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강록의 [마음속 우물 하나] (4)

[정신의학신문 : 사당 숲 정신과, 최강록 전문의] 

 

“아, 그때 그 점포에서 복권을 샀어야 했는데…… 거기서 1등 당첨자가 나왔다잖아.”
“엄마 때문에 공대 진학했더니 너무 힘들어. 나는 내 적성대로 의대를 갔어야 했어.”
“짬뽕으로 통일하자고 해서 시켰더니 너무 매워. 나는 짜장면을 시켰어야 했는데…….”

우리는 매 순간 후회를 거듭하며 살아간다. 울고 웃고 기쁘고 슬프고…… 하루에도 수많은 감정이 우리를 사로잡지만, 후회라는 감정 또한 만만치 않게 우리 마음을 억누른다. 

 

후회란 무엇일까?

한자로 후회는 ‘뒤 후(後)’ 자와 ‘뉘우칠 회(悔)’ 자가 합쳐진 말이다. ‘뒤에 가서 뉘우친다’, ‘나중에서야 잘못을 깨닫고 스스로 꾸짖는다’는 뜻이다. 과거에 잘못한 일이나 그릇된 판단을 두고두고 생각하면서 한탄하는 행위를 가리킨다. 인간은 잠시 뒤에 벌어질 일조차 알지 못하기에 순간마다 어떤 선택을 할지 고민하게 마련이다. 선택의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나중에 그 결과를 보면서 이전 선택이 바른 선택이었음을 확인하며 안도하기도 하고, 반대로 이전 선택이 잘못된 선택이었음을 확인하며 후회하기도 한다. 

 

인터넷에서 특정 지역 맛집을 검색할 때 주로 사용하는 문구가 ‘후회 없는 맛집 찾기’다. 하지만 실제로 가서 먹어 보면 후회하는 일이 참 많다. 홈쇼핑 채널을 들어가 보면 쇼핑호스트들이 숨이 넘어갈 듯 이렇게 외친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반드시 후회할 겁니다!” 그의 말을 믿고 제품을 구매했다 가는 후회할지도 모른다. 심지어 이혼 전문 변호사들이 내건 광고 문안에도 이런 표현이 등장한다. “후회 없는 이혼, 책임지고 성사시켜 드리겠습니다.”

후회 없는 인생을 사는 게 모든 사람의 꿈이지만, 누구도 그런 인생을 살 수는 없다. 

따라서 후회를 인간의 한계 또는 특징으로 받아들여야 하지만, 이 또한 쉽지가 않다. 

 

사진_픽셀

 

우리가 자주 경험하는 후회라는 감정의 정체는 무엇일까?

후회라는 감정은 ‘선택’의 문제에서 나타난다. 인간은 여러 개의 선택지가 있을 때 각각의 선택지에 따라 어떤 결과가 나올지를 머릿속으로 그려본다. 그에 따라 최종적으로 선택지를 결정한다. 선택이 자기의 몫이듯 결과도 자기의 몫이다. 다시 되돌리거나 누구를 원망할 수도 없다. 그런데도 자신이 선택한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할 때 이전의 다른 선택지를 선택했을 경우를 상상하며 후회에 빠지게 된다. 선택이 달랐더라면 결과도 달랐을 거라고 확신하지만, 그건 알 수 없는 일이다. 다른 선택의 결과가 지금의 현실보다 더 못할 수도 있다. 

‘그때 첫사랑과 결혼했더라면 훨씬 더 행복했을 텐데…….’
‘나 좋다면서 그토록 쫓아다니던 그 사람하고 결혼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현재의 결혼생활에 만족하지 못할 때, 지금의 배우자에 대한 실망과 불만이 가득 찼을 때, 이렇게 후회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가지 않은 길, 이루지 못한 꿈에 대한 막연한 동경일 수 있다. 다른 배우자나 부부와 비교하면서 결혼을 후회하기 시작하면 온전히 결혼생활에 충실하기 어렵다. 행복은 점점 더 멀어지고 파경은 점점 더 가까워진다. 

