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조성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육아 초보와 고수의 만남

 

지난 가을 집 바로 앞 공원에서 LED 조명으로 만든 장미꽃 축제가 열렸습니다. 갓 백일을 넘긴 딸이 무얼 알기나 할까 하는 생각에 망설였지만, 하나라도 더 보여주고 싶은 부모의 마음으로 딸을 데리고 공원으로 향했습니다. 저녁 시간인데다 약간 이른 추위가 찾아온 터라 딸아이에게 두꺼운 잠바를 입힌 뒤 담요로 둘러싸고 아빠의 코트로 다시 한 번 둘러싸고 외출했습니다.

가까이서 조명이 예쁜 장미를 보여줬다는 뿌듯함에 집으로 향하는데 아주머니 한 분이 제 코트 안으로 손을 넣고는 걱정되는 표정으로 ‘아기 춥겠다. 이 위에 뭘 더 입혀야겠는데?’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육아 초보인 저는 연륜 넘치는 육아 고수 아주머니의 한 마디에 불안해졌습니다. 뿌듯함과 좋은 부모라는 자부심은 한 순간에 미숙함과 무지함의 자책으로 바뀌었습니다. 이후에도 비슷한 경험들은 계속되었습니다. 아이를 데리고 마트에 가거나 식당에 갔을 때 딸이 잠시 찌푸리는 표정을 짓기라도 하면, 비슷한 일들이 이어졌습니다. 처음 보는 사람들이 유모차 각도나 젖병을 물리는 모습에 대한 조언, 아이를 안아주는 팔 모양에 대한 이야기, 심지어 부모의 옷 색깔에 대한 조언도 해주었고 내용 하나 하나가 그럴 듯한 내용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지나서 생각해보면, 당시 저희 부부는 외출 전 기온을 체크하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재원들(딸의 방한복, 신발, 모자 등)에 대해 충분히 검토하고 논의 후 딸아이의 외출 복장에 대해 나름 최선의 선택을 했었습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시점이 한겨울임에도 그 가을날 저녁보다 딸아이에게 두껍게 옷을 입힌 적이 없고, 적잖이 외출했음에도 불구하고 감기 한 번 걸리지 않았습니다.

 

사진_픽사베이

 

쏟아지는 육아 정보와 조언들

 

육아에 대한 정보나 조언들이 넘쳐납니다. 용품 하나를 사려고 인터넷을 검색하면 감당하기 어려운 양의 정보들이 쏟아집니다. 육아 선배나 동지들의 SNS를 둘러보면, 예쁘게 좋은 물건들로 완벽한 육아를 하는 사람들이 넘쳐나 보입니다. 나는 내 아이 하나 먹이고 입히고 재우고 달래는 일만 해도 하루가 모자라는데 말입니다. 아이들의 건강정보나 의료 관련 이야기들도 전문가 못지않은 식견들을 보이시는 분들이 많고 실제로 전문가들이 본인 이야기를 기술해 놓은 곳들도 있습니다. 이런 정보들을 접하다보면 나만 힘든 게 아니라는 사실에 위로받기도 하지만, 반대로 적지 않은 경우에 육아에 열심히 매진하고 있는 내가 초라해지고 오히려 방대한 양의 정보들이 ‘결정장애’를 일으켜 간단한 물건 하나 사는데 진이 빠지고 시간도 오래 걸립니다. 애를 잘 키우려고 시작한 정보검색, 주변에 조언 구하기 등의 행동들이 본래의 목적을 넘어서 우리 발목을 잡는 일이 생기는 겁니다.

열심히 육아를 하려고 보는 TV 프로그램을 통해 공부하다가 스스로의 부족함에 속상해하는 일이 생깁니다. 아이를 할아버지∙할머니에게 보여드리려고 좋은 마음으로 만났다가 뭐는 해줬냐는 질문에, 뭐는 어떻게 해줘야 한다는 조언 속에 부담을 갖기도 합니다. 친구들을 만나 육아 얘기를 나누며 위로받으려다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듣다보면, 위로와 정보 공유를 넘어서 ‘나도 우리 아이에게 뭔가를 더 해줘야 할 것 같은 조바심’이 생겨나기도 합니다.

 

사진_픽셀

 

우리 아이 육아는 내가 고수

 

지금도 우리는 가족들을 위해 여러 가지 ‘우리의 고민’을 합니다. 추운 날 공원에서 만난 아주머니가 육아 경험이 많으시더라도, SNS에 따라잡기도 버거운 정보들을 올리는 육아 고수나 전문가들이 완벽한 육아를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아도 그건 그들의 경험이고 그들의 아이들에게 일어났던 일입니다. ‘내 아이와 나’의 경험이 아닙니다. 물론 선배들이나 전문가들의 조언은 중요합니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를 때 방향을 잡아주고 우리에게 소소한 위로와 안식을 제공해주며, 사람들이 제공하는 정보와 조언들은 깊이의 문제는 따로 생각하더라도 우리 가족을 위해 제공해준 정보임이 확실합니다. 하지만, 우리 스스로가 중심을 잡지 못하면 내게 필요한 정보를 원하는 만큼 걸러내서 얻지 못하고 넘쳐 나는 정보와 조언의 수렁에 빠져 잘하고 있는 스스로를 자책하기 쉽습니다. 충분히 행복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빈곤함 속에 스스로를 가난하게 만들기 쉽습니다.

오늘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아이’를 가장 많이 사랑하고 생각하고 걱정하는 건 ‘나’와 ‘우리 부부’입니다. 행복해도 됨에도 불구하고 자책하고 미안해하고 스스로를, 아이를 힘들게 하고 빈곤의 울타리에 가두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아이의 구석구석을 잘 알고 아이와 함께 진짜 삶을 경험하고 있는 내가 진정한 ‘우리 아이의 육아 고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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