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top_notch
default_setNet1_2

[내 인생, 내 마음] 43. 너무나 멋있고 부러운 내 친구의 의미

기사승인 2019.10.18  07:46:21

공유
default_news_ad1

[정신의학신문 : 이일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여러분에게는 너무 멋있고 부러운 친구가 한두 명쯤 있지 않으신가요? 오늘은 ‘내 마음’을 살펴보기 위해 그러한 친구들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왜냐고요? 실제로 그 친구들은 ‘내가 생각하는 만큼’ 대단한 친구가 아닐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무슨 말인가 싶죠?

사실 그렇게 대단해 보이는 친구들은 ‘내가 가지고 있는 욕망의 투사’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우리는 세상을 볼 때 절대로 있는 그대로 인지를 하지 않습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체’에 걸러서 세상을 인지합니다. 내가 보고 있는 그 친구는 ‘그 친구 자체’에서 발현되고 있는 몫도 있지만, ‘내 체’에 의해 발현되는 몫도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내가 가지고 있는 필터’에 의해 얼마나 왜곡해서 바라보는지를 다음 그림을 통해 알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위 그림에서 ‘O’ 표시한 두 타일이 보이실 겁니다. 두 타일의 색상이 같아 보이시나요? 달라 보이시나요? 아마도 달라 보이실 겁니다. 하지만 두 타일은 객관적인 세계에서는 정확히 같은 색입니다. 믿지 못하시겠다면 그림판에 옮겨서 확인해보셔도 됩니다. 확인해보시니 정확히 같은 색이죠? 그런데 우리는 왜 다시 봐도 다른 색으로 보일까요? 위 타일은 밝은 곳에 있고, 아래 타일은 그림자가 져 있다는 것이 힌트입니다. 우리의 뇌에는 그림자 속에 있는 건 실제보다 밝을 거라 예상하는 필터가 내재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뇌라는 필터에서 더 밝게 변형을 해서 인지하는 것이죠.

 

이러한 착시 현상은 우리의 인간관계에도 고스란히 적용됩니다. 인간관계에서 세상을 인식하는 기관도 동일하게 ‘뇌’라는 놈이거든요. ‘뇌’는 절대로 세상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는 기관이 아닙니다. ‘뇌’가 세상을 있는 그대로 인식한다면 아주 어두운 동굴밖에 인식이 되지 않을 거예요. ‘뇌’는 두개골이라는 딱딱한 물체에 둘러싸여 갇혀 있거든요. 우리가 인간관계에서 너무나 멋있어 보이고 대단해 보이는 친구를 만나게 된다면, 실제 그 친구가 그렇다기보다는 내 ‘체’에 의해 왜곡되어서 인식되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세상에 그렇게 완벽한 사람은 없거든요.

그러면 어떠한 ‘체’에 의해서 그렇게 왜곡이 될까요? 제가 서두에 ‘내가 가지고 있는 욕망의 투사’라는 표현을 썼었는데요. 바로 그 부분입니다. 그 친구는 내가 가장 바라고 있는 모습에서 조금 나은 모습을 보이고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내가 가장 바라고 초점을 맞추고 있는 부분에서 뛰어나 보이니까, 그때부터 모든 것이 대단해 보이는 ‘이상화’라는 필터가 작용이 되는 것이죠. 결국 ‘너무나 멋져 보이는 내 친구’는 내 모습을 관찰할 수 있는 또 다른 재료가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너무나 바라고 있는 내 욕망이 투사되어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너무나 바라고 있다는 건, 내 안에 그러한 잠재력이 숨어있다는 것과 동일한 말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우리의 무의식은 내 안에 잠재력이 없는 부분에 대해서는 그렇게 열망하지 않습니다. 잠재력이 있기 때문에 열망하는 것이지요.

 

사진_픽셀

 

이전 연재에서 제가 외향적인 친구들을 그렇게 부러워하고 이상화했었다고 말씀드렸었습니다. 어렸을 때는 정말 그 친구들이 그렇게 대단해 보일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절대 그렇게 될 수 없을 거 같고, 그냥 부럽기만 한. 그런데 시간이 많이 지난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결국, 제 안에 ‘외향적’인 것에 대한 커다란 욕망을 가지고 있었던 건 그만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었고, 그렇기에 그토록 열망했던 것이었더라고요. 다만, 그때는 내 안에 그 모습을 발견하지 못했던 것뿐이었습니다. 예전에는 ‘이상화된 그 친구’를 만나면 괜히 주눅 들고, 내가 못 나 보이고, 자존감이 쭈그러들고 그랬었습니다. 그 친구가 아무 짓도 안 했는데도 불구하고요.

하지만 지금은 그 친구를 만나도 전혀 그런 마음이 들지 않습니다. 그냥 ‘그 친구’는 ‘그 친구’로 보이더라고요. 얼마 전에도 만났었는데 편하더라고요. 분명 ‘그 친구’가 바뀐 것은 아닐 것입니다. 내 안에 있는 필터가 바뀌니, 세상이 바뀌어있는 것입니다. ‘어른으로서 성장한다.’라는 것이 무엇이냐고 제게 물어보신다면, 저는 그 필터가 모두 거둬지는 것이 성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연을 있는 그대로 그냥 그렇게 볼 수 있게 되면, 그것이 성인의 경지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여러분 옆에 너무나 멋져 보이는 친구가 있으신가요? 그건 그 친구의 모습이 아닙니다. 여러분 안에 내재되어 있는 욕망의 투사가 그렇게 보이도록 만든 것입니다. 그 욕망을 따라가다 보면 필터가 거두어지는 일들이 여러분에게도 생기시리라 생각합니다. 정신과 의사가 ‘정신치료’라는 상담을 통해서 하는 일들도 그러한 일이거든요. 이상화된 친구는 자기 자신의 모습을 관찰할 수 있는 소중한 재료이니, 부러워만 하지 말고, 자신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잘 관찰해보시는 건 어떨까요?

 

이일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info.psynews@gmail.com

<저작권자 © 정신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default_news_ad4
default_bottom
#top
default_bottom_not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