 

선행 자극과 후행 결과를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하는 작업을 통한 학습을 모델링에 기반한 조건화라고 한다. 현실의 결과가 모델링에 의해 조건화된 결과에 미치지 못할 때 나타나는 개체의 반응을 행동심리학에서는 후회라고 부른다. 인간이 끊임없이 후회하는 이유는 모델링에 의한 학습을 멈출 수 없기 때문이다. 실험용 쥐 수준의 포유류에서도 관찰된 바 있기는 하지만, 이 능력은 뇌의 전두엽을 사용하는 영장류만이 할 수 있는 고등한 작업이다. 따라서 후회하지 않고 살아가겠다는 것은 다른 선택지 따위는 전혀 고려하지 않겠다는 것과 같은 말이며, 영장류로서 고등한 기능 자체를 포기하고 살겠다는 선언이나 마찬가지다. 

아무리 후회해도 과거에 했던 선택을 바꿀 수 없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면 우리는 허무감과 무기력감에 사로잡힐 수 있다. 인간은 부정적인 감정에 빠져 있을 때 그것을 통제하지 못하면 만성적인 슬픔, 위화감, 죄책감, 수치심, 분노로 이어질 수 있으며, 우울증을 유발할 수도 있다. 더 큰 문제는 이로 인해 미래의 내 삶에 영향을 줄 수 있고, 이전에 했던 실수를 다시 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불안 수준이 높아질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후회에 이르는 과정 자체는 다양한 선택지에 대한 분석과 복기가 이루어진다는 측면에서 보면 긍정적이지만, 같은 후회를 계속 떠올리며 반추하게 되면 과거를 부정하거나 현실을 회피하려는 경향을 띠게 되어 부정적 감정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지나친 후회로 심리적 불안을 느끼거나 우울증을 겪을 경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와의 상담을 통해 적극적으로 치료를 받아야 한다. 부정적 감정에 대한 과도한 몰입은 원치 않는 질병을 부르기 때문이다. 

 

호스피스 전문의인 일본인 오츠 슈이치는 1,000명이 넘는 말기 환자들과의 이야기와 죽음을 토대로 『죽을 때 후회하는 스물다섯 가지』라는 베스트셀러를 펴냈다.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스물다섯 가지 후회 목록 중 상위에 있는 열 가지만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첫 번째 후회, 사랑하는 사람에게 고맙다는 말을 많이 했더라면
두 번째 후회,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했더라면
세 번째 후회, 조금만 더 겸손했더라면
네 번째 후회, 친절을 베풀었더라면
다섯 번째 후회, 나쁜 짓을 하지 않았더라면
여섯 번째 후회, 꿈을 꾸고 그 꿈을 이루려고 노력했더라면
일곱 번째 후회, 감정에 휘둘리지 않았더라면
여덟 번째 후회,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났더라면
아홉 번째 후회, 기억에 남는 연애를 했더라면
열 번째 후회, 죽도록 일만 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어떤가? 이 중 현재 내가 후회하고 있는 일도 있는가? 

 

적절한 후회는 미래에 대한 통찰력을 제공하고, 의사 결정 능력을 향상하는 데 도움을 줄 수도 있다. 고등한 사고 체계를 가진 영장류로서 후회는 당연히 따라오는 감정 중 하나이고, 과거에 잘못된 결정을 내린 것이 부끄러운 일만은 아니다.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 지나간 일을 지나치게 후회하고 반추하며 몰입해봐야 지금 여기 있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가벼운 물통이라도 오랫동안 들고 있으면 팔이 저린다. 후회도 이와 똑같다. 과거에 얽매여 갈수록 조여오는 고통에서 벗어나야 한다. 실패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후회에 휩쓸리면 안 된다. 그것을 교훈 삼아 다음에 그런 일이 없게끔 반성하고 다짐하는 선에서 끝내야 한다. 지나친 후회는 자학이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제일 빠를 때라는 속담은 진리다. 과거를 후회할 시간이 있으면 지금 후회할 일을 만들지 않는 게 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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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당숲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한양대 의과대학 학사, 석사
(전)의료법인 삼정의료재단 삼정병원 대표원장
한양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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