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환의 <시(詩)와 함께하는 마음공부> (6)

[정신의학신문 : 여의도 힐 정신과, 황인환 전문의] 

 

불안과 걱정 – 나는 나를 불안케 하는 것들과 함께 살아간다
: 박상천의 ‘5679는 나를 불안케 한다’

 

커피숍에 들어갔습니다. 손님이 별로 없어 자리가 많습니다. 그런데도 유독 맨 귀퉁이에 있는 가죽 소파에 가서 앉습니다. 어딜 가든 맨 귀퉁이 자리를 먼저 찾고 이왕이면 가죽 소파에 앉는 게 편하기 때문입니다. 일하려고 책상 앞에서 컴퓨터를 켰을 때 책상 위에 검은색, 빨간색, 파란색 모나미 볼펜과 흰색 노트가 나란히 놓여 있지 않으면 일이 되지 않습니다. 책상 위 풍경이 한결같아야 마음이 안정되고 그런 상태에서만 일이 잘되는 까닭입니다. 

사람마다 묘한 습관 혹은 버릇 같은 게 있습니다. 성장 과정에서 자연스레 습득된 것도 있고, 주변 환경의 영향으로 차츰 만들어진 것도 있습니다. 가정이나 군대, 학교나 회사 등 특정 집단에서 전해 내려온 전통과 문화에 의해 거의 강제적으로 학습되었을 수도 있죠.

운동선수나 예술가들에게는 징크스나 기벽 같은 게 있습니다. 야구선수의 경우, 방망이를 짧게 잡아야 안타를 잘 친다거나 특정 모양의 공을 사용해야 투구를 잘한다거나 하는 겁니다. 피아니스트나 바이올리니스트도 자기가 늘 사용하는 또는 선호하는 악기가 아니면 연주를 망치는 사례가 있습니다. 도공들도 저마다 원하는 흙의 상태가 다릅니다. 대목수들 역시 집을 짓기 전 쑥물로 목욕을 한다든지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다든지 하는 습관이 있습니다.

 

나는 왜,
앞에 가는 자동차 번호판 숫자를
바꾸고 싶을까.
5679는 5678이나 4567로 순서를 맞추고 싶고
3646은 3636으로, 7442는 7447로 짝을 맞추고 싶을까.
5679, 3646, 7442는 나를 불안케 한다. 

나는 왜,
카세트테이프는 맨 앞으로 돌려서 처음부터 들어야 하고
삐긋이 열린 장롱문은 꼬옥 닫아야 하고
주차할 때 핸들은 똑바로 해두어야 하고
손톱은 하얀 부분이 보이지 않도록 바짝 깎아야 할까.
테이프와 장롱문과 핸들과 손톱이 나를 불안케 한다. 

나는 왜,
시계는 1분쯤 빨리 맞추어 두고
컴퓨터의 백업 파일은 2개씩 만들어 두고
식당에서는 젓가락을 꼭 접시 위에 얹어 두어야 하고
손을 씻을 때면 비눗기가 느껴지지 않을 때까지 손을 헹구어야 할까.
시계와 컴퓨터와 젓가락과 비누가 나를 불안케 한다. 

 

어떠신가요? 이 시에 공감이 가시나요? 나는 전혀 해당 사항이 없다고 느끼시나요?

박상천 시인의 ‘5679는 나를 불안케 한다’라는 시입니다. 1997년에 출간된 시집 제목이기도 하죠. 현대인들이 일상에서 얼마나 많은 불안을 느끼며 살아가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시인이 차를 타고 갑니다. 문득 앞에 있는 차 번호판으로 눈길이 갔습니다. 5679라는 숫자가 보입니다. 순서가 안 맞습니다. 5678이거나 4567이었다면 마음이 편했을 겁니다. 아무런 불안도 없었겠죠. 그러나 하필 5679입니다. 순서가 맞지 않아 불안합니다. 거슬립니다. 자동차 번호판 숫자를 순서에 맞게 바꾸고 싶습니다. 그래야 마음이 편할 것 같습니다. 그렇게 따지면 거리를 오가는 모든 자동차 번호판 숫자가 마음에 들지 않을 겁니다. 전부 순서대로 배열하거나 짝을 맞추지 않는다면 운전할 때마다 불안과 걱정에 시달리겠죠.

