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켜보고, 기다리고, 들어주기

정신의학신문 | 이호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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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들은 늘 바쁩니다. 해야 할 일들은 왜 그리도 많을까요. 집안 청소와 정리부터 빨래와 음식 준비, 설거지까지 하루 종일 종종걸음을 해도 늘 시간이 부족합니다. 그런데 직장에서 녹초가 되어 돌아와서 쌓아 둔 집안일까지 처리하기에 열심인 순간에도 마음 한 켠에는 아이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 주지 못한 데 대한, 재미있게 놀아 주지 못한 데 대한 미안함이 자리합니다. 

그러니 바쁜 시간을 쪼개 이왕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이라면 좀 더 아이에게 집중하며 교감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요, 때로 우리 부모님들은 너무 바쁜 나머지, 자녀들의 소통 신호를 자주 놓치곤 합니다.

자녀들이 부모님과 함께 자신의 관심사를 나누거나 놀이하고 싶다는 소통의 신호를 보내오지만, 아버지의 시선은 휴대전화 화면에, 어머니의 손과 발은 주방에 머물러 있을 때, 자녀들은 부모님의 뒤통수를 보며 이야기하거나 하려고 했던 말을 삼키고 입을 다물게 됩니다.

물론 매번 자녀들의 상호작용 시도에 반응해 주거나 소통 욕구를 채워 줄 수는 없습니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부모와의 상호작용에 대한 욕구가 번번이 좌절되거나 거부당한다는 느낌을 받지 않도록 아이의 상호작용 욕구나 소통 시도에 적절히 반응해 주고, 함께 양질의 시간을 보내는 것은 자녀의 정상적인 발달에 있어서 무척이나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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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와의 건강한 상호작용을 위해 부모님들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바로 하던 일을 멈추고 아이와 얼굴을 마주 보며 시선을 맞추는 일입니다. 이렇게 아이와 눈을 맞출 때 우리는 함께 교감하면서 아이가 우리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나 아이의 관심사에 대해 알 수 있게 됩니다.

그중에서도 부엉이(OWL) 원칙은 부모와 자녀 간에 의미 있게 상호작용하면서도 자녀의 발달을 도울 수 있는 중요한 전략이니, 기억하셨다가 적용해 보신다면 좋겠습니다.

여기서 OWL이란, 지켜보기(Observe), 기다리기(Wait), 들어주기(Listen)의 영어 단어 머리글자를 합친 것입니다. OWL의 철자가 ‘부엉이’라는 의미도 있어 재미있게 ‘부엉이 원칙’이라고 말하기도 하는데요, 첫 번째 원칙은 ‘지켜보기’입니다. 많은 부모님들이 자녀들과 재미있게 놀아 줘야한다는 의욕이 앞서다 보니 의외로 아이가 놀이하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지 못하고 부모님께서 먼저 놀이를 주도하거나 부모님의 관심사로 상호작용을 시도하는데요, 일단은 자녀를 유심히 지켜보면서 아이의 행동과 몸짓, 표정 등을 관찰하다 보면 아이가 하려는 말이나 관심사에 대한 정보를 알 수 있게 됩니다.

이어서 두 번째 원칙은 ‘기다리기’입니다. 여기서 기다린다는 것은 자녀와의 상호작용 시 아이에게 반응할 시간을 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이를 기다려 줄 때는 부모님께서 말하는 것을 멈추고 아이 쪽으로 가까이 가서 기대에 찬 표정으로 바라봐 주세요. 아이의 반응을 기다리기만 하는 것이 답답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충분히 기다려 준다면 아이는 어떤 메시지든 무슨 방법으로든 자신의 관심사나 의사를 표현해 올 겁니다. 

마지막 원칙은 ‘들어주기’입니다. 들어주기는 말 그대로 아이가 내는 소리나 말에 집중해서 듣는 것을 뜻합니다. 아직 말문이 제대로 트이지 않은 어린아이의 경우,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도통 알 수 없을 때도 많은데요, 그렇더라도 급하게 아이의 말을 자르거나 다그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럴 때는 여러 상황적 단서를 참고해서 아이가 하려는 말을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때때로 아이에게 필요한 질문도 하면서 말이죠. 이렇게 부모님께서 아이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에서 아이는 자기의 이야기나 생각이 중요하게 받아들여지는 긍정적인 경험을 하게 되고, 이를 통해 자신이 소중한 존재라는 인식까지 키워 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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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우리 아이가 만약 평소 의사소통에 적극적이지 않거나 자기만의 세계에 머물러 있는 시간이 긴 아이라면, 약간의 도움으로 아이에게 상호작용을 시작할 기회를 만들어 주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예를 들면, 식사 시간이나 간식을 먹는 와중에 처음부터 음식을 너무 양껏 주지 말고 조금만 주고 기다려 보는 겁니다. 그리고 아이가 음식을 다 먹었다고 해서 부모님께서 알아서 음식을 더 채워 주거나 혹시 부족한지 물어볼 것이 아니라, 아이가 먼저 음식을 더 달라고 요청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죠. 이렇게 할 때 아이는 점차 자신의 필요를 알아차리고, 그에 따라 누군가에게 요청하는 방법을 배워 나가게 됩니다.

또는 아이가 좋아하는 놀이, 이를테면 노래를 틀어 놓고 함께 춤을 추다가 의도적으로 잠깐 노래를 끄거나 비행기 태워 주기를 하다가 중간에 멈추는 등 한 번씩 놀이를 중단하고 기다릴 때, 아이는 다시 재미있게 놀이하자고 제안해 올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길을 걷다가 신발이 벗겨지거나 음식을 옷에 흘렸을 때처럼 뭔가를 처리해야 하는 상황이 생겼을 때 부모님이 나서서 바로 해결해 주기보다 잠시 기다려 주는 것이, 아이에게 발화 및 상호작용을 시작할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그 후, 아이가 무언가 메시지를 보내올 때 부모님께서 즉시 관심 있게 반응해 주는 것이죠.     

 

언제나 아이에게만 집중하면서 항상 아이의 마음을 잘 알아주는 부모일 수는 없습니다. 또 아이의 곁에서 내내 밀착 케어를 하며 아이가 조금이라도 불편해하는 것은 없는지, 필요한 것은 없는지 살피며 욕구를 즉시 만족시켜 줄 필요도 없습니다.

하지만 모든 소통의 기본이 그러하듯, 아이와의 상호작용에서도 역시 적절한 힘 조절이 중요합니다. 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거리에서 부모가 아이의 부름에 웃으며 응답해 주고, 내미는 손을 기꺼이 잡아 준다면, 아이의 언어 능력과 함께 세상과 소통하는 능력 역시 점차 성장해 나갈 것입니다.

 

서대문봄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이호선 원장

이호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서대문봄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학사, 석사
한양대병원 외래교수, 한양대구리병원 임상강사
(전)성안드레아병원 진료과장, 구리시 치매안심센터 자문의, 저서 <가족의 심리학>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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