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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과 공포 - 사랑하면 기뻐야 하는데, 왜 이렇게 무서운 거지?

기사승인 2020.10.28  07: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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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미림의 <사랑 때문에 아픈가요?> (3)

[정신의학신문 : 민트 정신과, 윤미림 전문의] 

 

은근히 그 사람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냥 그랬는데, 만날수록 사람이 진국이다.
배려심 깊고 친절하고 자상하다.
무엇보다 나를 참 아껴주고 잘 챙긴다.
이 사람과 만나면 내가 귀한 존재가 된 것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알 수 없는 두려움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 사람이 나를 싫어하게 되면 어떻게 할까,
이 사람이 그만 만나자고 하면 어쩌나,
이 사람이 가면을 쓴 채 나를 만나고 있었던 건 아닐까,
떨쳐 버리려 해도 자꾸만 이런 두려움이 엄습한다.
가족 여행이든 출장이든 잠시라도 나와 떨어져 있는 것은 너무 불안하다.
장거리 커플들은 대체 어떻게 연애를 하는 것일까?

만약 이 사람을 철석같이 믿고 결혼했다가
매일 손찌검과 언어폭력에 시달리는 처지가 되면,
툭하면 고주망태가 되어 새벽에 귀가하거나 외박을 일삼으면,
온갖 핑곗거리를 만들어 바람피우는 사람이란 게 드러나면,
그때는 어떡해야 하나, 공포감이 밀려온다.
내가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

끝내 그 사람과 헤어졌다.
마음이 덜컹 내려앉는다. 결국은 또 혼자 남게 되었다.
이렇게 영원히 홀로 외로울 거 같아 너무나 무섭다.
좋은 사람을 다시 만날 수 없을 것만 같다…….
갑자기 죽을 것 같은 공포감이 엄습한다.

 

아무런 문제가 없는 연애를 하고 있으면서도, 사랑하는 사람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으면서도, 상대방을 좋아하고 사랑하면서도, 알 수 없는 두려움과 공포가 찾아올 때가 있다. 이 같은 두려움이 일상이 되면 한창 연애의 매력과 달콤함에 빠져 있어야 할 때 괜한 감정 소모로 시간을 허비하게 된다. 추억을 쌓을 시간에 고통을 쌓고 있는 셈이다.

“오늘 정말 즐거웠어. 피곤할 테니까 우리 며칠 쉬고 주말에 만날까?”

나를 배려하고 존중하는 마음으로 상대방이 건넨 말을 이렇게 곡해해서 받아들인다.

‘뭐지? 며칠 보지 말자는 거야? 내게 싫증이 난 건가? 혹시 바람난 거 아냐?’

뭔가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날 것 같다는 막연한 두려움을 품은 채 연인을 만나다 보면 무슨 일을 해도, 어떤 음식을 먹어도, 어디를 가더라도 즐겁지가 않다. 자꾸 상대의 눈치를 살피게 된다. 쭈뼛거리게 된다. 상대방도 곧 낌새를 알아차린다. 서로의 관계가 서먹해진다.

 

사진_픽셀

 

이처럼 사랑하면 할수록 불안해지고 심지어 공포를 느끼게 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아주 심한 경우 공황발작을 일으키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이런 사람들은 저명한 인지 치료자 제프리 영의 인생의 덫 중 일명 ‘버림받음의 덫’에 걸려 고통받는 것이다.

버림받음의 덫에 걸린 사람은 스스로가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감정적으로 영원히 고립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진다. 이들은 버림을 받고 그것이 영원히 계속될 것이라 예상한다. 깊은 마음속에는 그것이 자신의 운명이라 느끼기도 한다.

대다수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과 잠시 떨어져 있다고 해서 크게 혼란스러워하지 않는다. 관계가 그 잠시의 이별을 넘어서 계속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버림받음의 덫에 걸렸다면 그런 안정감이 없다. 그래서 며칠 동안도 떨어져 있는 것을 견디기 힘들어한다. 상대에게 과도하게 매달리게 되고 자신의 모든 삶을 상대를 지키는 데 투자한다. 아울러 상대의 사소한 말이나 행동에 지나치게 반응하고, 그것을 헤어지기 원하는 증거로 해석하여 부적절하게 화를 내거나 걱정을 한다. 질투와 소유욕도 심하다. 이러한 것들로 인해 자신이 상처 받는 것이 두려워 애초에 친밀감을 피하기까지 한다. 때로 상대가 자신을 홀로 남겨 놓은 것에 대한 벌로 일부러 멀어지거나 헤어지기도 한다.

 

이러한 버림받음의 덫은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일까?

알려진 바에 의하면 일부는 타고난 분리불안 경향에서 비롯되고, 나머지 일부는 초기 아동기 시절의 환경에서 비롯된 것이다. 애착 이론의 창시자 보울비는 그의 저서 『분리』에서 어머니와 일시적으로 분리된 신생아와 아동에서 공통으로 나타나는 분리의 세 단계를 밝혔다. 불안, 절망, 이탈이다.

어머니와 떨어진 아이들은 처음에는 불안해하고 끊임없이 어머니를 찾는다. 그러다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어머니가 오지 않으면 모든 것을 포기한 채 절망에 빠진다. 무감각해지고 위축된다. 충분한 시간이 또 지나면 다시 애착 관계를 형성한다. 그 후 어머니가 돌아오면 이탈의 단계로 들어선다. 어머니에게 냉정해져 접근하지 않고 무시하기도 한다.

