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장창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밤에 꾸는 꿈도 있지만 낮에 꾸는 꿈도 있다. 자는 동안 무의식이 담당하는 꿈도 있지만 깨어있을 때에 나의 미래에 대해 상상하는 꿈도 있다.

나도 모르는 내 마음인 무의식을 내담자와 함께 살피는 정신과 의사로서 자면서 꾸는 꿈에 대해 먼저 이야기하는 게 맞지 않나 싶기도 하다. 하지만 이번 글에서는 힙합을 통해서 비전으로서의 꿈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Martin had a dream
마틴 루터 킹은 꿈이 있었어.

Martin had a dream
마틴 루터 킹은 꿈이 있었어.

Kendrick have a dream!
켄드릭도 꿈이 있어!

- Kendrick Lamar <Backseat Freestyle> 중에서


켄드릭 라마의 노래 <Backseat Freestyle>의 도입부이다. 너무나도 유명한 흑인 인권운동의 지도자인 마틴 루터 킹 주니어(Martin Luther King Jr.) 목사의 연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I have a dream)”의 일부를 인용했다.

모든 꿈이 같지는 않다. 켄드릭의 꿈은 마틴 루터 킹의 고매한 이상과는 차이가 있다. 이 곡에서 켄드릭이 말하는 자신의 꿈이란 미국 흑인 커뮤니티에서 험한 삶을 살던 사춘기 소년의 돈과 권력을 향한 욕망을 가리킨다. 하지만 소년 시절 자신의 세속적인 ‘꿈’을 이야기하면서 켄드릭은 흑인 인권운동의 지도자인 마틴 루터 킹을 우리에게 소환한다.
 

사진_픽사베이


1963년 8월 28일 미국 전역에서 워싱턴 D.C.로 25만명의 시민들이 모였다. 평화적 집회인 ‘직업과 자유를 위한 워싱턴 행진’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100년 전에 이미 노예제도가 폐지되었음에도 당시 미국 흑인들 대다수는 빈곤에 시달리고, 정치에 참여하지 못했다. 그들은 대규모 집회를 통해 흑인의 경제적 보장과 정치 참여 권리를 주장하고자 했다. 시위 참가자의 20%는 백인이었다.

워싱턴 행진의 영향으로 이후 1964년 시민권 개정안이 통과되었으며, 1965년에는 투표권 개정안이 통과되었다. 이 워싱턴 행진의 하이라이트가 바로 마틴 루터 킹의 “I have a dream” 연설이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네 명의 내 자식들이, 피부색이 아닌 그들의 품성에 의해 평가받는 나라에서 살게 되는 것입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인종차별주의자들이 망언을 일삼는 앨라배마 주에서 흑인 어린이들이 백인 어린이들과 함께 형제자매처럼 손을 맞잡을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는 꿈입니다.

모든 주, 모든 시, 모든 마을에서 자유의 노래가 울린다면, 흑인과 백인, 유태교도와 기독교도, 신교도와 구교도를 가리지 않고 모든 주님의 자녀들이 손에 손을 잡고 오래된 흑인영가를 함께 부를 그 날을 앞당길 수 있을 것입니다. “마침내 자유를 얻었네, 마침내 자유를 얻었네, 전능하신 주님의 은혜로, 마침내 우리는 자유를 얻었네.”
 

마틴 루터 킹이 주도한 흑인 민권운동과 그의 희생은 흑인 공동체를 단합하게 만들었고, 그들의 목소리를 높이는 토대가 되었다. 미국 잡지 ‘아틀란틱(The Atlantic’에서는 “킹의 죽음이 힙합 탄생의 씨앗이 되었다”라고 평하였다. 2008년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 버락 오바마를 당선시키는 데 힙합세대의 젊은 피가 큰 힘이 되었다. 마틴 루터 킹의 꿈이 흑인 커뮤니티뿐만 아닌 미국이라는 거대한 국가를 변하게 했다.

하지만 아직 미국에선 경찰의 흑인에 대한 과잉 대응, 인종 혐오 범죄와 이로 인한 죽음이 지속되고 있다. 킹의 꿈은 완성되지 않았다. 차일디시 감비노(Childish Gambino)의 시대적 문제곡 <This is America>가 울려 퍼지는 현재에도 킹의 꿈은 진행 중이다.

 

우리는 마틴 루터 킹의 고결한 꿈만을 꿈이라고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켄드릭이 <Backseat Freestyle>에서 노래한 여유로운 삶에 대한 바람도 꿈이 될 수 있다.

