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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ctor's Mail] 남자와 마주치는 것이 두려워요

기사승인 2018.09.02  08: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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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의학신문 : 정신과의사협동조합 이준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Q) 안녕하세요. 최근 올라온 기사들을 보고 저와 비슷한 감정을 가지신 분들의 이야기를 보면서 용기를 내보게 되었어요. 초등학교 2학년 때였어요, 학교를 나오면 바로 앞에 슈퍼가 하나 있었는데, 그날따라 어떤 할아버지가 제 앞에 오시더니 사탕을 주시겠대요. 어린 맘에 좋아서 따라갔죠. 그 할아버진 가게 주인아주머니 남편 되시는 분이셨어요. 두 분이서 같이 슈퍼를 보셨거든요. 사탕을 받아 들고서 좋아하고 있었는데, 화장실로 데리고 들어가신 순간까지 저는 저항도 못하고 같이 들어갔어요. 바지를 내리셨고 자신의 은밀한 부위를 들이밀며 만져보겠냐며 얘기를 하시더라고요. 너무 놀란 나머지 어떻게 집에 왔는지조차 기억은 나질 않아요.

충격이 커서 엄마한테 얘기를 하면서도 울음조차 낼 수 없었어요. 게다가 아버지도 엄마를 때리기도 했고 그런 가정폭력에 시달렸던 저로선 죽는 게 낫다는 생각만 늘 하면서 불안함과 분노에 휩싸여 살아왔던 거 같아요. 그게 지금 성인이 된 저에게 직장생활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쳐서 이성이든 동성이든 대화도 힘들고 말을 걸기도 전엔 손이 떨리기까지 했던 적도 있었고요. 거리를 지나도 남자분들이 멀리서 오기만 해도 무서워서 피하고 사람 많은 거리도 싫고 쇼핑도 여유롭게 못하고 필요한 것만 사서 얼른 오고 나서야 안도가 되었어요. 집에서 아예 나가는 것도 귀찮아지고 휴일엔 집에서 드라마 보고 또 자고 또 그러다 일하러 가는 등 생활 패턴도 은둔형이 되어버렸어요.

지금도 힘들어요. 요샌 내가 즐거웠던 때가 언제인지도 모르겠고 손목 보면 긋고 싶다는 생각도 했었어요. 너무 괴롭고 더 이상 버티고 살아갈 힘도 없어요. 그보다 가족에게도 외면당하는 것 같아 더 힘들어요. 또 직장을 오래 다녀본 적이 없어요. 너무 불안해서요. 아무도 못 믿겠고 정말 친하거나 가족들이 있을 때 아니면 말도 안 하게 되고 주눅 들어 있고 동갑내기 친구들도 못 사귀고 그냥 모든 게 다 두려워요. 최근 직장에 다시 일을 시작하게 되는데 거기서도 적응 못하고 이상한 애로 취급될까봐, 혼자가 될까봐 두려워요. 그게 너무 숨 막혀서 일하다 말고 너무 어지럽고 두통이 심하게 오는 탓에 조퇴한 적도 있었고요. 정말 이렇게 밖에 안 되는 걸까요. 저도 편한 직장 생활이 되기를 그 누구보다 바라고 있어요. 억지로 웃음 짓는 거 말고 정말 마음 편히 웃고 싶어요.

 

사진_픽셀

 

A) 안녕하세요. 문의하신 글을 읽으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많이 들었습니다. 남겨주신 글이 글쓴이 분 삶의 일부분밖에 되지 않을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힘겨움이 많이 느껴졌습니다. 제가 글로써 느낀 힘겨움은 글쓴이 분이 실제로 느낀 힘겨움에 비해서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겠지요. 그래서 더더욱 안타까운 마음이 많이 들었습니다. 이 글이 미약하게나마 도움이 되셨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답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문의하신 글을 읽어보았을 때, 어렸을 때 힘든 경험들이 많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성추행, 가정폭력 등을 겪으셨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어린 나이에 견뎌내기 쉽지 않았을 거라 생각합니다. 지금이야 ‘지난 일이니까’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내 마음속 깊은 곳'에는 절대 ‘그냥 지나간 일’로 남아있지는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어린아이이기에 받았을 상처와 충격은 '지금 현재 가늠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다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지금 현재 내가 생각하는 그 이상으로 그 상처는 크게 내 마음속 깊이 자리 잡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어렸을 때의 나'가 받은 상처는 '지금의 나'가 보듬어주고 안아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노력을 하지 않으시면, 계속해서 '그 상처'가 나를 괴롭히게 만듭니다. 현재 괴롭고 두려운 삶이 이러한 연유에 기인한다고 생각합니다. 