시인의 일상 속 불안은 계속됩니다. 카세트테이프는 중간까지 감겨 있는 상태로 그냥 들어도 되는데, 굳이 맨 앞으로 돌려서 처음부터 들어야 안심이 됩니다. 삐긋이 열린 장롱문은 꼬옥 닫아야 하고, 주차할 때 핸들은 똑바로 해두어야 하고, 손톱은 하얀 부분이 보이지 않도록 바짝 깎아야 합니다. 시계는 1분쯤 빨리 맞추어 두고, 컴퓨터의 백업 파일은 2개씩 만들어 두고, 식당에서는 젓가락을 꼭 접시 위에 얹어 두어야 하고, 손을 씻을 때면 비눗기가 느껴지지 않을 때까지 손을 헹구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불안합니다. 카세트테이프와 장롱문과 핸들과 손톱과 시계와 컴퓨터와 젓가락과 비누가 나를 불안하게 합니다. 

 

과연 불안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 걸까요? 물건들일까요? 아니면 나일까요?

차 번호판 숫자가 안 맞아도, 카세트테이프를 맨 앞으로 돌려서 처음부터 듣지 않아도, 삐긋이 열린 장롱문을 꼬옥 닫지 않아도, 주차할 때 핸들을 똑바로 해두지 않아도, 손톱을 하얀 부분이 보이지 않도록 바짝 깎지 않아도, 시계를 1분쯤 빨리 맞추어 두지 않아도, 컴퓨터의 백업 파일을 2개씩 만들어 두지 않아도, 식당에서 젓가락을 꼭 접시 위에 얹어 두지 않아도, 손을 씻을 때 비눗기가 느껴지지 않을 때까지 손을 헹구지 않아도 아무런 상관없습니다. 욕먹지 않습니다. 잡혀가지 않습니다. 세상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잘 돌아갑니다.

그런데 왜 꼭 그렇게 해야만 안심이 될까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왜 불안한 걸까요? 

 

사진_픽사베이

 

세계적 베스트셀러 작가인 알랭 드 보통은 『불안(원제: Status Anxiety)』이라는 자신의 책에서 우리의 삶은 불안을 떨쳐내고, 새로운 불안을 맞아들이고, 또다시 그것을 떨쳐내는 과정의 연속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는 불안의 원인을 다섯 가지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사랑의 결핍입니다. 어린아이일 때는 부모와 사회로부터 어떠한 대가도 없이 사랑을 받습니다. 하지만 어른이 되면 다르죠. 이성으로부터 확인받는 관심과 사랑에 의해 나의 존재를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아울러 세상으로부터 확인받는 관심과 사랑, 즉 능력, 성공, 명예 등이 필요합니다. 이 같은 사랑을 받지 못했을 때, 우리는 불안합니다. 연인이나 직장은 우리에게 지위를 부여합니다. 그것이 결핍된다면 불안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두 번째는 속물근성입니다. 속물근성이란 사회적 또는 문화적 편견을 가지고 상대방이나 물건을 판단하는 사람들이나 그것을 지나치게 떠벌리는 사람들입니다. 우리에게는 누구나 속물근성이 있습니다. 큰 자동차를 타고, 비싼 가방을 메는 것은 상대방에게 내 지위를 확인시켜 주고 싶은 것입니다. 상대방은 큰 자동차와 비싼 가방을 가지고 있는데, 나는 그렇지 못하다면 불안해집니다. 우리를 불안하게 하는 건, 내면 깊이 자리한 속물근성입니다.

