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이일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진_ '길복순' 포스터
사진_ '길복순' 포스터

 

넷플릭스에서 오랜만에 웰메이드 영화를 만난 느낌이다. 사실 처음에는 전혀 기대하지 않고 봤었다. 또 그냥 타임 킬링용 영화이겠거니 예상했었다. 하지만 웬일, 생각할 거리가 의외로 많은 액션 영화였다. 감독의 많은 고민과 고뇌가 잘 담겨져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영화를 보면서 개인적으로 떠오른 단어가 하나 있었는데, 그 단어는 바로 ‘모순’이다. 사실 영화 내에서도 꽤 많이 ‘모순’이라는 단어가 등장하는 것으로 봐서는 ‘모순’을 표현하고자 했던 것이 감독의 의도일 거라 추측해 본다. 사실 영화 설정 자체가 ‘모순’이다.

길복순(전도연 분)은 사람을 죽이는 킬러인 동시에, 사람을 키우는 엄마다. 주인공의 존재 차체가 모순이다. 영화에서도 상기 설정을 드러내는 장면이 나온다. 

 

길복순(전도연 분): 참 모순이야. 엄마이면서 이런 일하는 게.

한희성(구교환 분): 원래 세상이 모순투성이야. 평화를 위해 전쟁을 하고. 진실보다 거짓을 믿고 싶어 하지.

 

 감독은 ‘모순’으로 설정한 영화를 통해 세상의 모순들을 죄다 까발리려고 작정한 듯 이야기를 풀어 간다. 영화 첫 장면에서 오다 신이치로(황정민 분)를 살해하려다 정당한 대결을 선택한 길복순이 자신의 딸과 있었던 일을 들려주는 장면이 있다. 주말 뉴스에서 한 정치인 아들의 부정 입학 의혹이 나오자, 길복순과 길재영(김시아 분)이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다. 

 

길복순: 에이, 사람들 증말. 아니, 자기 새끼 좋은 대학 보내고 싶은 건 당연한 거지. 자기들은 안 그럴 거 같아? 정말. (눈치 보면서) 아니, 저게 잘했다는 게 아니라 부모 마음으로 그럴 수 있다는 거지. 

길재영: 공정하지가 못하잖아. 

길복순: 아유. 원래 사람이 하는 일은 공정하기 힘들어. 

길재영: 누군가 저런 식으로 대학에 붙으면 또 누군가는 떨어질 거 아니야. 그게 내가 되면? 엄마는 지금이랑 똑같이 얘기할 거야? 

 

사진_ '길복순' 스틸컷
사진_ '길복순' 스틸컷

 

길복순의 말도 일리가 있고, 길재영의 말도 일리가 있다. 하지만 두 말은 동시에 존재할 수 없는 대치되는 명제다. 그래서 세상이 그렇게 모순을 안고 적당히 비리를 안은 채 이상적 사회를 꿈꾸는지 모르겠다. 어느 누군가는 길재영이 맞는 말이고, 길복순이 틀린 말 아니냐고 할지 모르겠다. 도덕적으로 생각하면 옳은 말이니까 그럴지 모르겠다. 하지만 길복순의 말대로 사람이 공정하기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난 정말 공정한 사람인데.’라고 생각하는 독자가 있다면, 그건 과신이다. 그러한 상황에 처해 보지 않고서는 모를 일이다.

과신을 하는 사람은 오히려(모순적이게도) 그러한 상황에 처했을 때 똑같이 행동할 가능성이 훨씬 높다. 사람은 합리화의 동물이기에, 얼마든지 자신을 방어할 수 있는 합리화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인 것이다. 오히려(모순적이게도) 자신도 그러한 상황에 처하면 똑같이 행동할 수 있는 사람임을 인정하는 사람이 같은 상황에 처했을 때 다른 행동을 할 여지가 더 많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미리 자신의 행동을 예측했었기 때문이다.

찰스 다윈이 “아는 것보다 더 자주 자신감을 낳는 것은, 바로 무지다.”라고 했었다. 모순 같지만 자신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 훨씬 더 많은 과신을 하게 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비리를 저지른 정치인을 쉽게 욕하고, 그 사람이 낙마하면 또 다른 욕할 대상을 찾는다. 그렇게 세상이 바뀌면 다행인데, 적어도 지금까지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를 봤을 때 그러하지 못했던 것 같다. 왜냐하면 또 자기합리화로 무장한 예비 불공정러는 세상에 널려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상은 모순으로 가득 차있다.