 

'거리를 지나도 남자분들이 멀리서 오기만 해도 무서워서 피하고, 사람 많은 거리도 싫고, 쇼핑도 여유롭게 못하고, 필요한 것만 사서 얼른 오고 나서야 안도가 되고'라고 적어주셨습니다. 글쓴이 분의 현재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현재 시점에서 질문을 한 번 드려보겠습니다. “거리를 지나가면서 만나는 남자분들이 성추행범일까요? 아닐까요?” “쇼핑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폭행범일까요? 아닐까요?” 가능성이 제로는 아니겠지만, 일반적으로는 아닐 가능성이 훨씬 높겠지요.

하지만 글쓴이 분 마음에는 성추행범, 폭행범으로 느껴지는 마음이 아직 남아있습니다. 과거에 그러한 일들을 겪었고, 그것이 상처가 되어 ‘내 마음속 깊이’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내 몸은 현재에 살고 있지만, 마음은 아직 과거에 살고 있는 것이지요. 그렇기에 과거에 받았던 상처는 '지금의 나'가 해결해주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도 못 믿겠고 정말 친하거나 가족들이 있을 때 아니면 말도 안 하게 되고 주눅 들어 있고 동갑내기 친구들도 못 사귀고 그냥 모든 게 다 두려워요.'라고 말씀하셨듯이 그 누구도 믿지 못하고 두려운 세상에서 늘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여기 내가 사는 세계는 '내가 생각하는 만큼 무서운 세계'가 실제로는 아닌데, '내 마음'은 계속 그렇게 인식이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 두 발이 '지금 여기'에 디디고 살고 있다면, 내 마음도 '지금 여기'에 디딜 수 있게 도와주어야 합니다.

‘저도 편한 직장생활이 되기를 바란다’고 하셨죠? ‘저도’라는 표현 안에는 다른 사람에 비해 불편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전제가 깔려있습니다. 그 말은 ‘지금 여기’ 일반적인 사람들이 받아들이고 있는 세상과 비교해서 글쓴이 분이 받아들이고 있는 세상이 부정 편향이 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그 부정 편향은 결국 과거에 기인하고 있습니다. 

 

사진_픽사베이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 필요한 정신치료 방법이 '자유 연상'입니다. '자유 연상'이란 떠오르는 대로 내 생각을 따라가 보는 겁니다. 생각을 하려 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일어난 내 생각을 따라가 보는 겁니다. 그러면 잊고 있었던 과거 경험들이 떠오르게 됩니다. 그에 따라 관련된 감정들도 뒤따라 옵니다. 그 감정을 다시 재경험하고 보듬어주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물론 재경험하는 과정이 힘들고 불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물리적 대상이 없이 보듬어주는 게 불가능하듯이, 예전에 겪었던 내 마음을 다시 '있는 그대로' 재경험할 수 없다면, 그 상처도 보듬어줄 수가 없습니다. '자유 연상' 과정에서 분명 힘듦이 수반되겠지만, 그 힘듦을 넘고 나면 '내 마음'이 더 이상 과거의 상처에 머물지 않고 '지금 여기'에 살 수 있게 됩니다. 그러면 글쓴이 분이 원하듯이 좀 더 편하고 불안하지 않은 삶을 살 수 있게 됩니다.

 

아마도 말씀드린 방법이 혼자서는 쉽지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떠올리기조차 싫은 경험일 테니까요. 내가 견딜 수 없을 만큼 힘든데도 그 과정을 하는 것도 사실 부작용이 생길 수 있습니다. 적절한 속도와 정도를 조절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이 모든 것을 글쓴이 분 혼자서 감당하기는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자유 연상 과정을 통해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신다면 '정신치료(psychotherapy)'를 전문적으로 하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선생님을 찾아가 보신다면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혼자서 겪어내기에 어려운 일들을 충분히 도와드릴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psychotherapy라는 치료 방법은 위에 말씀드린 '자유 연상'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조금이라도 더 도움이 되셨으면 하는 바람으로, 저와 psychotherapy를 진행하였던 내담자의 말로 마무리를 하고자 합니다.

"과거에는 누가 내 마음 좀 알아줬으면 좋겠는데, 누가 내 편이 되어줬으면 좋겠는데 라는 생각이 많았어요. 그런데 이 과정(psychotherapy)을 거치고 나니, 더 이상 누가 내 편이 되어줬으면 하는 생각이 들지가 않습니다. 적어도 나 하나는 내 편이 되어준 거 같습니다. 안전한 동굴 속에 들어간 느낌이네요."

짧은 글로 제 뜻이 오롯이 전달되지 못하였을까 봐 걱정이 앞섭니다. 여유를 내셔서 위에서 말씀드린 영상을 참고해보신다면, 조금이라도 더 제 뜻이 잘 전달되리라 생각합니다. 

부디 '과거의 상처'에서 벗어나셔서 '내 마음'이 '지금, 여기'에 디디고 살 수 있게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미약하지만, 마음으로나마 응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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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kpdcoop@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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