스로 만들어가야 하는 것으로, 타인과 비교해서 무조건 따라 하는 것은 답이 되지 못합니다. 설사 타인을 참고해서 비슷한 모습을 보이더라도 그 모습을 오래 유지하기에는 지나친 스트레스가 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상황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이고 가면을 쓴 것처럼 행동하는 것을 결코 가식이나 나쁜 것으로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페르소나를 유지하라는 것이 항상 가식적으로 행동하라는 뜻은 아닙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적절한 페르소나는 자신의 본모습과 어느 정도 맥락이 통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야 진심으로 상대를 대할 수 있고, 스스로도 스트레스를 덜 받게 됩니다. 나와 다른 삶을 동경해서 나와 너무 다른 페르소나로 사람들을 대하게 되면, 진정한 관계를 유지할 수 없게 됩니다.

요컨대 제가 생각하는 사회생활 유지를 위한 방법은 우선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자신의 본모습을 바탕으로 건강한 페르소나들을 적절하게 유지해야 하며, 마지막으로 항상 사람을 진심으로 대하는 태도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제가 환자분들에게 자주 드리는 말씀이 있는데, 결국 사회생활, 인간관계도 어느 정도는 기술이라는 것입니다. 자전거 타는 법, 운전도 처음에는 서툴지만 하다 보면 점차 익숙해지듯이, 경험이 쌓이고 연습을 해가다 보면 보다 사회적인 인간으로 변할 수 있습니다. 타고난 부분이 너무 부족해서 사회화가 어려운 분들도 있습니다만, 그런 경우는 극히 드뭅니다.

사회성이라는 것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에 꼭 필요한 재능 중 하나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머리가 좋지 않게 타고난 사람이 부단한 노력 후 머리가 좋은 사람보다 높은 시험 점수를 받듯이, 사회성도 노력 여하에 따라 변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물론 공부하는 것에 비해 노력하는 방법 자체가 애매모호하고 개인차도 커서 그만큼 힘들기도 합니다.

 

알프레드 아들러의 대인관계 심리학에 대해 설명한 ‘미움받을 용기’라는 책을 보면, ‘인간관계에서 10명의 사람이 있다면 2명은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 수밖에 없으므로, 그 사람들까지 나를 좋아하도록 노력할 필요는 없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충분한 마음 수련을 통해서는 그것도 가능한 일이겠지만, 그 2명이 나를 직접적으로 평가하고 일을 같이 하는 상사라면 곤란한 상황이 될 것입니다. 여러 가지 의미에서 21세기에 대한민국에서 직장인으로 산다는 것은 힘들고 서글픈 일인 것 같습니다. 현재 괴로운 일들이 부디 잘 해결되시기를 기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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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태성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info.psy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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