길복순이 길재영의 이야기를 통해 공정한 싸움을 시도해 보지만, 결국은 총을 들고 불공정한 싸움으로 끝냈듯이 말이다. 세상은 그렇게 반복된다. 이게 영화의 시작이었다. 그러고 나서 영화에서는 곳곳에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순들을 하나하나씩 드러내 준다. 잘못한 게 없지만 그 사실을 숨겨야만 하는 레즈비언, 워킹맘의 갈등, 가장 위법한 살인청부업자 그룹에서 만든 규칙 등 수많은 모순들을 드러내고자 애쓰는 모습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표현하고자 하는 모순의 극치이자 가장 큰 줄기는 유전자의 모순이라고 생각한다. 내 아이들을 보면 안 닮았으면 하는 모습들도 똑 닮아 있지 않은가? 길복순도 같은 고민을 한다. 

 

사진_ '길복순' 스틸컷
사진_ '길복순' 스틸컷

 

길복순(전도연 분): 내가 처음 살인을 한 게 열일곱이었어. 그래서 하나부터 열까지 나랑 다르게 키우고 싶었어. 그런데 걔를 보면 가끔 어린 시절 내가 생각나. 그게 섬뜩해.

 

길복순이 그렇게 킬러로서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것도 아버지의 폭력성을 물려받았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그토록 싫었던, 그래서 내 손으로 죽였던 아버지의 유전자 덕분에 내가 승승장구하고 있다니, 이 또한 지독한 모순이지 않을 수 없다. 그런 내가 싫었고, 내 딸만큼은 다르기를 바랐으나, 내 딸은 친구의 목을 가위로 찌르는 행동을 보인다. 길복순은 애써 이 사실을 부정해 보려 한다. 그리고 자신이 킬러라는 사실도 애써 숨기려 노력한다. 하지만 이런 노력을 하면 할수록 딸과의 거리는 점점 멀어지기만 한다.

엄마와 딸 사이에는 문이 굳게 닫혀 있다. 길복순이 킬러라는 비밀과 길재영이 레즈비언이라는 비밀 때문에. 길복순은 킬러라는 자신의 비밀이 들통나면 큰 일 날 것 같았지만, 결국 차민규(설경구 분)에 의해 그 사실을 길재영에게 들켜 버린다. 놀란 마음에 급히 길재영을 찾아가지만, 왠 걸, 길재영은 오히려 편안한 마음으로 엄마를 맞이한다. 굳게 닫혔던 마음의 문도 열린다. 길복순이 당황한 표정으로 문을 닫으려 하자, 길재영은 이를 말린다. “닫지마. 답답해.”

길복순이 킬러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 길재영이 오히려(모순적이게도) 편안한 표정을 보여주는 게 필자가 이야기한 유전자의 모순이다. 거부하고 싶지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게 유전자다. 싫었던 부모의 모습을 내가 닮게 되고, 싫었던 나의 모습을 자식에게 물려주고, 유전자는 지독하다. 유전자를 거부하면 결과는 뭘까? 길복순과 길재영처럼, 가장 가까워지고 싶은 자식과 가장 멀어지게 되는 모순이 종착지가 되지는 않을까?

영화의 첫 장면에서 길복순이 이야기한 것처럼, 부모의 마음으로 그럴 수 있다. 하지만 또 길복순의 말처럼, 원래 사람 하는 일이 유전자의 굴레에서 벗어나기는 힘들지 않을까? 영화는 인간 존재 자체의 모순을 드러내고자 했던 게 아닌가 생각해 본다. 지독하게 싫고 거부하고 싶지만 절대 벗어날 수 없는 굴레가 인간 존재 자체일지 모른다.

한희성이 길복순과 대화에서 자신이 쓸 책 제목을 이렇게 정했다며 말해 주는 장면이 있다. “모순 뒤의 진실을 봐라. 이게 책 제목이야.” 감독이 말하고자 했던 메시지가 아닐까 싶다. 세상은 빙그레 씨발이다. 

 

- 본 글에는 넷플릭스 영화 <길복순>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일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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