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이일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지금까지 SKY 캐슬 드라마를 통해 ‘인간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는 명제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욕망을 투사하고, 자식은 그 욕망을 내재화하여 그 순환 고리가 돌아간다는 내용에 대해 3차례(252627 연재)에 걸쳐 살펴보았습니다.

스카이 캐슬에서 그 순환 고리의 대척점에 한서진(염정아 분)과 이수임(이태란 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번 연재에서는 그 둘의 자제인 예서와 우주를 보면서 자녀양육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먼저 예서부터 살펴볼까요?

예서는 ‘인간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는 순환 고리에서 전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언뜻 겉모습만 봤을 때는 예서는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이 엄마(한서진)의 욕망 투사가 아니라, 스스로 원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어떤 아이도 태어나면서부터 공부라는 불편한 행위를 스스로 자연스럽게 원할 수는 없습니다. 칭찬이라는 긍정적인 피드백이든, 잔소리라는 부정적인 피드백이든, 어떠한 방식으로든 길들여져 온 시간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한 과정 속에서 내재화가 되어 현재의 예서는 스스로 원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짧은 관점에서는 이것이 나쁘지 않아 보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모범생들이 ‘착하다’, ‘똑똑하다’는 미명 아래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자신’을 속이는 행위이기에 절대 옳은 방향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예서도 마음속 깊은 곳을 들여다보면 여러 감정과 욕망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감정과 욕망들은 현재 공부에만 몰두하고 있는 행위와 충돌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예서는 그 감정과 욕망들을 애써 무시하면서 공부에만 집중하고 있는 모습으로 보입니다. 결국 그렇게 억압된 감정과 욕망들은 어떠한 방식으로든 스스로의 삶에 나쁜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스스로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요. 10번째 연재에서 언급하였던 영화 ‘굿 윌 헌팅’의 윌처럼요.

윌은 그렇게 억압해놓았던 죄책감이 자신의 직업선택(MIT 청소부), 연애 패턴(짧게 사귀고 헤어짐)에 영향을 주는지 전혀 알지 못한 채 살아갔었죠. 예서도 똑같고, 우리 모두도 똑같습니다. 30연재 가까이 동안 일관되게 전달드렸던 메시지가 그것이기도 하고요.

우리 안에 있는 감정과 욕망을 무시하면 우리는 절대로 절대로 행복해질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 ‘무시’는 우리의 인생이 생각지도 못한 방식으로 꼬이게 만드는 원천이 됩니다. 그렇게 꼬이게 되면 ‘내 인생’인데도 불구하고 ‘내 마음’대로 되지 않게 됩니다. 그래서 제 연재 제목도 ‘내 인생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이유’였습니다.
 

사진_JTBC


이렇게 말씀을 드리면, ‘그러면 공부를 열심히 하는 친구들은 모두 그러한 것이냐? 그렇다면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는 것이 답이냐?’라는 의문을 가지실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설마 그런 주장을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겠지요? 예서와 우주의 차이를 보면 아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둘 다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지만, 전해주는 느낌은 다르지 않나요? 그 다른 느낌에 답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차이가 무엇일까요?

우주는 자신 안의 감정과 욕망을 무시하면서 공부하지 않습니다. 사실 ‘사랑’이라는 감정도 그렇지요? 예서는 우주를 좋아하는 마음이 있지만 애써 무시하고 있습니다. 우주는 혜나를 좋아하는 마음이 있으니까 적극적으로 그 마음을 받아들입니다. 사실 예서는 모든 감정과 욕망을 무시하고 있고요. 우주는 내 안에 있는 감정과 욕망이라면 무시하지 않고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 차이는 어마어마하다고 생각합니다. 왜냐. 내 안에 있는 감정과 욕망이 ‘진짜 나’이니까요. 나 자신이 ‘진짜 나’에 뿌리를 박고 거기서부터 시작해야 흔들리지 않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나 자신이 ‘진짜 나’를 무시하고 살아가면 늘 불안하고 늘 불안정한 삶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우주라면 절대 김주영 선생님에게 당하지 않을 겁니다. 예서니까 그렇게 당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만큼 스스로가 불안정하니까요.

예서가 공부 외에는 무시하고 있는 모든 가치들, 원만한 친구 관계, 좋아하는 이성과의 관계, 아버지와의 관계, 동생과의 관계, 그리고 수많은 가치들... 정말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까요? 언젠가는 후회하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죽을 때까지 한 번도 후회하지 않고 그냥 그렇게 살아오던 대로 살아가게 된다면 그것이 최악의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드라마 속 캐릭터이기는 하지만, 예서가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이 드라마에 공감하는 수많은 청소년들의 모습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이쯤에서 이런 의문이 들 수도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자신 안에 있는 감정과 욕망을 추구하다 보면, 성적도 떨어지게 되고, 안 좋은 결과를 낳을 수 있지 않냐고요. 그런데 오해를 하지 말아야 될 건, 추구를 하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냥 ‘깊이’ 알아주라는 것입니다. 내 마음을 ‘깊이’ 알아주고 인정해주고 나서, 어떤 선택(추구를 하든, 하지 않든)이든 하라는 이야기입니다. 내 감정과 욕망을 ‘깊이’ 이해해주지도 못한 채, 어떤 선택들을 해 가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어떠한 방향으로의 선택이든 옳고 그름은 크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선택이든 장단은 양쪽에 모두 존재하니까요. 그런데 같은 선택이라도 ‘알고 선택하느냐, 모르고 선택하느냐’는 너무나도 크나큰 차이가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살면서 최악은 ‘알지도 못하면서’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되면 내 마음을 나보다 잘 아는 누군가(ex. 김주영 선생님)에게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전 연재(6번째 연재)에서 ‘행위의 주체가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반복적으로 던졌던 것도 같은 지점에서 연유합니다.