래퍼 노토리어스 비아이지(The Notorious B.I.G.)는 <Juicy>라는 곡에서 어린 시절 잡지에서나 보던 리무진을 타고 다니는 아티스트가 되고자 했던 자신의 어린 시절의 꿈에 대해 노래한다. 그를 무시했던 학교 선생님들과, 마약을 팔던 그를 신고했던 사람들에게, 그리고 누구보다도 자신의 삶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을 향해 그는 떳떳하게 외친다. 이젠 자신의 삶이 나아졌다고.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삶을 살라고.
 

I like the life I live 'cause I went from negative to positive.
나는 내가 사는 이 삶이 좋아. 왜냐고? 나는 부정적인 데에서 긍정으로 나아왔거든.

- Notorious B.I.G. <Juicy> 중에서
 

비아이지는 이 곡에서 풍성한 시각 이미지를 활용하여 자신의 여유로운 삶을 노래한다.

영국 캠브리지 대학 정신과 교수 아킴 술래(Akeem Sule)와 뇌과학자 베키 인크스터(Becky Inkster)는 2016년에 학술지 Lancet Psychiatry에 <A hip-hop state of mind>라는 글을 기고한다. 이들은 “비아이지의 곡에서 볼 수 있는 풍성한 시각적 서사는 힙합 음악이 익숙한 10대에게 새로운 양식의 정신치료를 제공할 수 있다”라고 말한다.

구체적인 시각적 서사를 정신치료에 활용한다는 개념은 ‘긍정적 시각 표상(positive visual imagery)’이라는 용어로 정의된다. 이들은 힙합에 흥미가 있는 우울증 환자에게 힙합 음악을 통해 그들 자신과 상황, 미래에 대한 긍정적 이미지를 증진시킬 수도 있을 것이라고 예측한다.
 

사진_픽셀


누군가는 말한다. 오늘의 시대를 꿈이 없는 시대라고. 꿈을 꾸지 않는 시대라고. 꿈을 잃어버린 시대라고. 하지만 꿈을 꾸는 것은 한 사람을 건강하게 성장시킬 뿐만 아니라 세상을 변화시킬 원동력이 된다.

모든 꿈을 다 이룰 수는 없다. 하지만 꿈을 꾸지 않으면 그 근처에 가는 건 생각할 수도 없을 것이다. 초등학생 때의 나의 꿈은 과학자였다. 대학생 때의 나의 꿈은 래퍼였다. 지금 나의 꿈은 마음의 병을 앓는 분들과 함께 하는 좋은 정신건강의학과 의사가 되는 것이다. 이런 꿈들 덕분에 이 꿈들 사이의 어디 즈음에서 ‘마음과 힙합’에 관한 글을 쓰고 있다.

당신에게 묻는다. 그리고 나에게 다시 묻는다. “넌 꿈이 뭐야?”
 

넌 꿈이 뭐야 네 자신에게 물어봐 꿈이 뭐야
자신감을 가져 넌 대체 꿈이 뭐야 네 인생의 주인공은 너 바로 너야
원하는 삶을 살어 웅크리지 말어 모두의 성공의 잣대가 왜 돈인거야
(중략)
덧칠해봐 기름 녹슬었던 꿈 이제 거머쥐기를
넘어지고 포기하기엔 인생은 길어 네가 품은 꿈은 어디에

- Gray <꿈이 뭐야(Featuring 도끼 & Crush)> 중에서


The world waiting for me to yell "I Have a Dream"
세상은 내가 이렇게 외치길 기다리고 있어. “나에겐 꿈이 있어!”

- Common <A Dream> 중에서

 

링크 1: Kendrick Lamar <Backseat Freestyle>
https://www.youtube.com/watch?v=EZW7et3tPuQ

링크 2: Martin Luther King Jr. <"I have a dream" Speech>
https://www.youtube.com/watch?v=vP4iY1TtS3s&t=16s

링크 3: Childish Gambino <This is America>
https://www.youtube.com/watch?v=VYOjWnS4cMY

링크 4: Notorious B.I.G. <Juicy>
https://www.youtube.com/watch?v=_JZom_gVfuw

링크 5: Lancet Psychiatry <A hip-hop state of mind>
https://www.thelancet.com/journals/lanpsy/article/PIIS2215-0366(14)00063-7/fulltext

링크 6: Gray <꿈이 뭐야(Featuring 도끼 & Crush)>
https://www.youtube.com/watch?v=II0sHTWbf3Y

링크 7: Common <A Dream(Featuring Will.i.am)>
https://www.youtube.com/watch?v=XBa55sDTI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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