세 번째는 기대입니다. 우리는 우리와 같거나 비슷하다고 느끼는 조건을 가진 사람들과 우리의 조건을 비교합니다. 그 비교를 통해 불안을 느끼게 되는 것이죠. 우리가 동등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우리보다 나은 모습을 보일 때 받는 그 느낌이야말로 불안과 울화의 원천입니다. 우리의 삶이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이 풍족해지고 향상되었지만, 우리 또한 이전에는 넘보지 못했던 것들이 내 것일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통해 불안감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네 번째는 능력주의입니다. 중세시대에서 가난은 나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부자가 부도덕하게 보였죠. 그러나 과학의 시대로 접어들면서 사람들의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가난은 무능력, 게으름을 뜻하는 것이 되었고, 부와 성공은 근면과 성실 심지어 인품마저 의미하게 된 것입니다. 능력과 세속적 지위 사이에 신뢰할 만한 관련이 있다는 믿음이 늘어나면서 돈에도 새로운 도덕적 가치가 부여되었습니다. 무능력은 불안과 동의어가 되었습니다.

다섯 번째는 불확실성입니다. 불안은 현대 사회에서 욕망의 하녀입니다. 남들로부터 존중받고,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전통사회에서처럼 성실하다고만 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언제 빛을 발할지 모르는 재능, 누구에게 동등하게 적용되지 않는 행운과 불운, 전통사회에서 자급자족하던 것과는 달리 고용주의 이익과 관계, 세계 경제 상황, 정치적 변동 등과 같이 불확실한 요소에 의해 내일이라도 지금의 지위를 잃을 수 있기에 여전히 불안합니다.

 

알랭 드 보통이 말한 불안의 원인을 살펴보니 불안하지 않게 살아가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정도입니다. 그렇다면, 박상천 시인은 자신의 수많은 불안을 어떻게 견뎌내고 있을까요?
 

그래도 나는,
나를 불안케 하는 것들과 함께 살아간다, 잘 살아가고 있다.


아, 그렇군요. 시는 이렇게 결론을 맺고 있군요. 사방팔방 곳곳에 불안의 요소들이 가득하지만, 그것이 너무 신경 쓰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나는 그것들과 끝내 불화에 이르지 않고, 더불어서 조화를 이루며 함께 살아간다고 합니다. 그것도 아주 잘 살아가고 있다고 말이죠.

묘한 습관이나 버릇 혹은 징크스나 기벽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잘 정돈되고 반듯한 무언가가 안정감을 주는 반면, 흐트러져 있고 무질서한 것은 불안감을 줍니다. 정해진 틀, 일정한 규범, 넘지 말아야 할 선이 마음을 안심시킵니다. 틀을 깨고, 규범을 일탈하고, 선을 넘으면 걱정이 밀려옵니다. 이른바 질서의 감옥에서 느끼는 평화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무질서와 규범 밖의 세계에는 안정과 평화가 없을까요? 일탈과 파괴의 세계에는 불안과 걱정만 가득할까요? 그렇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새로운 것과 창조적인 것은 대부분 무질서와 규범 밖의 세계에서 만들어집니다. 불안 때문에 이런 좋은 시가 나온 것처럼요.

 

불안 없는 세상, 이 지구 어딘가에 그런 세상이 있을까요? 아니 과거 어느 시기에 그런 세상이 있었을까요? 없을 겁니다. 없었을 겁니다. 인간이 불완전한 존재이기에 우리는 늘 불안과 더불어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어쩌면 그것이 인간의 운명인지도 모릅니다. 물론 저 같은 의사들은 불안의 원인을 분석하고, 이를 줄이거나 극복하기 위한 의학적 처방을 찾기 위해 계속 연구하고 노력할 겁니다. 그렇지만 인간의 삶이 계속되는 한 불안을 완전히 끝장낼 수도, 정복할 수도 없습니다. 적절한 불안을 그대로 인정하고 보듬은 채 살아가는 게 인생을 사는 바른 지혜가 아닐까요? 시인처럼 예민하고 불안과 걱정을 달고 사는 사람이 수많은 불안과 걱정을 나열한 후, 마침내 대반전을 이뤄 함께 살아갈 것을 선언한 것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시인은 요즘도 낮술을 마시면서 유쾌하게 잘살고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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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여의도힐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학사, 석사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정회원
저서 <마음은 괜찮냐고 시가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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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생님의 노력이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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