 

그리고 흔한 착각 중에 하나가 ‘내 감정과 욕망의 뿌리를 알고 인정해주면 공부에 방해가 된다.’는 착각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니야? 네, 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실제적으로도 ‘내재적 동기’가 ‘외재적 동기’에 비해 훨씬 효율적이고 생산적인 결과물을 가져다준다는 연구결과가 너무나 많습니다. 꼭 연구결과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누구나 한 번쯤 경험으로도 아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내재적 동기를 찾을 수 있는 방법은 결국은 내 감정과 욕망의 뿌리를 알고 이해해주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전에 한 프로그램에서 박진영(JYP) 씨가 인터뷰했던 장면이 아직도 기억에 있는데요. 자신이 미국에서 잠시 살다 한국으로 돌아와서 영어를 까먹는 게 정상적인 상황이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자신이 영어를 까먹지 않고 잘하는 이유는 딱 하나였다고 합니다. 마이클 잭슨에 빠져서. 만약 ‘영어를 잘해야 나중에 도움이 될 수 있으니까 잘해야 돼.’라는 생각으로 영어공부를 했다면 자신은 영어를 그렇게 잘하지 못했을 거라고 했습니다. 마이클 잭슨이 좋아서, POP 음악을 듣기만 해도 미칠 것만 같아서 그래서 영어를 했다고 합니다.

‘자신이 영어를 잘하는 이유는 그것이었다.’라고 이야기를 했었는데요. 저는 100% 동의합니다. 자신의 감정과 욕망을 있는 그대로 알아주고 그것을 ‘원하는 방향’으로의 힘으로 활용했을 때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내 안의 감정과 욕망이 ‘진짜 나’입니다. ‘진짜 나’에 뿌리를 박고 살아갈 때, 그때, 현실적으로 가져다주는 힘도 엄청나다고 생각합니다. 그 엄청난 잠재력을 놓치고 살면, 그 누구도 아닌 자신에게 손해라고 생각합니다.
 

사진_픽셀


그 어떤 아이도 자신이 공부를 잘 못하기를 원하는 아이는 없습니다. 자기 뜻대로 되지 않을 뿐입니다. 그런 실패 경험이 쌓이게 되면서 공부와 점점 거리가 멀어지는 것입니다. SKY 캐슬의 수완이가 하는 말이 그러한 아이들의 마음을 대변해준다고 생각합니다.

수완: 나도 공부 잘해서 엄마, 아빠 기쁘게 해드리고 싶은데, 그게 내 마음대로 안 되니까 너무 속상하고. 엄마도 자꾸 화내니까.

공부 잘해서 엄마, 아빠를 기쁘게 해드리고 싶은 마음은 어떤 아이에게나 있습니다. 방법을 모르니까 멀어질 뿐이지요. 단순히 ‘공부해라’라고 강요만 하지 말고, 그 방법을 찾아주는 것이 부모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26번째 연재에서 언급한 마음읽기입니다.

언제나 출발은 자녀의 마음속 깊은 곳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을 알아주려는 노력을 하지 않은 채 단순한 강요만 반복하다 보면 점점 내재적 동기에서 멀어지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또, 부모가 원하는 것과 달리 자녀는 공부에서 점점 멀어지게 되고요. 그러면 부모는 답답한 마음에 또, 강요만 하게 됩니다. 그런 악순환 때문에 ‘공부 잘해서 부모를 기쁘게 해드리고 싶은 마음’과 달리 이상한 방향으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지점에서 ‘마음읽기’를 가장 잘하는 극중 인물이 김주영 선생님입니다(26번째 연재 참조). 물론 김주영 선생님은 악한 의도를 가졌기 때문에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지요. 하지만 자신의 자녀에게 악한 의도를 가지는 부모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지점에서 ‘마음읽기’를 잘하지 못해 자녀를 이상한 길로 인도하는 부모는 있을지라도, ‘마음읽기’를 잘했는데도 불구하고 자녀를 이상한 길로 인도하는 부모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스카이 캐슬 드라마에서 김주영 선생님이 강예서에게 했던 말로 긴 글을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선생님은 네 마음을 적극 활용해서 학습효과를 극대화했을 뿐이야.”

 

 

 

이일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전체기사 보기
저작권자 © 정신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