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정희주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사연) 

안녕하세요. 남편의 우울증과 관련해서 상담받고자 문의드립니다.

평소 자주 우울하다는 말을 하고, 죽고 싶다는 말도 합니다. 우울증 환자에게 병원 가라는 말을 하면 안 된다고 해서 그 말은 안 하고 있어요.

아침에 일어날 때와 잠잘 때 꼭 인사하고, 평소 '고맙다' '사랑한다'는 표현을 자주 하고 있습니다. 포옹도 자주 하고, 당신은 정말 멋진 사람이고 내게 소중한 사람이라는 표현도 합니다.

남편이 혹시나 나쁜 생각으로 잘못될까 봐 너무 무섭고 두렵습니다. 제가 신랑을 위해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요? 지금 상황에서 제가 읽고 도움을 받을만한 책이 있다면 추천 부탁드립니다.

(우울증 환자들이 읽는 책이 아닌, 주변 사람들이 읽고 우울증을 겪는 사람에게 해줄 수 있는 내용들이 있는 책이면 좋겠습니다. 그런 책이 있기는 있을까요... ㅠㅠ)

 

사진_픽셀

 

답변)

안녕하세요, 정신의학신문 정희주입니다. 가족 중 한 명이 우울증을 겪게 되면 다른 가족들 역시 심적으로 힘들고 우울해지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글쓴이 분 역시 남편분이 우울증을 겪게 되어 많이 당황스럽고 걱정이 되실 텐데도 어떻게 하는 것이 도움이 될지 차분히 대처방안을 찾으시는 모습이 참으로 대단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남편분에게 무엇을 해주어야 도움이 될지 질문을 하셨는데요, 사실 무엇을 해주는 것이냐보다 중요한 것은 환자인 가족에게 어떠한 태도를 갖느냐입니다. 특별한 무언가를 해주지 않더라도 환자에게 공감적이고, 따뜻한 감정이 느껴지도록 한다면 큰 도움이 될 것이고, 열심히 무언가를 해주더라도 그 행동이 환자에게 비난받는 것 같고 차갑게 느껴진다면 도리어 역효과가 나는 것입니다.

 

우울증에 빠진 사람은 주변 사람과 환경, 자기 자신, 미래에 대해 절망적인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세상에 믿을 것도, 꿈도 희망도 없다고 단정 지어버리는 것이지요.

여기서 가족의 태도와 역할이 중요한데, (환자가 느끼기에) 절망적인 세상 속에서 유일하게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안정감이 있는 사람이 되어주는 것입니다. 당신이 아무리 힘들더라도 곁에 있겠다, 힘든 게 있으면 언제든지 의지하고 이야기하라는 메시지를 표현하는 것은 우울증을 이겨낼 수 있는 단단한 발판을 마련해 주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환자는 가족을 주춧돌로 삼아 우울증을 극복하려는 용기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또 하나 중요한 태도는 의지가 부족하다며 환자를 탓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울증은 일종의 뇌의 질병으로, 왜 의지로써 우울증을 극복하지 못하냐는 말은 왜 의지로 고혈압을 극복하지 못하느냐는 말과 같습니다. 기본적으로 우울증 환자의 태도가 무력하고 아무것도 안 하려고 하기 때문에 답답한 마음에 의지를 다지라는 말을 할 수가 있는데 이는 환자가 죄책감을 가지게 하고 가족에게서 멀어지게 하는 결과만을 초래할 뿐입니다. 환자와 우울증이라는 질환을 분리하고, 무기력과 우울은 환자가 아닌 우울증이라는 질환에 속한다고 생각하시면 환자를 탓하는 실수를 줄이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실제적인 도움을 주고 싶으시다면 병원을 지속적으로 다닐 수 있도록 북돋아주고, 병원 예약을 해준다거나 같이 가주는 것도 충분히 훌륭한 방법입니다. 사회적 활동이나 운동 같은 신체 활동을 격려하는 것도 긍정적입니다. 또한 옆에서 남편분을 주의 깊게 관찰하고 사소한 것이라도 긍정적인 변화가 있다면 이를 캐치하고 칭찬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도움을 줄 때 남편분이 지나친 압박감을 느끼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울증의 특성상 쉽게 힘겨워하고, 좌절하고, 상처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위에 말씀드린 무엇을 해주냐보다 어떤 태도로 해주는가가 중요하다는 것이 바로 이러한 우울증의 특성 때문입니다. 

우울증을 겪는 가족과의 대화에 있어서는 말을 하기보다는 들어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조언이나 해결책은 일단 덮어두고 끝까지 들은 다음에, '무엇이 그렇게 힘들게 했는지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는 식의 중립적인 대화를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렇나 대화조차 어렵다면 내가 지치지 않는 선에서 단지 시간을 같이 보내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적어주신 정신과 치료 및 자살사고에 대해 말씀드리면, 우울증을 앓고 있는 것 같은 가족에게 병원 가라는 말을 하는 것이 금기는 아닙니다. 정신질환을 터부시 하는 문화적 특성상 정신과 진료 권유를 하는 것이 당사자에게 상처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조심스러워야 하겠지만, 충분한 공감과 애정하는 마음을 표현한 상태에서 진료를 권유하는 것은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 수 있습니다. 상담 및 약물치료는 실제로 큰 효과를 발휘하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습니다.

또한 나쁜 생각으로 잘못될까 봐 두렵다고 하셨는데 만약 남편분의 말이나 행동에서 그러한 낌새가 보인다면 자살을 하고 싶은지, 스스로 죽어야겠다는 생각이 있는지 명확하게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보통은 자살이라는 단어가 가지는 무게 때문에 이를 물어보기 꺼려하는데 도리어 직접적으로 물어보고 같이 대처방안을 찾는 것이 최악의 결과를 예방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끝으로 자기 자신을 잘 챙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우울증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지내면서 그들을 챙겨주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울증은 치료하지 않으면 평균적으로 6~12개월가량 지속되며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여러 번 재발을 하기도 하는 등 긴 시간 동안 주변의 많은 노력이 필요한 질병이기도 합니다. 처음에는 의욕적으로 환자를 돕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분노, 죄책감, 무력감을 느끼게 되는 것은 충분히 예상 가능하며 당연한 일입니다.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환자를 위해 쏟지 말고 적절한 휴식과 여가생활을 통해 나 자신을 위한 시간을 갖는 것도 잊지 않으시기를 바랍니다.

 

정희주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서울역 마음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건국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졸업
한양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전)성동구 정신건강복지센터 상담의
전문의 홈 가기
  • 애독자 응원 한 마디
  • "자기 마음을 들여다보고 살피려는 노력을 하기, 그리고 작은 목표를 달성했을 때
    ‘의식적으로’ 목표에 대해 보상하기. 중요한 내용을 많이 배워갑니다!"
    "근육을 키운다는 느낌으로 조금씩 실천해봐야겠어요. 고맙습니다."
저작권자 © 정신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