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_픽사베이

 

김포란 도시는 참으로 넓습니다. 제가 강화에서 태어나 인천에 살면서 강화에 있는 대학교를 다니면서 그 중간에 있는 김포를 수도 없이 지나 다녔습니다. 지금도 김포에 있는 병원에서 일을 하고 있지만, 지도로 보면 아직 김포라는 땅덩이 중에 발이 닿지 않은 곳이 많은 걸 알게 됩니다.

 

그런 도농 복합도시 김포의 환자군은 다양합니다. 신도시 아파트 단지에는 젊은 엄마 아빠와 소아 환자가 많고, 농촌 지역에는 한평생 농사밖에 모르고 사셨던 어르신들이 많습니다. 한편으론 소규모 공장이 모여 있는 공업지대도 있어서 손을 다쳐 오시는 분들이 특히 많습니다.

 

제가 일하고 있는 병원 정형외과엔 실력 좋은 미세접합 수술 전문 과장님이 계십니다. 그래서 이 근방에서 손을 다친 환자가 저희 응급실로 많이 이송되어 오는 편이죠. 어떤 날은 정형외과 과장님이 밤 10시까지 수술을 다 마치고 지친 얼굴로 응급실에 인사하며 지나가시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말이죠.

 

“(손 다친 환자가) 이젠 또 없겠죠? 조용한 밤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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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데 손을 다쳐 오시는 분들이 주로 공장에서 작업하는 분들이다 보니, 피부만 조금 다치는 경우가 별로 없습니다. 프레스에 눌려서, 롤러에 갈려서, 벨트에 끼어서 등의 이유로 크게 다쳐 오시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수술이 필요한 경우가 많고 수술 후 재활 기간도 긴 경우가 많습니다. 그나마 수술 후 손을 온전히 다 쓸 수 있으면 다행입니다. 아무리 미세접합 수술이 발달했다 한들 도저히 손가락을 살릴 수 없을 정도로 다친 경우엔 안타깝지만 손가락 절단 수술을 결정하게 됩니다.

 

이런 경우에 수술 자체는 그리 큰 문제가 아닌지도 모릅니다. 무슨 소리냐고요? 이 분들은 그동안 작은 공장을 운영하며 또는 공장 운영의 꿈을 가지고 준비하며 한평생 두 손을 자산으로 일해 오던 분들입니다. 그렇다보니 당장 밥벌이할 수단이 통째로 없어져 버리는 문제가 더 크기 때문이죠. 그럴 땐 본인이 아픈 것보다,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앞으로 가족의 생활을 어찌 감당해야 할지에 대해 더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나마 회사가 커서 산재 보험으로 치료비를 지불해 주고 실업수당도 챙겨 주는 경우라면 상황이 좀 나은 편입니다. 직접 1인 기업을 운영 중이어서 딱히 억울함을 호소할 곳 없는 소사장님이나, 당장 일을 하지 못하면 자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외국인 노동자의 경우에는 사정이 참 딱하다 싶습니다. 의료진 입장에서는 최대한 손의 기능이 가능하도록 치료해 주는 것 말고 더 도울 수 있는 게 없으니 그저 안타까울 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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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실 의료진들도 생업을 응급실에서 유지하고 있을 뿐이지 이런 사정은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응급실에 근무 중인 한 응급구조사가 근무를 마치고 병원 식구들과 축구를 하다 넘어졌습니다. 그런데 땅을 짚고 넘어진 뒤 손에 통증이 지속되어 X-ray를 찍어 봤더니, 손목과 팔꿈치 두 군데에 골절이 확인되었습니다.

 

손목만 골절되었다면 짧은 부목을 대고 주위 도움 받아 가며 여차저차 일을 해 나갈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팔꿈치까지 골절이 되었으니 아무리 응급실에서 그 같은 환자들을 많이 치료해봤다 한들 뭐 별 수 있겠습니까? 다른 환자분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 친구도 팔 전체를 칭칭 감고 당분간 일을 하지 못하게 되었죠.

 

다행히 병원에서 배려해 휴가로 처리되긴 했지만, 응급실 의료진 입장에서는 한 명의 인력이 아쉬운 상황이라 큰 사고로 느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도 이 정도는 평생 일을 못해서 생업에 문제가 생기는 앞의 경우와는 비교하기 힘들겠죠.

 

생업과는 관련이 없지만 생명과 관련이 있는 골절이 있습니다. 연세 많으신 노인 분들이 골다공증이 심해지면서 뼈가 약해져 발생하는 대퇴 경부 골절입니다. 어떻게 다치셨냐고 하면 침대에서 떨어졌다, 길에서 넘어졌다 말씀하시는 분도 있지만, 그냥 주저앉았는데 일어날 수가 없었다는 분도 계십니다. 그 정도로 노인 분들께는 쉽게, 흔하게 발생하는 골절입니다.

 

이 또한 문제는 뼈가 부러진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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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 여러 질환이 동반된 분들이 많다 보니 전신마취를 견딜 수 있을지 걱정될 정도로 심폐기능이 좋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또 여차저차 수술을 마치고 재활 과정에 들어간다 하더라도 평소 기능처럼 회복되기 어려운 경우도 많습니다. 수술하고 나서도 그냥 누워 지내면서 여생을 보내시게 되는 안타까운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죠. 또한 수술 전후 과정에서도 장기간 누워 지내기 때문에 욕창, 폐렴, 심근경색, 뇌경색, 폐색전 등의 여러 질환들이 가뜩이나 위태로운 할머니 할아버지의 생명을 위협하게 됩니다.

 

“어르신은 단순한 골절이 문제가 아니라 전신적인 위험한 상황이 올 수 있습니다”

 

보호자 분들 모두 모이시도록 한 뒤 이런 얘기를 할 때면 뭐랄까, 의사로서의 한계를 느낀다고 할까요? 무력감이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 지금의 현실을 인정하고 그 안에서 다른 행복을 찾아가는 것, 그게 바로 강인한 사람이 만들어 갈 수 있는 이야기 아닐까요? 말로 표현하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이야기이지만 긴 재활 치료를 통해 행복의 길을 찾아간 분의 이야기를 다음으로 들려드리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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