이러한 분리의 세 단계는 인간뿐 아니라 동물의 새끼들에서도 같은 양상을 보인다. 이 같은 불안, 절망, 이탈은 보편적인 반응이지만, 매우 과하게 반응하는 경향을 타고난 사람들은 더욱 쉽게 버림받음의 덫이 발생한다.

한편 환경이 불안정하면 타고난 성향과는 상관없이 덫이 생길 수 있다. 어릴 때 부모가 죽거나 집을 나가서, 다른 사람에게 길러졌거나 기관에 보내진 경우가 그 예이다. 때론 어머니가 있어도, 그 어머니가 우울하고 화가 나 있거나 취해있어서 매우 불안정한 경우다. 그밖에 부모가 자주 싸우거나 이혼한 경우, 동생이 태어나 관심을 받지 못한 경우, 가족이 과도하게 밀착하거나, 과잉보호를 받아 자율성을 키우지 못한 경우가 있다.

 

버림받음의 덫에 걸린 사람들은 종종 자신을 버릴 가능성을 가진 사람에게 마음이 끌린다. 즉 안전하지 않지만, 부분적으로만 안정성을 주는 사람이다. 그것이 자신에게 고통을 주는 자기 파괴적 관계일지라도, 어릴 때의 경험과 비슷한 관계를 재현하려는 무의식적인 동기에 의해 자신도 모르게 끌리는 것이다. 자신을 위하지 않는 사람을 선택하여 어릴 적 버림받음을 재현하는 것이다. 유부남, 유부녀를 만나게 된다거나, 바람둥이여서 장기적인 약속을 하지 않는 사람, 일 중독이어서 상대와의 관계를 회피하는 사람, 술이나 약물을 남용하고 감정이 불안정한 사람, 피터 팬처럼 책임과 헌신은 원치 않는 사람들에게 끌린다면 버림받음의 덫이 시작될 위험 신호들로 봐야 한다.

 

버림받음의 덫은 평생 반복되는 자기 파괴적인 패턴이다. 불안정한 어린 시절을 반복하는 것만큼 위험천만한 일은 없다. 이러한 패턴을 알아차렸다 해도 우리는 주로 그 패턴에 굴복하거나 회피 또는 반격함으로써 효과적이지 못한 방법으로 대응한다. 굴복하는 경우,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도 버림받는 상황으로 끊임없이 왜곡함으로써 자신의 덫을 강화한다. 버림받음의 덫이 자극되면 불안, 분노, 수치심 같은 부정적인 감정이 생기므로 이런 고통으로부터 도망치는 회피의 방법을 쓰기도 한다.

“뭐하러 그런 일을 유심히 생각해야 하나요? 기분만 더 나빠지는데?”

이런 이야기를 주로 하게 된다. 하지만 이렇게 회피하게 되면 자신의 감정적 활기를 잃는 대가를 치르게 된다. 진정한 고통도, 즐거움도 느끼지 못하는 마비 상태가 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반격하는 방법을 쓰기도 한다. 과도히 노력하면서 과거의 버림받음의 상황의 정반대 상황을 만들려고 하는 것이다.

이런 부적응적인 해결법에서 벗어나, 버림받음의 두려움과 공포를 떨쳐 버리고 행복한 연인관계로 돌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좋을까?

 

제프리 영의 도식(schema)치료에서는 아래와 같은 방법을 제시한다.

1. 당신의 어릴 적 버림받음의 경험을 이해한다.
2. 어린 시절의 그 경험을 재현시키는 순간에 일어나는 버림받음의 느낌을 관찰한다.
3. 과거 관계를 고찰하고 반복되는 패턴을 파악한다.
4. 약속을 지키지 않고 불안정하며 양가적인 사람과의 연애는 피한다.
5. 안정되고 약속을 지키는 배우자를 찾았을 때는 상대방을 믿는다.
6. 매달리거나 질투하고, 건강한 관계의 정상적 이별에 과잉 반응하지 않도록 한다.


각각이 쉬운 것은 아니다.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함께 고찰하며 정리해 갈 수 있을 것이다. 4, 5, 6번은 난도가 더 높다. 실제 그 상황에 내가 처해있을 때, 제삼자의 눈에는 쉽게 보이는 것이 나의 눈에는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가진 부적응적인 패턴이 편안하여 자꾸 그쪽으로 가려고 스스로 눈을 가리기도 하고, 합리화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과도한 두려움과 불안, 공황발작이 오기도 한다. 일상생활에 지장이 있을 정도의 수준이라면 진료를 통해 약물치료를 받는 것이 도움이 된다.

 

독일 베를린에서 정신병원을 운영하는 의사이자 유럽에서 최초로 새로운 공황 치료법을 개발해낸 클라우스 베른하르트는 하루도 빠짐없이 환자들에게 이런 충고를 해준다고 한다.

“당신은 꿈에 그리는 삶을 살기 위해서 건강해져야 하는 것이 아니다. 마침내 건강해질 수 있도록, 꿈에 그리는 삶을 살기 시작해야 한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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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미림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info.psy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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